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길을 여는 복음 (창 3:22~24)

1. 생명에 이르지 못하는 현실

1) 1년을 교회의 절기에 따라 구분하는 교회력은 9월부터 11월까지는 창조절이라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어진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생각하고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숙고해보는 절기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기가 아쉬운 9월,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맑고 높아지는 계절에 인간과 생명에 대해서 돌아보는 것은 뜻 깊고 감사한 일이다.

2) 구약 성경이 문자로 기록된 것은 지금부터 3천 년 전이고, 성경의 내용은 문자화되기 훨씬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생각이니 오래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민하던 내용이 오늘 본문에 담겨있다. 수천 년 전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깊이 고민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 놀랍다. 하나님이 지으신 동물과 식물의 생태계와 인간은 어느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관찰하고 숙고하였을 것이다.

첫째로 인간은 정말 동물과 다르게 세상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문화를 발전시킨다는 점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인간이 농사를 짓고, 동물을 길들여서 가축으로 키우는 것도 사나운 맹수보다 뛰어난 점이다. 거기다가 당시 청동기문명에서 철기문명으로 발전하면서 느끼는 인간 자신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만의 지식 능력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다른 생명과 달리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과가 선악과는 아니지만 제일 비슷해보인다.

선악과(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란 하나님의 전지(全知)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밤낮 일했다고 하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했다는 뜻인 것처럼, 선악을 분별하는 지식이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의미한다. 그 지식을 가지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이 인간이 지닌 신적 능력인데 그것은 양날의 검처럼 인간을 교만에 빠트려서 하나님을 등지게 하는 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미 그 오래 전에 통찰하고 있었다.

3) 둘째로 인간이 영생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오늘 본문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특별하게 지음 받은 존재라 해도 결코 신이 아니라 엄연히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피조물인데, 신적 능력인 지식을 갖게 됨으로써 인간은 더욱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타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조물임에도 인간은 신의 영역인 불사의 존재가 되기 위해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을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면서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엄격하게 준수될 때 행복이 보장되는 것인데, 이제 그 관계가 깨져서 인간이 곧 하나님이 되고자한다는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를 탐하는 것에서 인간과 역사의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이 통찰이 놀랍다. 인간의 내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그 옛날에 이렇게 깊이 밝혀냈다는 것이 놀라운 뿐이다. 이거야 말로 정말 성령의 감동과 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통찰이다.

4) 고대인들은 옛날 임금이 어전회의 하듯이 하나님이 천사들과 하늘 궁정에서 회의를 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결정하신 내용이 인간을 에덴동산 밖으로 내 보내어 땅을 갈아야만 먹고 살게 하고, 다시는 인간이 하나님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천사들을 경비세우고, 또 화염검으로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화염검은 번개다. 고대인들이 보았을 때 번개는 하늘이 인간의 접근을 막는 두려운 장치로 보였을 것이다.

하늘나라 어전회의

5) 오늘 본문은 3천년도 더 된 정말 오래된 시절에 인간이란 존재의 실존을 짧은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짓고 쫓겨난 존재이며, 힘들게 땅을 갈고 땀을 흘려야만 살아갈 수 있고, 여성은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아야 하며,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존재라는 것이 구약 성경의 증언이다. 나는 이 증언을 받아들인다. 정말 인간은 그렇게 욕망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피조물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으로 끊임없이 신의 영역을 도전한다. 이 교만한 죄를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구원은 없다.

2. 500년 전 화가의 시선

구약 성서의 이 부분을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천지창조 부분에 그렸다.
불과 3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에 이런 대작을 그리고 인간과 역사를 이런 관점으로 보았다는 것이 미켈란젤로가 단지 그림 잘 그리는 기능인이 아니라 깊은 영성을 지니고 있던 신앙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죄와 추방 부분), 1508~1512년, 바티칸

창조주의 엄명을 기어이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에게서 하나님은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신이 되고자 하는 무한한 욕망을 보셨다. 이에 인간을 낙원 밖으로 쫓아내신 뒤 하늘나라 경비병들을 세우시고 화염검으로 인간의 접근을 차단하신다. 이로써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막혀버렸다.

구약 성경이 문자화 된 3천 년 전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인간의 근본 문제를 이처럼 깊이 고민한 옛 이스라엘인들이 위대하다. 오늘 우리는 근원적 관심을 싸구려 물질에 팔아버렸다. 우리가 진정 회복해야 할 것은 인간 존재와 생명에 대한 궁극적 관심이다. 인간의 근원적 관심이 깊어지는 어느 길목, 태초에 막힌 길을 생명으로 뚫어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다.

화가는 죄 이전과 이후 인간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켰다. 죄를 짓기 이전의 하와는 세상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죄를 짓고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하는 하와는 갑자기 늙고 추악한 모습으로 돌변해 있다. 인생은 죄를 전후로 나뉜다.

3. 천박해진 현대 인간의 욕망

1) 고대 이집트인의 갈망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어마어마한 피라밋 공사가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지금 보아도 엄청나게 보이는 건축물을 지금부터 3000년도 더 오래된 시절에 변변한 기계 없이 맨손으로 지었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 것이다. 그만큼 민중은 수탈당하고 소모품처럼 죽어 나갔을 것이고!

이집트인들의 그림은 독특하다.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곳에서 바라본 모양을 한 곳에 모아놓고 있다. 가슴은 정면, 얼굴은 측면, 눈은 정면, 발은 측면 등의 시점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다. 이집트인들의 관심은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대상을 똑같이 옮겨 놓았는지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은 하나로 모아진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영혼이 육체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가능한 육체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미이라를 만들었고, 동시에 그 사람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사람의 각 부분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시점을 택하여 그림을 그렸다. 살아 있음에 모든 관심은 죽음과 영생에 관한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2) 과학 기술과 물질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현대 인간의 정신은 반대로 과거에 비해 훨씬 퇴보했고 물질화되었다. 이제 인간의 머릿속엔 생명나무가 아니라 돈 나무가 자란다.

그만큼 인간의 영혼과 삶은 천박해진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머릿속은 인간과 역사의 본질,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직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적이 되었다. 인간은 놀라운 지식 발전에 기초한 과학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창조자의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 영혼 없는 전능자의 꿈이다. 그 결과는 비참이요 죽음이라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4. 단절된 길에 생명을 주는 복음

1) 기독교 복음은 바로 이러한 인간에게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인간의 교만과 죄악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이 기독교 복음이다. 이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현대인들은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인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인간이 주인 행세하는 이 땅에 있기 때문이다.

2)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생명의 길이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스토(Badalocchio Sisto), 그리스도의 매장, 1610년, 로마

하나님 앞에 쫓겨나서 다시는 귀향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은총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그 분 앞에 내 인생을 맡기는 것은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은총과 사랑을 알고 나니 너무 감격적이고 감사해서 스스로 주님 앞에 나아와 나를 받아주소서 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유대교는 같은 하나님을 믿지만 이 고백을 율법으로 강제화했다. 예수님은 여기에 동의할 수 없었으면, 사랑은 강제나 의무가 아니라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앞에 스스로 고백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우리의 복음은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3) 가을이 조금씩 깊어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짧듯이 가을도 좋을수록 서둘러 지나갈 것이다. 하루하루 보내기가 아까운 계절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자. 그리고 단절된 생명의 길에 다시 구원의 길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영혼이 가을처럼 높고 깨끗하고 싱그러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훈삼 목사(성남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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