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단원고 기억교실

2016년 5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3시 경의 햇살은 피부에 좀 더 가까이 밀착하며 여름의 소식을 전했지만 바람은 아직 봄 내음을 담아 가벼웠다. 콘크리트로 빚어진 언덕 위에 단원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태양을 머리맡에 두고 건물 근저에 짧은 그늘을 드리우며 그렇게 서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1층 복도의 서늘한 기운은 위층 교실들이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곳곳에 피어난 노란 빛 때문일까. 메아리가 되어 울리는 수많은 학생들의 부재가 방방곳곳 많은 이들을 자신들이 한 때 계절의 변화에도 변함없이 머물며 떠들던 교실들로 불러모았다.

그리하여 이곳은 노란 빛으로 물들었다. 학생들의 부름에 답한 이들이 전하는 꽃다발들, 편지들, 사진들. 그것들 사이에는 학생들의 낙서들, 이미 두 해 전 그날이 닥치기 오래 전부터 자리했던 학생들의 손자국들이 남아있었다. 이것들은 바로 이 공간에서 거의 매일같이 하루 반나절을 보냈던 어린 청년들이 새겨 넣은 생기의 흔적들이다. 이들이 교육이라 불리는 제도에 하루 하루 휩쓸려 가면서도 자신들만의 틈을 타 그 틈 속에서나마 길들여지지 않는, 길들여질 수 없는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남겨놓았다. 학교라는 곳에서 방문객이 되어 나타난 내가 발견하게 된 이 틈새들의 흔적은 나로 하여금 자문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나는 앞으로 어떤 “나”로 살 것인가?

학생들이 매번 당연한 듯 받아들여야 하는 한국 사회의 교육이라는 것이 사실 그들을 길들여야지만 지탱된다는 것, 그러나 완전한 길들임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러므로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자들의 희생을 통해 그 제도가 유지된다는 것, 그리고 학생들이 “학생”으로서 거치는 교육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현장이자 과정이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정의해나가는 투쟁의 순간순간이라는 것. 이 모든 사실을 마주한 나 그리고 당신은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단원고 학생들이 그들의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나는 다시 체험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포함해 기존의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난 많은 이들이 “학생”시절 몸소 겪고 온 몸을 비틀면서 소화시켜 삼킨 채 과거의 추억으로 만들어버린 이 실존적 물음의 경험을 말이다. 스멀스멀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를 때면 취기에 노래로 흥얼거리고 홧김에 욕설로 내뱉고 우울함 속에서 누군가를 원망하게 하는 이 실존에 관한 문제를. 이 곳 단원고 학생들의 틈새에서 마주한다. 

그렇다면 이 공간을 다시“정상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누구의 혹은 누구로서의 일상이 될까? 그“화”해야만 하는 “정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각 교실의 뒷면에는 벽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게시판이 있고, 바깥을 향한 창문들 가장자리에는 기계적으로 돌고 도는 시계가 놓여있다. 그 게시판과 시계 아래 벽면에 공통적으로 부착된 여럿 포스터들: 고2 출제 범위표, 전국 4년제 대학교 지도, 서울지역 대학 위치도, 2015년 수도권 4년제 대학 안내지도,“체력이 경쟁력” 틈틈 운동법, 오전 8시에서 밤 10시사이의 하루 일정표, 그리고“향후 10년동안 고용증가가 예상되는 직업을 분석 한 결과 정보, 첨단공학, 환경, 의료, 복지 등 전문적 기능이 요구되는 직업들”을 선별한 “성장직업 20선.

2015 수도권 4년제 대학 안내지도 ⓒ송혼

일정표 ⓒ송혼

단원고 교실들의“정상화”란 현 교육의 가장자리에서 교육제도에 대한 진실을 노출시키고 그에 따른 심판과 변화를 요구하는 생기들의 틈을 매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는 다시금 하루 일과표 앞에 아이들을 앉히는 것. 다시금 서울지역 대학지도와 직업 나열표가 걸린 게시판 앞에 아이들을 앉히는 것. 다시금 대한민국 4년제 대학 위치도를 시계 밑에 모셔두고, 그것을 위해 아이들의 시간을 할애시키는 것. 그리하여 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생산해가는 것을 뜻하리라. 무엇보다 수백 명의 어리고 생기로운 존재들이 한 때 그들이 학교에서 보낸 하루 반나절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물속에서 숨막혀 죽어가도 상관없다는 (소위 국민들을 대표한다는) 대통령과 그것의 정부를 머리로 둔 사회를 유지하여 이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교육의“정상화”는 그런 희생양을 필요조건으로 하되 그것이 마치 사고인 듯 망각해야만 유지되는 국가적 차원의 사회를 인정하여 지속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현 시대에 모든 개인의 궁극적인 정치적 삶의 틀로서 가장 총체적 역할을 부여 받은 것이“국가”라고 할 때, 그리고 이것이 “창조경제”라는 기획에 따라 구현되어져야만 한다고 할 때 필요하게 되는 희생이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할 수 있다. 한 편으로 군인들이 “국가”를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전쟁 속에서 희생되어 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 성인들만이 행사하게 되는) 자기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은 어린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가“생산인구”가 되어 실현시켜야 할 그 “창조경제의 국가”를 회의하며 대항하고자 할 때 희생되어진다. 전쟁이 군인의 의무로써 참여하게 되는 무엇인듯 설명되듯이, 교육이라 불리는 “경쟁”의 첫 과정은 그 누구도 의도적으로 초래하지 않았으며 이것을 통해 성인으로서 살아남는 것은 학생들 스스로의 몫이자 책임이라는 듯이 얘기된다. 

물론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이러한 현 국가체제에 대항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 이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 국가체제로서의 가능성들을 파헤치는 것이자 그러한 가능성들을 통해 특권의 자리에 위치하여 자신이 사회적으로 빚는 치명적 효과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들의 삶의 조건들을 파헤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침묵하거나 망각한 척하는 누군가들에게 있어 희생자 학생들의 죽음에 관련된 진실이 드러나는 일은 그것 자체가 자신들의 위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체제로서의 가능성들은, 예컨대, 국가 안전을 위해 비밀리에 관리된다는 기관(들)이 법의 이름으로 법의 밖에 배치될 수 있는 힘의 가능성, 개인 사생활 존중이라는 법적 차원을 빌미로 그러한 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의 교묘한 자산관리가 가능하게 하는 힘의 가능성, 그리고 그러한 자산관리를 보조하는 사회적 관계망을 보호하되 그것이 빚는 폭력의 효과들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올곧게 묻지 못하도록 하는 힘의 가능성을 말한다.) 분명 누군가들에게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은 더더욱 “사고”로써 남아야 하고, 그 “사고의 진실”은 비사회적(non-social) 요인들의 결합체로서—예를 들어 과학적 담론으로서만—설명되어야 한다. 

앞으로 연재될 논고는 한국사회에서“교육”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이 “교육”과 더불어 여러 범주들(“경제”, “사회,” “정치” 등)로 분할되어 인식되는 (그러나 달리 인식되어져야 하는) 다수의 다수로서의 삶 전반의 문제이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다. 그 과정에서 기존 제도권 대학교육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대중적(혹은“대중”지향적) 인문학 강의들에서 다뤄지지 않거나 철학의 전통적 범주 바깥으로 밀려난 여러 사회이론들 혹은 비평들을 이용할 것이다. 실상 소개될 이 문학들은 현재 한국사회 내 여러 대안지성 공간들의 형성에 기여했고, 그 공간들을 찾는 다양한 배경의 시민들 사이에서 공부되고 있는데, 이는 이미 “대안교육,”즉 다른 사회로 나아감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과 실험이 진행 중임을 가리킨다. 

첫 번째 논의에서 조르쥬 바타이(George Bataille)와 피에르 보르디웨(Pierre Bourdieu)의 이론을 이용하며, 다수의 정치적 삶을 “국가”라는 것으로 총체화하는 과정에서 희생의 문제가 어떻게 떠오르며, 특히 현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묵과됨과 동시에 드러나게 되는지, 이러한 희생의 문제를 저버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한다.

두 번째 논의에서는 현 국가(화)의 과정에서 모순적으로 작용하는 희생을 직접 체감한 이들이 2016년 4월 16일 이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이며, 이것의 내용이 이론적 담론을 향해 제공하는 도전과 비판은 무엇인지 논한다. 구체적으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들과 참여시민들이 행한“삼보일배”와 “가만히 있으라”운동을 돌이켜보며, 이에 대한 성찰이 조지오 아감벤(Georgio Agamben)이 말하는 숭고한 자(Homo Sacer)에 대한 이론, 혹은 보르디웨와 모리스 블럭(Maurice Bloch)이 말하는 담론(discourse), 문화, 혹은 의식들(rituals)의 한계에 대한 이론, 그리고 빅토 터너(Victor Turner)가 말하는 성인식(initiation)에 대한 이론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돌이켜보게 하는지 논한다.

종합적으로 이 연재는 이론적  틀들을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에 대한 논의이자, 지난 2년동안 이뤄진 세월호 이후 다양한 노력들이 어떻게 그 이론적 틀들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다른 인식과 주체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될 것이다. 

<필자 소개>   필자 송혼 민주적 주체화 과정에서 떠오르는 교육, 지식전수, 그리고 저자되기(becoming an author)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연구하는 중이다. 그 중 저자(authorship)라는 문제와 연결해 부정적으로 여겨진 권력(authority)실천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중이다.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에 있다.

송혼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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