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 시대에도 종교는 존재할 수 있을까? 그 포스트휴먼 시대의 신학은 가능할 것인가? 이런 물음을 맞닥뜨리면, 막막하다. 도대체 ‘포스트-휴먼’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다. 그래서 이 글을 연재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신학에게 ‘실천에 앞선 성찰과 사유’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가 도대체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와 신학에 다급한 것은 서투른 실천이 아니다. 오히려 느리지만 진지한 사유와 성찰 그리고 그를 통해 구성되는 이론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 교회는 실용적 관심에 사로잡혀, 사유와 성찰이 사라진 제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종래의 부흥과 성장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다가오는 시대를 성찰할 기회를 놓친다면, 혹자들이 말하는 교회의 종말은 멀지 않은지도 모른다. 본고는 신학적 대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답은 질문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질문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쏟아져 나오는 질문은 무용하기 때문이다. 

VI. 포스트휴먼 시대의 종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휴먼적 사유는 ‘세속주의’의 이중성 혹은 모순을 넘어서는 길을 제시할 수도 있다. 흔히 진보적 정치 신조로서 근대 휴머니즘은 “평등을 위한 인간의 해방”과 “합리적 통치를 위한 세속주의” 간의 결합을 도모하였고, 따라서 휴머니즘은 “기독교 구원교리를 보편적인 인간 해방의 기획으로 변모”시킨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¹⁾ 즉 휴머니즘과 세속주의는 손에 손을 맞잡고 근대 이성의 기획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근대적 이성의 모순이 파헤쳐지고, 휴머니즘은 전혀 휴먼적이지 않았다(inhumane)는 것이 고발되어 왔다. 심지어 프랑스 혁명을 주도하면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도하던 이들조차 “여성의 평등한 지위” 같은 것에는 우선권을 두지 않았다.²⁾ 오히려 종교와 시민권을 “사적인 믿음 체계”와 “공적인 정치 영역”으로 이분화하면서, 여성들을 “사적 영역과 종교의 영역”에 배치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휴머니즘적 이상에 근거하여 ‘자유와 평등의 이상들’을 실현해 나가고자 했을 뿐이다.³⁾ 이때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해방은 전적으로 ‘백인 남성들을 위한 해방’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세속주의는 사실상 여성들이 억압을 재강화했으며, 여성들을 합리적 시민권과 정치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시켰다”⁴⁾고 브라이도티는 밝혀준다. 근대의 혁명정신이 세속주의와 손잡고 해방의 운동을 철저히 승계해 나갔을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세속주의는 이제 탈세속주의(post-secularism)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사실 여성해방의 선봉에 선 이들 중에는 신학자들이 많았다(메리 데일리, 슈슬러 피오렌자, 로즈마리 류터 등). 오히려 이들은 신학적 안목을 갖고 있었기에 기존 남성중심적 권력 질서에 철저히 저항하고 투쟁하였다. 말하자면 해방의 운동들을 세속주의 운동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휴머니즘과 세속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서기 위한 운동들이 해방의 운동들이었고, 남미의 해방신학이나 한국의 민중신학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 영성과 결합된 해방운동들이 탈세속주의 시대로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그러한 탈세속주의 해방 운동들이 휴머니즘이 주도해온 해방운동의 위선과 이중성을 노출시키며 극복해 나가려는 운동이었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해방운동들은 근대 휴머니즘의 유산 아래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해방 운동도 인간-너머(trans-human 혹은 post-human)를 사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중심적 사유의 한계는 인간중심적 사유였고, 그 인간중심적 사유가 특정한 인간의 이상들을 보편화시켰기 때문에 그와 다른 인간들을 인간의 범주에서 배제시키는 일이 발생했던 것은 모두 그러한 논리들이 공통적으로 ‘인간적인 관점’에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휴머니즘이나 그에 반대하는 반휴머니즘이나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만일 반휴머니즘이 “세속적 입장”과 연대한다면, “신식민주의적인 서양 지상주의 입지와 공모”하는 것이 될 것이고, 만일 “계몽주의적 유산을 거부하면 모든 비판적 기획과 본질적으로 모순될” 형편에 처해 있는 것이다.⁵⁾

이러한 모순은 바로 인간중심적 시각을 가지고 전체의 관점들과 입장들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중심적인 입장의 극복, 그것은 인간/자연, 자연/문화 등의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버리는 것이 될 것이고, 이는 곧 ‘탈-인간’(post-human)적인 사유의 방식을 도모하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휴머니즘은 반휴머니즘이 넘어가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 가운데 일어났다. 탈-인간주의 기획은 결국 인간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한 존재론적 범주들 즉 소수자(minority)와 연대하기 혹은 보다 적극적으로 ‘소수자-되기’를 도모하려는 기획이 될 수도 있다. 

탈-휴머니즘의 기획 즉 포스트휴먼의 기획이 휴머니즘의 인간 개념을 넘어서는 ‘소수자-되기’ 혹은, 브라이도티가 제안하는 대로, “동물-되기, 지구-되기, 기계-되기”⁶⁾와 같은 기획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곧 성/속 혹은 성/세속을 나누던 이분법의 세계관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시대에 주어진다는 말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삶에 ‘성스러움’의 차원을 회복하는 일이다. 따라서 포스트휴먼 시대는 종교가 극복되거나 사라지는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세속화’(secularization)를 극복하는 시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속화의 역설”⁷⁾이다.

세속화 이론은 종교가 극복되거나 사라지는 미래 세계를 그려주었지만, 역설적으로 세속화 시대의 도래는 소위 ‘종교의 귀환’ 시대를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세속화 시대의 해방운동들이 왜 종교적 해방운동 혹은 기독교적 해방운동과 중첩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단초가 된다. 문제는 포스트휴먼 시대가 종교의 부흥이나 귀환을 가져오느냐가 아니라, 그 시대에 어떻게 종교와의 관계를 설정하느냐이다. 포스트휴먼 시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교의 역할을 요구할 것이냐 혹은 종교가 전통적으로 감당해 온 역할들을 시대적 상황에 맞게 적용할 것을 요구할 것이냐의 물음 중에서 어떤 물음에 답하기로 결단하느냐가 바로 신학적 결단이 된다. 

7. 포스트휴먼 시대에 신학하기 

종교개혁과 과학은 “역사적 반란”(historical revolt)이란 공통점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⁸⁾ 이 역사적 반란은 곧 종교개혁과 과학이 ‘이성에 호소’하는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반-지성적 운동”(anti-intellectual movement)이었음을 인식할 때라야 인지될 수 있다. 소위 현대라는 시대의 우리들은 교육과정을 통해 종교와 과학을 전혀 다른 분야의 것으로 배우고, 그래서 ‘신앙과 이성’으로 인간의 정신을 양분하고, 과학에게 ‘이성’의 전적인 위치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근대 과학은 적어도 그 출발선에서 지성에 호소하는 운동이 아니라, 반지성적 운동이었고, 그 반지성적 운동을 “야수같은 사실에 대한 성찰로의 귀환”⁹⁾을 수행하면서 펼쳐 나아갔다. 과학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바로 우리가 중세를 ‘반지성적 암흑시대’로 편협하게 묘사한 근대의 역사 서술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세에서 핵심적인 태도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aith seeking understanding)이다. 근대 과학이 ‘이성적 합리성’에 대항하여 ‘야수같은 사실에 대한 성찰로 귀환’한다는 것은 바로 그 중세식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임을 의미한다. 고대 자연철학이 자연의 목적성을 믿고 있었다면, 그러한 목적성에 대한 믿음을 종교적으로 보존하고 있던 것이 바로 이성에 기반한 중세의 합리주의적 신앙이다. 과학은 바로 이 합리주의적 믿음 혹은 자연의 목적성을 이성의 보편 논리로 설명하려는 노력들에 반기를 들고, 합리성의 거대한 사유 체계에 구체적이고 완고한 사실들에 기반하여 세계와 사물들을 재조명하려는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이고 완고한 사실들’에 대한 주목은 세계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제공해 오던 전통에 반기를 들고, “재해석”(reinterpretation)을 요구한 것이다.¹⁰⁾ 이를 뒤집어 표현하자면, 중세적 합리주의에 결여된 태도가 바로 ‘야수같은 사실’과의 접점인 것이다. 사실 ‘상식’(commonsense)은 이성적이다. 따라서 상식을 뒤집는 이해와 통찰은, 적어도 당대의 눈으로 보자면, 반지성적이다. 

모든 지적 혁명이 반지성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들이 사물과 세계를 보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the misplaced fallacy of concreteness) 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구체적인 사실을 추상(abstraction)과 동일시함으로써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현실적 존재는 결코 ‘사실,’ 엄연한 구체적인 사실, 바로 ‘자연의 추이적 과정’을 ‘인식’(recognize)하지 못한다.¹¹⁾ 우리의 인식(recognition)은 그 구체적 사실을 구성하는 구성인자들(factors)만을 인식한다. 즉 자연의 모든 실재는 변화의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인식되지 않으며, 그 변화 속에 있는 세계에 대한 인식은 그 구체적 사실-과정으로부터 추상된(abstract) 지적 구성물들을 통해 가능할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의 자연과 세계 인식은 모두 추상이다. 시간, 공간 그리고 물(material)은 우리의 추상적 구조물이다.

이 추상적 구조물들은 보다 본질적인 ‘존재-사건’을 우리 삶으로 현존케 하는 (지적) 도구들이다. 하지만 이 지적 도구들이, 비록 자연-실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곧 실재(reality) 혹은 엄연한 사실(fact)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이 지성적 도구인 추상들을 ‘구체적인’ 실재 즉 사실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지성적 도구로서 추상들은 ‘구체적 사실’로서 ‘과정’(process)의 진실을 우리의 삶의 경험 속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핵심은 ‘구체적 사실들’이 우리 인간의 지성적 손아귀에 잡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근대 과학의 관찰(observation)로서 이론 개념 자체 안에 바로 이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론”(theory)이라고 사용하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가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을 담지하고 있는데, 이론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theōrein을 라틴어 contemplari로, theōria를 contemplatio로 번역하였는데, 특별히 contemplari는 “어떤 것을 별도의 영역으로 분할하여, 그 안에 봉하는 것”을 의미한다.¹²⁾

독일어는 이를 Betrachtung으로 변역하였는데, 이는 “보는 것” 혹은 “관찰”을 의미한다.¹³⁾ 이 맥락에서 이론은 “실재를 보는 것 혹은 실재의 관찰”이 된다.¹⁴⁾ contemplatio의 독일어 번역어인 Betrachtung에서 trachten은 “분투하다”(strive)를 의미하는데, 이것의 라틴어 어원인 tracare는 “조작하다, 연구하다 혹은 다듬다”는 뜻을 갖는다.¹⁵⁾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다”는 것의 뜻은 “어떤 것을 향해 자신의 방식으로 일한다, 추구한다,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덫을 놓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찰(observation)로서 이론이 의미하는 것은 “실재를 덫을 놓아 확보하여 다듬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¹⁶⁾ 근대 과학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실재를 파악한다. 문제는 관찰을 통해 구성된 이론이 실재를 그대로 포착할 수는 없다는 근원적 한계이다. 이는 이미 현대 양자물리학의 발전을 통해 확인된바 있다. 

현대 양자물리학 분야에서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는 이를 분명하게 해준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위치와 속도는 서로 상관된 개념이어서 위치를 알면, 속도를 알 수 있고, 역으로 속도를 알면 위치를 이내 파악할 수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바로 이 상식적인 운동 개념을 전복해 버린 것이다. 이제 양자 세계의 불확정성 원리 하에서는 위치를 알면 속도를 알 수 없고, 역으로 속도를 알면 위치를 (영원히) 알수 없는 논리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한다.

고전 물리학이 자연은 “명확하게 있어서, 미리 완전하게 계산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었다면, 양자 물리학—하이데거는 “원자 물리학”(atomic physics)이라는 표현을 썼음-은 “통계적 특성을 담지한 객관적 일관성”만을 인정한다.¹⁷⁾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 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 물리학이라는 보다 더 큰 대상-영역 안에서 고전 물리학의 법칙들이 여전히 타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임을 주목한다. 물론 그 역은 가능하지 않다. 즉 물리학은 기존의 대상-영역 범위를 너머 오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리학”으로서 ‘객관적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지에 속한 대상들을 그 대상성 속에서 덫으로 걸어’ 잡고 있다.¹⁸⁾

반복하자면, 기하학적 고전 물리학에서 “핵과 장의 물리학”으로 나아가면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자연은 이론으로서 과학[의 성취를 가능케하는] [이론적] 덫이 확보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미리 배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¹⁹⁾ 이 배치는 바로 주체와 객체(대상)가 “틀맞추기”(Enframing)를 통해 결정된 상수, 즉 “대기-예비”(the standing-reserve)의 상수가 대상성으로 창출됨으로써 이루어진다.²⁰⁾ 즉 우리가 이론을 설명하거나 이론적 확증을 위해 설정한 모든 개념들은 사실 ‘사실’ 그 자체로부터 추상된 개념적 추상이다. 그러니 어떤 이론도 설명도 결국 사실 그 자체로 치환될 수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추상적 설명이나 이론을 사실로 등가시하는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는 전문학자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단어의 명사들은 언어적 개념들이다. 심지어, 한국인 혹은 필리핀인 혹은 미국인 등도 언어적 개념들이다. 유전적으로 그들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는 각 집단의 개인적 편차보다 작다는 유전적 역설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이론은 “실재를 확인하고(identifies) ... , 그것을 하나의 대상-영역에 고정시킨다.”²¹⁾ 하지만 자연은 “언제나 스스로를 현존함으로 있는다(존재한다).”²²⁾ 객관화란 언제나 이 자연의 현존함으로 방향정위된다. 하지만 이론은 이 현존함으로 있는 자연을 “결코 능가할 수 없”고, 따라서 자연을 “에워쌀 수 없다.”²³⁾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물리학이 재현하는 것은 “분명히 자연 그 자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부정할 수 없이 “대상-영역으로서 자연”으로서, 물리학적인 조작을 통해 그 대상을 정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동반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²⁴⁾

말하자면, 이 근대 과학의 자연은 스스로를 현존케 하는 자연을 객관화함으로써 얻어진 자연의 한 측면이며, 이 대상화된 자연은 결코 “자연의 현존적 도래의 온전함을 포용하지 못한다.”²⁵⁾ 물론 대상화된 자연도 자연 자체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물리 과학에게 “우회될 수 없는 것”(that which cannot be gotten around) 즉 지나갈 수 없고 오히려 지향해서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의 측면을 보여준다.²⁶⁾ 과학으로 온전히 포용되지 못하는 자연의 이 측면들이 왜 있는지 스스로 물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연구 자체가 그 포박될 수 없는 것을 이미 스스로 규정한 대상성의 경계로 이론화시켰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자리에 우리는 종교와 신학의 자리가 위치하고 있음을 파악한다. 이는 논리적 비약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자연의 대상성에서 바로 이 “우회될 수 없는 것이 지배한다(hold sway)”²⁷⁾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우리가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 안에 ‘자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이라고 말하면서 대상적 자연 개념 안에 포괄하지 못하는 것, 즉 “우회될 수 없는 것”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문명과 과학과 기술과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이 “전혀 우회될 수 없는 것”(that which ... is not at any time to be gotten around) 그래서 과학을 통해서는 “다루기 어렵고 그리고 손대기 어려운”(unzugänglich)²⁸⁾ 바로 이것의 접근불가능성이 철저히 양화되고(quantified) 통계화되어, 가시적인 수치로 변환되는 듯이 자연과 세계와 우주를 바라보는데 있다.²⁹⁾

다시 말해 이 은밀한 것은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과학의 본질 전반에 걸쳐, 즉 실재에 대한 이론 전반에 걸쳐 지배하는 사건들의 상태는 곧 접근 불가능하고 에둘러지지 않는 것 그리고 또한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는(pass over) 것이다.”³⁰⁾ 우리가 이 ‘기술될 수 없는 것’에 다가가는 방법은 묻는 것이고, 그 물음은 “모험이 아니라 귀향(homecoming)”³¹⁾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말하여 질 수 없는 것은 결국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식의 도구와 한계는 매 시대 우리의 추상적 이론들을 통해 새롭게 제시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고, 그래서 우리의 물음은 전혀 새로운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은 신학을 필요로 한다. 

신학은 그렇게 우리의 사유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성찰하고, 다시 우리 시대로 돌아와 우리 시대의 언어로 그것을 번역해 주는 작업이다. 그것이 이론이다. 그러니 이론은 진리가 아니다. 하지만 매 시대의 변화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언어와 개념과 사유의 틀을 요청한다. 언어가 모든 시대에 보편적인 것이라면, ‘세대 차이’라는 개념이 왜 납득되겠는가? 시대가 변하면 우리의 개념적 사유의 틀을 제공하는 언어가 변하기 때문이다.

신학은 인간의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그 ‘우회할 수 없는 것’ 그렇지만 ‘기술될 수 없는 것’을 과학이나 인문학보다 더 언어적으로 개념적으로 포착함으로써 신학을 수행하는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신학이 신학인 것은 그 분야들보다 더 언어나 이해나 인식이나 인지를 통해 그 ‘우회할 수 없는 것’을 근본적으로 포착할 수 없는 불가능성 그리고 그 불가능성 앞에서의 무기력함을 그 분야들보다 더 철저히 느끼고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은 자기 분야의 유능함으로 다른 분야을 압도하고 제압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무력함 속에 다른 분야들의 근원적인 무능을 드러내고 비추어 주면서, 겸손히 무릎꿇기를 조언할 따름이다. 

결론: 틈새의 신학 혹은 연대(solidarity)의 신학? 

포스트휴먼 시대는 신학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할까? 매 시대는 다른 종교성을 우리에게 요구해 왔다. 중세 신학자들은 ‘인권’(human rights) 개념을 염두에 두면서 신학하지 않았다. 인권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초래된 혁명적 영향이 서구 근대 사회에 미친 효과이다. 이제 누구도 ‘인권’을 배제한 채 신학을 할 수 없다. 시대적 변화란 그런 것이다. 본고는 포스트휴먼 시대를 위한 해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것은 본고의 범위를 넘어서는 작업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시대를 예상하면서, 그 시대를 개념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준비하는 작업 바로 그것이 신학의 작업이다. 그리고 이 신학의 작업은 완벽하거나 완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언어적 개념 체계가 근원적으로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회될 수 없는 것’의 진리성을 향해 끊임없이 우리의 개념과 이해를 수정하면서,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학문 분야들이 완벽히 밝혀내거나 해명하지 못하는 것을 ‘신학의 언어’로 풀어내는 ‘틈새의 신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학은 시대와 상황이 바뀌어 우리의 추상적 개념 체계가 더 이상 포착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공유하며, 이해를 통해 신앙에 이르는 길을 비추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신학이 유능한 학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적 무기력을 가장 용기있게 고백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인간의 지성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틈새는 신학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틈새가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우리의 지적 무기력을 근원적으로 성찰할 때를 포착할 기회를 제공할 따름이다. 그 무기력이 우리로 하여금 이 시대에 무기력한 존재들을 찾아 함께 하며 연대할 힘을 제공할 것이다. 그것이 지젝이 말하고 싶었던 ’성육신‘의 본래적 의미 아니었을까? 

박일준(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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