*강남향린교회 교인이자, 기독교평신도 시국대책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안성용 집사의 '20대 총선'관련 글을 게재합니다. 

민심의 선택은 절묘했다. ‘선물과 심판’ 

선거가 끝났다. 선거 때마다 그 절묘함은 개표직전까지 갖는 정당들과 지지자들의 과도한 기대나 참패로 인한 공포심, 특히 정치 공학적 사고가 옳지 않음을 적절하게 일깨워주곤 했다. 이번 선거 역시 그러했다. 유권자들은 바닥 민심이 근본이라는 사실을, 삶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분노의 에너지가 어떻게 표출되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는 선거 공학적인 정당들과 언론, 여론조사기관, 평론가들을 뛰어 넘어 ‘압도적인 여소야대’를 국민에게 선물했다. 동시에 유권자들은 각 정당들을 매섭게 심판했다. 박근혜정권과 새누리당은 여권 성향 무소속까지 포함해도 130석밖에 안 되어 ‘독립적인 행보를 하기 어렵도록 참담한 패배’라는 심판을 안겨주었다. 더불어민주당에게는 제 1당을 선물하는 대신 호남에서의 참패를 안겨주었다. 국민의당에게는 독립적인 행보가 가능한 제 3당을 선물했지만 수도권에서 2석만을 주는 심판을 했다. 진보정당들에는 정의당 6석과 무소속 2석이라는 퇴보를 통해 ‘정신차려라!’를 일깨워주었다.

선거 전 압도적인 우세가 예고됐던 새누리당

첫째 이유는 ‘1여다야’의 구도가 올 초부터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선거전이 본격화되는 2월말-3월 중순에 새누리당의 압승은 언론을 통해 널리 회자되었다. 야당의 분열과 여당의 어부지리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둘째 이유는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약할 때에도 35%가 나오며, 박근혜 지지율은 항상 이것보다 높았기 때문인데, 이는 지지층의 견고함과 강력함을 설명하는 근거로 항상 인용되었다. 

따라서 이 지지층을 토대로 적절한 인물을 후보로 내고, 상대와 구도를 유리하게 만들고, 전국적 의제보다는 지역공약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면 선거 결과는 낙관할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에서는 후보등록 기간과 정식 선거운동기간 시작일인 3월말까지도 야권후보단일화가 안 되는 것을 근거로 해서, 호남과 서울을 제외하고는 여당의 압도적인 선거승리를 예측했다. 

여기에는 범야권지지 유권자들의 뜻에 반하여 야당 간의 투쟁에만 몰두하는 야당들의 행태도 일조하고 있었다. 또한 ‘무상급식’과 같은 정책 의제를 가지고 전국적인 선거 쟁점을 만들거나 이를 뒷받침하는 대여투쟁에 매우 미숙한 야당지도부에 대한 평가도 한 몫을 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자신이 있는 선거였다. 처음부터 친박을 내세워 청와대가 공천을 주도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박근혜의 오만과 독선, 이를 집행한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공천일정과 공천행태는 결국 새누리당 지지자들 내에 큰 균열을 일으켰다. 앞선 글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김종인, 이상돈, 진영 등이 집권여당을 버리고 야당으로 넘어가는 것의 위험성을 그들은 몰랐다.

새누리당의 두 기둥인 수구와 보수의 분열이 본격 시작되었다. 대표자도 지지자도. 수구의 리더십 주변 참모들은 그들이 보이는 ‘불통, 오만, 독선’ 등으로 인해 보수지지자들이 얼마나 피곤하고 불편해하는 지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느낄 때’ 발밑에서 위기는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선거 참패는 청와대로? 

새누리당은 공천과정에서 비박계를 배제하고 치른 이번 선거에서, 수도권과 제주에서 참패했다. 또한 경북을 제외한 부산, 경남, 대구, 울산 등 영남권에서 정치적으로 큰 내상을 입었다. 대전 충청 강원권에서도 상당량의 지지율 후퇴를 보였다. 과반에 턱도 없이 모자란 의석수와 지지율 후퇴를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박근혜의 레임덕은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물론 정권은 정보와 물리력, 금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한 순간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과거 3년간과 같은 윽박지르기식 통치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또 우리사회의 지배계급 동맹의 핵심인 재벌들의 각종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활동과 규제완화는 이제 야당들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즉 지배동맹 내에서의 박근혜의 위상은 이제 약화되었다. 

더욱 큰일은 새누리당의 재집권이 가능한가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재집권의 필요성과 절박성에 대한 태도는 새누리당이 야당들보다 훨씬 강하다. 그런데 이를 앞으로 누가 이끌 것인가? 청와대는 이제 다른 꿈을 꿀 수 없이 퇴임 후 안전판을 구축하는 모드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김무성은 상처를 안고 물러났다. 김문수 오세훈은 정몽준처럼 상당 기간 뒷전에 있게 되었다. 이재오도 사라졌다. 남경필, 원희룡 등은 측근들의 낙선으로 인해 당내 세력 구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새누리당은 여권 성향 무소속의원들의 복당문제, 원내대표 선출, 전당대회가 이어진다. 당내에선 유승민의 복귀, 최경환으로 대표되는 친박 좌장의 전면 진출 등의 조율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당내에서 확실한 대선주자가 되기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동시에 반기문 등 외부에서의 영입작업도 진행 될 것이나 이 또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이에 대한 조율과정이 ‘선거참패 책임론’으로 크게 표출이 되어 당청 간에 큰 갈등이 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므로, 조기에 정리하고 최대한 부드럽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집권 상태에서의 대패배는 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이므로 위기의식 발동으로 인한 단합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애매한 제 1당 ‘더불어민주당’ 

이번 선거는 큰 쟁점이 없었다. 다만 유권자들이 스스로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움직인 선거였다. 공천 파동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셋 모두에 있었다. 다만 새누리당은 그것이 지지자들의 이완과 타당에 대한 지지로 전환된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범야권지지자들이 65%를 넘는 상황 그대로가 모였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탈당 사태 이후 당명을 바꾼 이래 더불어민주당이 한 일 중 긍정적인 것은 문재인이 신진인물들을 영입한 것과 김종인의 활약으로 당을 안정화 시킨 것, ‘경제 중심’으로 박근혜정권과의 대립 슬로건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즉 선거의 큰 쟁점을 만들지 못했고 국면 주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선거에서 이겼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제 1당이 되었다. 

김종인-문재인의 연합권력은 선거 기간 내내 비교적 잘 작동했다. 공천과정을 통해 정세균, 손학규, 박원순, 안희정 등의 잠재적 대권 경쟁자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이해찬 등 친노 상징성있는 인물들도 잘라냈다. 선거과정을 통해 ‘친문세력’을 형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선거전략으로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선거 막바지 문재인의 호남 방문에서의 선언과 뒤이은 수도권에서의 호소는 그 마지막 일환이었다고 보인다.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에 비례는 제 3당에 투표하라’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이는 마침 스스로 전략적 투표를 하려는 야권지지 유권자들의 강력한 의지와 만나 대반전을 만들었다. 총선기획단장이나 선대위관계자가 언론에서 하는 말이 ‘비례를 몇 석 못 받더라도 지역구 당선자를 늘리자는 입장이었다’는 언급을 고려하면 당차원의 선거 전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은 본인의 입지 강화가 매우 중요한 선거였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과가 좋았다. 따라서 문재인의 정계은퇴나 대선불출마는 어려워 보인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세력이 당내외에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의 호남에서의 비토는 대선까지 국회의원 재보선 말고는 없다는 점에서 ‘대선주자로서의 확장성 논란’에 계속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지역과 중도의 양면으로의 확장성을 가진 김부겸의 당선, 종로에서 유력 대선주자 오세훈을 꺾은 정세균의 생환은 앞으로 당권과 대권문제에서 새로운 이합집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송영길, 김두관 등의 복귀도 손학규, 박원순, 안희정 등과 맞물려 새로운 협력과 경쟁이 필요함을 예고한다. 비대위 체제 이후 새로운 당체제 정립이 과제가 된 제 1당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당이나 진보정당과 손을 잡아야 제 1당으로 기능할 수 있는 애매한 제 1당이다. 따라서 진보적 색채를 강화하는 ‘정권교체를 위한 강력한 야당론’이나,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결합이라는 ‘합리적 정권교체론’ 중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약진, 국민의당

한편, 국민의당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넘어 약진했다. 호남에서는 사실상 석권을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번 선거는 사전투표제의 영향으로 인해 투표율이 높아졌다. 그런데 이 투표율은 훨씬 높아질 수가 있었으나 더불어민주당의 선거전략 미비 때문에 높아지지 않은 면이 있다. 2010년 당시에는 ‘무상급식’이라는 대형 의제가 있었고, 광우병 촛불시위 경험을 가진 유권자들이 ‘소통부재’의 상황에서 정권심판에 가세했다. 즉 ‘쟁점이 있는 선거’였고 야권은 사활을 걸었다. 반면 이번에는 박근혜정권 3년을 겪은 유권자들이 삶의 고단함과 불안함이 응축되어, 행동으로 나서려는 시점이었는데도 이를 야당은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다. 

의제가 없는 대신 소위 ‘격전지 효과’를 보여준 곳들을 보면 높은 투표율을 유권자가 보여준 것이 이를 반증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선거전략부재는 2012년 총선과 대선, 2014년 지방선거까지 계속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유권자 중 ‘반새누리 비민주’ 성향을 갖는 층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투표를 하지 않은 상당한 사람들이 비민주 즉 더불어민주당을 대안세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은 정치투쟁에서 반새누리당과 동시에 반 제3정당을 주장해왔다. 즉 적대적 공생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양당제 체제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민의당으로 인해 이것이 무너졌다.

호남은 알다시피 정치의식과 개혁의지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왜 호남 유권자들은 국민의당을 강력하게 지지했을까? 

첫째, 더불어민주당으로 표현되는 최근의 민주당계열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다.
왜냐면 전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은 이미 양당체제 극복을 강력히 요구하던 지역이다. 호남에서 민주당이 토호세력이 되어 ‘대구의 새누리나 광주의 민주당이 같다’는 말이 상식이 된 지역이다. 
셋째, 김대중, 노무현이나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등을 지지해 왔는데, 모두 도전자로서 선명야당의 기치를 들고 싸울 때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즉 사회경제적 의제들,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 등의 의제에 대해 진정으로 투쟁하는 정당과 사람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정배 정동영 동교동계 호남향우회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현재와 같이 수도권과 호남이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호남만의 힘으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영남에 비해 반도 안 되는 힘으로 개혁정권 수립이 어려움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점들을 기초해보면, 현실에 안주해왔던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천정배의 국민회의나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이러한 현실을 알고 창당을 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야권교체로 정권교체를’ 주장한 것은 이에 기초한 것이며 모두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자 하는 바를 명백히 밝히고 시작하였다. 

만약 천정배, 정동영 등이 진보정당들과 손을 잡고 작년 하반기에 창당을 하여 호남에 자리를 먼저 잡았다면 안철수는 이번에 갈 곳이 없었다. 즉 탈당하지 못했을 것이고 국민의당 창당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대목은 진보정당들에게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 될 것이다.진보정당들은 계급 계층의 기반만 있을 뿐 지역 기반이 거의 없다. 이번 울산에서의 두 진보후보의 당선은 울산이라는 노동자 밀집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임을 고려하면, 정치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삼으려는 정치행동을 해야 함은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생략한다.

결론적으로 한상진의 잘못된 발언들, 민주당 탈당 구태 정치인들, 또 잡동사니 같이 색채가 단일하지 않은 인물들을 받아서 국민의당이 진행해 온 점들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확실하게 힘을 실어 주는 전략적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호남의 유권자들인 것이다.

사족으로 한마디 하면, ‘왜 호남 유권자들이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국민의당을 지지했는가? 이해가 안 간다’는 물음에 대해 답한다. 간단하다. 사표방지 심리이다. 되지도 않을 정당에 왜 표를 몰아주겠는가?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것이다. 대중이 현명한 것이다.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자칭 진보가 많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의 선거전략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양당 기득권 체제를 심판하자.’ 이는 호남에서의 압도적 지지로 연결되었다. ‘선거연대는 없다. 사퇴 없이 끝까지 간다. 새누리당 이탈자들이 지지할 것이다. 확장성 있는 제 3당이 국민의당이다.’ 이는 힘을 얻었고, 문재인의 발언과 더불어민주당의 막판 선거전략과 맞물려 돌풍이 되었다.

국민의당은 이번에 큰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알다시피 이상돈, 안철수와 정동영, 천정배, 박지원 등 결이 매우 다르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합집산에 참여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보자.

퇴보한 진보정당 

진보 4당의 정당 지지율을 보자. 정의당 7.23, 녹색당 0.76, 민중연합당 0.61, 노동당 0.38로 합계 8.98%를 얻었다. 2012년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10.3, 진보신당 1.1, 녹색당 0.5로 합 11.9% 보다 2.92% 떨어졌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4당 합계 9.81%였으니 이와 비교해도 1% 정도 감소했다. 의석은 정의당 6, 민중연합당과 가까운 무소속 2명으로 총 8석을 얻어 의석수도 후퇴하였다.

정의당은 총선 전 진보대통합에 관심을 두질 않았다. 유일한 진보정당인 것처럼 행동했다. 진보정당의 대표 주자로서 정의당이 모든 성과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했고 결과는 ‘정의당으로의 쏠림 현상’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 4당의 지지율을 정의당이 가져간 것뿐이다. 문제는 정의당만으로는 확장성이 없음을 명확하게 보였다. 과거 민주노동당과 같은 지지 획득이 불가능함을 보였다. 정의당 단독으로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안성용(강남향린교회 집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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