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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은 역사 왜곡이다?<이한수의 공감팩션> - 김진명 '천년의 금서'
이한수 | 승인 2016.10.10 14:58

10월 3일은 개천 4349주년,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고조선보다 훨씬 앞서 기원전 7199년에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국가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정부는 개천절 말고 건국절을 따로 정하자고 하니 뭐가 뭔지 혼란스럽습니다. 단군조선은 우리 조상의 나라가 아닌가요? ‘조선’ 건국이 아니고 ‘한국’ 건국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 ‘한국’이 ‘삼한’을 말하는 것인지 ‘환국(桓國)’을 말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한국’ 국명을 다시 쓰면서 ‘삼한’을 잇는다고 했다는데 그 삼한이 마한 변한 진한을 말하는 건가요? 제후국에서 황제국으로 위상을 높이면서 국호를 한반도 남단 작은 나라들에서 따왔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 조상이 나라를 처음 세운 날을 기념하여 정한 개천절은 복잡한 역사 왜곡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고사는 왜 이렇게 복잡한 논란거리가 되어 버렸을까요. 근래에 중국에서 지나족 중심의 역사관 정립을 위해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동북지방(만주, 간도) 우리 민족의 역사를 자국 변방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황하 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의 하나이니 중국인들은 자부심이 대단하겠지요. 아시아 문명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 사상이 골수에 박여있을 겁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황화문명보다 앞선 선진 문명이 존재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려고 하니 난감할 수밖에요. 어떻게든 가려볼 심산인 모양인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노릇이지 그게 될 법이나 합니까.

중국 대륙 한가운데 서안에서 대규모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는데 진시황의 무덤인 줄 알고 발굴을 해보니 피라미드 속에서 동이족(중국이 우리 민족을 부르는 말)의 유물이 대거 나옵니다. 연대 측정을 해보니 황하문명 발생 시기보다 무려 1000년이나 더 오래된 것이랍니다. 서둘러 덮어 버리고 출입을 통제했지요. 서안의 피라미드는 압록강 유역에 있는 ‘집안’과 요하(랴오허) 유역에 있는 ‘홍산(츠펑)’의 피라미드와 너무 닮았습니다. ‘집안’과 ‘홍산’은 고조선의 강역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으니 서안과 요하 유역을 포함함 광대한 영역이 고조선의 문화권임이 거듭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 황하문명의 원조는 동이족이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요.

동이족의 유물 ‘옥결’ [KBS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서]

황하 문명보다 훨씬 앞선 요하 문명권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한반도의 유물들과 같은 계통임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요하 유역의 ‘싱룽와’ 유적지에서 발굴된 옥결과 한반도 고성에서 발견된 옥결은 같은 문명권의 유물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싱룽와’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촌락은 기원전 70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4대 문명 발생보다 무려 4000년이나 앞섰다는 게 너무나 놀랍습니다. 옥결과 함께 비파형 동검, 빗살무늬 토기는 출토지역이 서로 겹쳐 동일한 문화권임을 증명하는 유물인데 이 요하 유역의 문명권을 ‘홍산(츠펑)문명’이라고 합니다. 우리 민족 한(韓)족이 이 문명을 일구어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으니 기존 통설은 폐기될 수밖에 없겠지요. 유물 유적뿐만 아닙니다. 이 고고학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역사 서술이 번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설에 어긋난다 하여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상고사에 대한 기록으로 단군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낳은 단군왕검이 조선을 세웠다’는 요지는 달달 외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신화(神話)는 지어낸 이야기란 뜻이잖습니까. ‘역사책에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려도 될까요?’ ‘단군조선은 설화일까요?’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은 별로 없을 겁니다. 우리가 역사의식이 너무 없는 건가요. 곰이 사람으로 변신했다는 허구적인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렸는데 기원전 7199년에 환국이 세워졌고 47대에 걸쳐 2096년 동안 단군이라 불렸던 왕이 조선을 다스렸다고 수치까지 명확하게 기록한 역사서 [환단고기]는 왜 한국사 교과서에 일절 언급이 없을까요. [환단고기] <삼성기전>은 단군신화가 역사적 사실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인(桓仁)께서 BC 7199년 “흑수(黑水)로부터 백산(白山)쪽의 땅[於黑水白山之地]”에 환국(桓國)을 세웠다. 그리고 환웅(桓雄: 桓熊)께서는 BC 3898년 “백산으로부터 흑수쪽 사이[于白山黑水之間]”에 내려와 천평(天坪)으로 가서 우물을 파고, 청구(靑邱)에 농지를 지었으며, 신시(神市)에 도읍하여 배달국(倍達國)을 세우고 웅녀(熊女)를 만나 결혼하였다. 신시 후기에는 치후천왕이 청구를 크게 넓혔다. 단군왕검은 BC 2333년에 아사달(阿斯達)에 도읍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했다.”

기원전 3000년경에 형성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보다 4000년이나 앞선 우리 민족 문명사를 정확한 연대까지 밝혀 기록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지어낸 이야기라는 둥 위서(僞書) 논쟁이 일어날 만도 합니다. 그런데 [환단고기]의 기록과, 앞에서 말한 유적 유물 연구 결과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걸 보면서 이 책에 다시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옥결, 비파형동검 등의 유물은 한반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고인돌의 분포 지역과 겹치는데 이 지역은 유목 민족이 이동하며 거주했던 스텝(대초원) 기후대와 일치합니다.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통해 인류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유전공학의 최근 연구 결과도 [환단고기]의 기록과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료적 가치가 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책은 역사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고인돌 문화권과 일치하는 스텝 기후대

서남공정으로 티벳을 중화문화권으로 편입시킨 중국은 고조선 발해 문화권까지 넘보며 동북공정을 벌이고 있습니다. 황하문명보다 훨씬 앞선 홍산문명을 가리기 위해 유적지를 폐쇄하고 고조선 관련 서지(書誌) 자료를 왜곡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총리가 한중 양국 정상회담에서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인용하면서 상호 존중하는 양국 관계를 강조했는데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동존이(求同存異)’, 다름을 존중하고 같음을 추구한다는 말인데, 겉으로는 이렇게 치장하면서 어찌하여 변방 족속을 중화에 편입시키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려고 드느냐 말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역사 왜곡을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되돌아봅시다. 우리 민족 상고사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동안 내가 참 무관심했구나, 아프게 반성하게 됩니다. 김진명의 소설 [천년의 금서]를 읽으면서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참담하기까지 했습니다.

소설은 우리에게 ‘대한제국의 ‘한(韓)’은 어디에서 온 말인가?‘ 묻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한(韓)은 삼한(三韓, 진한 변한 마한)을 계승한 국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고조선의 강역이 중국의 수도 북경과 몽골, 만주, 시베리아 지역을 포괄할 정도로 넓었는데 어떻게 한반도 남쪽의 소국을 계승하여 국명을 정했다는 건지 잘 납득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삼한을 백제, 가야, 신라가 세워지기 이전에 삼남지방에 있었던 소국들이라고 역사책에서 배우지 않았습니까. [환단고기]에는 삼한을 고조선의 관할 구역 ‘삼한관경(三韓觀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은원 교수는 함께 상고사를 연구하던 동료 김미진 교수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가 현장을 둘러보면서 자살한 게 아니라 타살된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한 교수는 그의 죽음이 중국의 동북공정 음모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아내고 중국이 감추려고 하는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한(韓)의 기원을 추적합니다. 한 교수는 자신의 성씨 한(韓)의 기원을 찾는 일이 곧 우리나라 국명의 시원을 찾는 일이라는 사명감을 갖게 되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며 감춰진 중국 문서를 찾아 나섭니다. 중국 후한시대의 학자 왕부가 쓴 고문서 [지명원류고]를 찾아내고 한국(韓國)이 [환단고기]에 기록된 대로 중국의 최초 국가 ‘하’ 나라보다 오래된 고조선 이전의 우리 민족 국가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소설은 [지명원류고]라는 책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성의 집결을 관측하고 기록한 흔적을 보고 동국이 이미 큰 나라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천 년 후 이들의 자손이 주를 찾았으니 그 내력이 중화에 못지않으리라. 놀라운 일이로다! 놀라운 일이로다!”

[환단고기]의 기록이 중국 고문헌의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데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무시하는 건 말이 안 되지요. 특히 천문 관측 기록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사실임이 증명되면서 학계에 충격을 주는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열세 번째 단군 흘달 50년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한 줄로 늘어섰다(오성 집결)’고 기록되어 있는데 서력으로 환산하면 기원전 1733년으로, 현대 천문과학 기술로 계산한 결과와 거의 일치하니 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고조선은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한 선진국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소설에서 언급한 [지명원류고]라는 책은 실제로 있었던 책은 아닙니다. [시경]이나 [잠부론]이라는 중국 역사책에 주나라와 대등한 강국 ‘한(韓)’이 언급되었고 천문 관측 기록이 사실로 증명된 만큼 [환단고기]를 역사책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허구적 이야기를 빌어 웅변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자국 중심의 역사 서술에 골몰하고 있는데 우리는 유적 유물뿐만 아니라 여러 문헌을 통해서 사실임이 입증되고 있는 역사마저도 부인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질타하고 있는 겁니다. 러시아 역사학자 ‘U.M.푸틴’이라는 분도 우리나라 답답한 사학계에 일침을 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동북아 고대사에서 단군 조선을 제외하면 아시아 역사는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만큼 단군 조선은 아시아 고대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째서 그처럼 중요한 고대사를 부인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내는데 당신들 한국인은 어째서 있는 역사도 없다고 그러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문제이지만 아직도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도 참 문제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편수회라는 직할 관청을 설치하고 우리 역사를 마음대로 주물렀는데 그 만행이 이만저만 악독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때 한국사 편찬을 주도했던 사학자들이 해방 이후에도 계속 한국 사학계를 주름잡았으니 이 나라에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식민사관에 세뇌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역사책을 잘 모를 수밖에요.

점제현 신사비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얼마나 무도한 짓을 했는지 알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낙랑국 비석 도굴 사건을 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고조선의 강역을 축소시키기 위해 중국 북경 근처 갈석산에 있던 낙랑국 신사비를 몰래 파내어 평안남도 점제현으로 옮겨다 놓고 낙랑군(한4군)이 평안도에 있었다고 날조했습니다. 그 일을 꾸민 자가 일본 사학자 ‘이니마시 류’인데 우리나라 강단 사학계의 태두 이병도는 그의 조교였습니다. 그는 해방 이후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우리 역사를 좌지우지한 식민사학자입니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제와 친일 식민사학자들이 벌인 역사 왜곡은 사악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일제의 역사 왜곡을 형상화한 작품으로는 신용우의 소설 [환단고기를 찾아서]을 추천합니다. 한일합병 이후 삼일만세운동 때까지 조선 고대사 문헌을 싹쓸이 수거하고 비석까지 파 옮기면서 우리 역사를 농단했던 저들의 만행을 너무 리얼하게 그려냈습니다. 난도질당한 우리 역사의 비극에 통한의 아픔을 느끼며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한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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