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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신학연구소] 영혼의 문둥병 (누가복음 17장 11∼19절)<말씀의 잔치>
이 종 철 (빛과생명 교회 담임 목사) | 승인 2016.10.06 14:22
(눅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나병은 예전에는 문둥병이라 불렸고 요즘은 한센 병이라고도 합니다. 나병은 천형, 곧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고 완치 가능하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AIDS와 같이 불치병이었습니다. 전염성이 있어 이 병에 걸리면 거의 죽은 목숨과 같았습니다. 나병은 신경이 무뎌지고 살이 썩고 손가락과 발가락 등 신체부위들이 떨어져나가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우리나라에도 6,70년대까지만 해도 나병환자들이 있었고, 전남의 소록도는 이런 분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유명하였습니다. 나병 시인 중에 한하운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쓴 ‘소록도 가는 길’은 나병이 얼마나 끔찍한 병인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 문둥이들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 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참으로 무서운 병입니다. 나병이 더 무서운 것은 일가친척, 친구, 직장 등 사회적으로 고립이 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나병에 걸린 자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하고 외쳐야 합니다. 그들은 성에 들어올 수 없고 따로 격리된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들의 피부에 난 상처들은 마치 인간의 죄악처럼 여겨져 부정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어떤 랍비는 문둥병자가 지나간 거리에서는 계란도 사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죄가 오염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유대 기록을 보면 바람이 나병 환자 쪽에서 불어올 때는 약 50m 정도 떨어져 있어야 죄에 감염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옛날에도 나병 환자가 보이면 돌멩이를 던져 내쫓았습니다. 그런 하늘의 벌을 받은 자들 열 명이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차마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멀리 서서 외칩니다. 이들도 한 50m 정도 떨어졌을까요?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3) 

일군의 문둥병자들이 멀리서 예수님을 향하여 부르짖고 있는 이 장면을 그려보십시오. 멀리 하늘을 향하여 통성기도하며 부르짖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이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을 고치는 방식이 이번에는 좀 특이합니다. 일전에는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으라”(눅5:13) 하셨을 때 그 자리에서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내밀어 만지셨을 때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표징도 주지 않고 다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치유 과정에서 두 가지를 우리에게 확인시키길 원하십니다. 기적을 이루기 위한 두 가지 조건입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을 테스트 하고 있습니다. 문둥병이 나으면 제사장 앞에 나아가 확인을 받아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레14:2-3). 지금 다 낫지도 않았는데 마치 나은 것처럼 제사장 앞으로 가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그런 순종을 보였습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가는 도중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서는 인간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마치 거대한 수원지의 물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수도꼭지를 틀지 않으면 그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기적을 완성하는 것은 둘째, 감사 신앙에 있습니다. 열 명이 모두 나음을 입었지만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한 자는 한 명 밖에 없었습니다. 그 한 명도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고, 유대인이 가장 혐오하던 사마리아 인이었습니다. 열과 하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극단적인 대조입니다. 그만큼 감사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당연히 감사해야 될 사람이 감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적이 일어나도 순식간에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불평거리를 찾아갑니다. 

천국은 감사하는 자의 마음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던 사마리아 인은 육신의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

우리는 감사를 모르는 영혼의 문둥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불평과 불만의 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감사라는 신경이 끊어진 자는 그 인생에 어떤 기적과 은혜가 주어지더라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실제 소록도에 가면 나병환자들의 믿음이 더 좋고 더 많은 감사를 합니다. 상담학으로 유명한 정태기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삶의 전환이 일어났던 것처럼 정 목사님도 자신의 신앙의 전환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이 바로 소록도였다고 합니다. 이 분이 젊은 시절 신앙의 회의가 들었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은혜가 되지 않고 아무리 기도해도 허공에 외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 훌쩍 아무 생각 없이 떠났던 곳이 소록도였습니다. 소록도에 있는 교회에 가서 수요 낮 예배를 드리는 중 통성 기도 시간이 되어서 모두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뒤에서 울며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그렇게 간절하고 가슴을 울렸습니다. “하나님, 제게 주신 은혜가 어찌 이리 큰지요? 어찌하면 이런 주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길이 있겠는지요?”

무슨 은혜를 받았기에 이렇게 기도하나 하고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흉측한 몰골을 한 문둥이 노인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해골처럼 머리카락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이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어디가 눈인지도 모를 지경인데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가락이 다 떨어져 나간 손으로 연신 훔쳐가며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에 정 목사님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사람은 저 모습으로도 저렇게 감사하는데 자신의 신앙이 부끄러워졌답니다. 순간 피를 토할 것 같은 통곡이 솟아나서 정 목사님도 울부짖으며 기도했답니다. 이렇게 기도하다 눈을 뜨니 그 문둥병 노인이 걱정스럽게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앉은뱅이걸음으로 교회를 빠져나가려는 그 노인을 붙잡고 정 목사님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뭐가 그렇게 고마우신가요? 무슨 은혜를 그리 많이 받으셨는가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내가 문둥병에 걸리자 피붙이도, 세상도, 다 나를 버렸지. 친구들도 떠나고 말이야. 그런데 이런 나를 버리지 않고 이 소록도까지 따라와 준 분이 계셔. 그 분이 내게 기쁨과 소망을 주셨지.”
“할머니가 오셨군요?” 하고 정 목사님이 말을 받았습니다.
“아니야, 예수님이 따라오셨지.”
이 순간 정 목사님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답니다. 문둥병에 걸려 엉망이 된 이 분은 예수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쁨과 소망을 주신 분으로 고백했습니다. 몇 배나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평이 가득한 우리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소록도 옆에는 ‘찌라도’ 라는 섬이 있는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소록도를 방문했던 분들은 그곳에서 ‘찌라도’ 라는 섬에 대한 안내를 듣게 됩니다. “이곳은 천국과 같은 곳인데 이곳에 가보고 싶습니까?” 하면 방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궁금해 하며 “예”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인도자가 그곳에 가려면 성경의 지도를따라야 한다며 하박국 3장 17절을 펴서 읽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여기가 바로 “찌라도” 입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돈이 없을찌라도, 건강이 없을찌라도, 늙었을찌라도, 못생겼을찌라도, 형편없을찌라도 감사하는 것 이것이 소록도의 또 다른 이름‘찌라도’이고 이것이 곧 ‘찌라도 신앙’입니다.

이들은 육신의 문둥병을 앓으며 영혼이 깨끗해진 사람들이고, 우리는 비록 몸은 건강할지 모르지만 불평과 불만, 욕심과 질투에 우리 정신이 어떻게 썩어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영혼의 문둥병자들입니다. 기적은 감사로 완성됩니다. 감사하는 자는 삶은 온통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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