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 주체적 기독교를 찾기 위해 몸부림 친 믿음의 선조들. 참기독교를 고민했던 그들의 행보에서 나의 하느님, 우리의 기독교를 모색해본다. 8회에 걸쳐 만나게 될 이들에게 진한 신앙의 향기와 고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편집자주

▲ 러시아정교회 대주교관.‘동방 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정교회’는 AD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회복한 정교회가 1054년 동·서로 갈라지면서, 서방교회는 ‘로마 가톨릭’으로, 동방교회는 ‘동방 정교회’라고 불려왔다.

“하나님, 왜 당신은 침묵만 지키고 계십니까?”라고 절규했던 한 포르투갈 신부가 있다. 선교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 온 그에게 성화를 밟음으로 신앙을 버리고 배교(背敎)하도록 종용하는 권력. 그 앞에서 그는 하나뿐인 목숨을 버려 순교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그래, 이건 내 신앙을 버리는 것이 아니야. 그저 그림을 밟는 것뿐인 걸…’이라고 자위하며 그 순간을 지나쳐야만 하는가.

엔또 슈샤꾸의 소설 <침묵>은 배교와 순교의 갈림길에서 진리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쉽게 저버릴 수 없는 ‘어렵고 혹독한 갈등’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신앙을 위해 죽느냐 사느냐”라는 극단적 상황 설정, 게다가 ‘소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침묵>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가슴 깊은 곳에 오래도록 아련한 통증을 남긴다. 아마도 ‘언젠가 그런 일이 닥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갗라는 가정에 대한 대답이 그리 명쾌하게 내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통증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 <침묵>과 같은 상황은 단지 가정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많은 신앙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당해왔다.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18세기 조선시대, ‘서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수없이 처형당했고 선교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던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로마의 지배 당시 초대 기독교인들이 받았던 탄압이나, 2차세계대전 중 유대인들이 민족적 이유로 대량학살을 당했던 것도 넓은 맥락에서 종교탄압의 한 형태였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기독교인들이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유형무형의 압박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에 벅차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 중 하나는 러시아의 정교회가 당했던 종교적 박해다.

‘동방 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정교회’는 AD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회복한 정교회가 1054년 동·서로 갈라지면서, 서방교회는 ‘로마 가톨릭’으로, 동방교회는 ‘동방 정교회’라고 불려왔다.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러시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알바니아 등에 많은 수의 정교회가,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일본, 체코 등에도 소수의 정교회가 분포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에 시작된 종교적 탄압

1917년, 러시아의 정교회에는 일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 은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시초에 불과했다.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당은 엄격하게 종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은 종교에 대해서 중립적일 수 없다. 당은 모든, 그리고 종교적 편견들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반종교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당원칙에 따라 모든 종교는 배척되었다. 얼핏 들으면 그저 하나의 ‘당’의 원칙일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의 의미가 국가와 동일하다는 이해를 갖는다면 그 원칙이 얼마나 철저한 것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종교인들에 대한 원칙적 탄압을 선언하고 나선 러시아 볼셰비키당의 핍박은 1988년경까지 지속돼 러시아의 정교회는 70여 년의 세월을 마치 ‘계엄’아래 있는 것처럼 지내야 했다. 물론 70년의 시간동안 그 강도와 형태는 계속 변해갔지만 정권의 근본적인 태도는 항상 동일했다.

철저한 이론적 근거를 통해 ‘종교가 철저하게 인민들을 우매하게 한다’고 믿었던 당시 무신론자들에게 종교인들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볼셰비키당원들은 교회와 국가 사이의 단순한 중립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고 모든 조직 교회의 활동을 억제하고 종교적 신앙을 제거하기 위해서 직·간접적 수단을 동원하여 탄압하였다.

이런 지속적인 종교적 탄압의 과정 속에서 그 억압에 못이겨 정치와 타협하여 ‘교회의 생존’을 도모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줄어드는 교회의 ‘숫자’를 위해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많은 성직자들이 당과 손을 잡고 타협했고, ‘대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들과 결탁하기도 했다.

▲ 러시아의 극동하바로프스크 정교회당.핍박과 고통의 순간은 매순간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 매번 많은 이들이 교회와 신앙을 버린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순간에도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이 신앙을 지켜냈고, 그 신앙의 빛은 기독교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속속들이 찾아 없애라!

새로 권력을 쥐게 된 볼셰비키당원들은 재빨리 그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1918년 제정된 법률에서 교회는 모든 교육제도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신학교와 학술원은 폐교 명령을 받았고 교회 건물, 토지, 그리고 금전은 국가 소유로 선포되었다. 또 지역의 권력자들은 그들 마음대로 예배 장소의 사용 허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의 권력자들이 ‘노동자들의 요청에 따라서’ 교회를 폐쇄하도록 결정한다면 신자들은 그에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교회가 모든 권리를 빼앗겼다는 것은 교회가 ‘불법 단체’와 같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엄격해져갔는데, 1918년의 헌법에서 “종교와 반종교에 대한 선전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데 반해 1929년에 제정된 법률에서는 “종교적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적 선전의 자유”로 바뀌었다. 이 둘의 차이가 커 보이지 않을지 모르나 매우 중요하다. 1929년에 제정된 법률은 교회의 어떠한 포교나 대내외적 활동을 금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커다란 제재였다.

당시 교회는 종교예식도 원칙상으로만 허가된 상태였지 실제로 교회 문을 열고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소수였을 뿐이었다. 1943년이후 교회는 사제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소수의 교육기관을 가질 수 있었고 제한된 출판업무를 할 수 있었다. 또 감독과 성직자들은 구제와 사회사업에 관여할 수 없었고 교도소, 병원 혹은 정신병동에서의 목회 사역은 불가능했다.

교구사제들은 어떤 종류의 청년조직이나 학습 동아리도 만들 수 없었다. 목회자들이 공식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란 소수 교회에서의 예배중 설교였을 뿐이다. 교회에서 출판할 수 있는 책자는 예배 순서지뿐 기본적인 어떤 책자도 금지되었다. 더욱이 성경 사본조차 아주 희귀해서 암시장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모든 비밀경찰들의 기독교인들과 성직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였다. 언제나 모든 감시의 눈초리 속에서 생활해야 했던 것이다.

배교하느니 순교를 택하겠다

그러나 가슴 아픈 것은 교회에 대한 이런 억압과 탄압이 재산과 생활을 제재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투옥되고 처형되었으며 감옥에서 고문을 당해야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 여러 해에 걸쳐 러시아 신자들은 그 정도와 잔인함에 있어서 초대 기독교인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러시아에 있는 종교인들은 모두 반혁명가로 분류됐다. 한 번에 150명이나 되는 주교들이 동시에 투옥되었고, 1918~1919년 사이에 28명의 주교가 처형당하였다.

1923~1926년 사이에는 50명 이상의 주교가 볼세비키 당원들에 의해서 암살되기도 하였다. 또 1926년경 당시 러시아에 살고 있던 어느 주교의 제보에 따르면 2,700여 명의 사제들, 2,000여 명의 수사들, 3,400여 명의 수녀들과 서품된 자들이 처형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의 러시아 망명 작가들에 따르면 사제들만 해도 12,000여 명이나, 아마 훨씬 더 많은 수의 사제들이 추방되거나 죽음을 당했다고 추정한다. 이런 통계는 물론 정확한 숫자일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숫자의 추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당시 억압적인 러시아 공산주의하에서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자발적 순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신앙의 몫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았던 것이다.

▲ 부활절 축제 중인 모스크바의 조이오브올서로우성당.엄청난 숫자의 추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당시 억압적인 러시아 공산주의아래서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자발적 순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신앙의 몫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았던 것이다.

그 속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처형당한 많은 사제와 수녀, 가혹했던 탄압, 70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속에서 러시아 정교회인들이 당해야 했던 고통은 머나먼 거리에 있는 우리에겐 한낱 흘러간 치열한 역사쯤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혹은 정반대로 기독교인들에게 처참하게 핍박을 가했던 당시 무신론자들에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역사적 과정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배움과 태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잔인한 박해와 고통과 희생 뒤에는 그 이상의 값진 신앙의 꽃이 피어났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 박해와 고통이 있었기에 곳곳에서는 ‘신실한 영성생활의 태동’이 있었으며 세속적 요소를 버리고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떠난 맑고 깨끗한 신앙심의 드러남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고통 속에서 진정한 신앙을 체험하고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계기와 함께 그 핍박의 역사를 조명할 때만 순교자들의 생명의 가치는 빛난다. 당시 러시아 교포가 쓴 아래의 글은 우리가 그 핍박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준다.

“신앙이 시험에 처해진 곳에서는, 넘치는 풍부한 은총과 가장 놀라운 기적들이 있었다. 즉 놀라서 바라보는 이들의 눈앞에 새로워지는 성화상,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빛으로 빛나는 교회의 둥근 천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십자가형을 당하시고 묻히신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의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로부터 늘 판단을 받으신다.”

핍박과 고통의 순간은 매순간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 매번 많은 이들이 교회와 신앙을 버린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순간에도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이 신앙을 지켜냈고, 그 신앙의 빛은 기독교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 * <주간기독교>에 연재했던 기사를 재편집, 보강하여 싣습니다.

김진아 기자  nebo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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