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4년도에 HIV감염사실을 처음 알았고 98년도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감염인들의 질병을 진료해 주는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진료 거부를 당하거나 진료를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있어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최근 들어서 차별이라고 느꼈던 경험은... 제가 평소에도 이가 안 좋아서 새벽에 진통 때문에 응급실에 간적이 있는데 의사가 제 진료카드를 입력해 보더니 계속 진료해주지 않고 기다리게 하다가 제가 항의하니 진통제만 주면서 내일 다시 오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너무 기분이 나빴고 그 자리에서 싸웠습니다. 이후 국가인권위에 재소했습니다...또 다른 병원에 스케일링을 받기위해 예약을 했더니 아직 비닐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예약을 미뤘습니다. 왜 치과 치료에 비닐이 필요한건지 몰라 어리둥절 했는데 예약 당일 제가 치료받을 의자와 그 옆 파티션까지 비닐로 다 덮여 있었고 스케일링이 끝난 뒤 보니 쓰레기 봉투에 ‘HIV’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료 거부, 차별을 당하며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자괴감’입니다. 내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가...” - HIV감염인 A씨의 증언 

HIV/AIDS감염인 의료차별, 진료거부 실태조사 보고대회가 13일(화) 인권중심사람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에큐메니안

HIV/AIDS 감염인들이 당하고 있는 진료 거부 및 의료 차별의 양태들은 다양하고 심각하다. 지난 13일(화) 인권중심사람 다목적 홀에서 열린 HIV/AIDS 감염인 의료차별, 진료거부 실태조사 보고대회에서는 위 A씨 뿐만 아니라 HIV/AIDS 감염인들이 경험한 다양한 형태의 의료차별 및 진료거부 형태가 보고 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권미란 씨(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용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가)는 국가인권위에서 의뢰한 감염인 의료차별 실태조사에 참여해 왔다. 13일 보고대회는 지난 1년 동안 진행된 10명의 감염인들의 심층인터뷰 결과를 총정리하고 재발 방지와 예방을 위한 법적 대책을 고민해 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감염인들이 진료 거부, 의료 차별을 당해 진정 및 고소고발 등을 한 병원은 응급구조대, 국내 대형 병원, 시립 병원에서 동네 개인 병원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입원치료, 진료 거부 뿐만 아니라 당시 환자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응급조치, 신장 투석까지 거부하기도 했다. 또한 진료 접수 과정에서 질병정보를 누설하거나 식판 및 체온계 등을 일반 환자와 구별 하는 등 인권침해 사례도 있었다. 

국내 인권의식이 조금이나마 발전함에 따라 위 같은 사례들이 국가인권위에 재소 되거나 경찰, 검찰에 기소 됐지만 대부분 기각되고 무혐의 처리 됐다. 차별 증거가 명확하지 않거나 국가인권위의 조사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이유다. 현재 국가인권위에 차별 진정 접수된 사례도 더러 있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들을 보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권미란 씨는 “HIV 감염인과 의료공급자간 정보 비대칭과 협상력의 차이가 커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을 입증할 증거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로 감염인에게 즉각이송과 응급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해당 응급 구조대는 “감염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소 늑장 대응이 잦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는 이들의 손을 들어줬고 결국 해당 건은 기각됐다. 

그나마 국가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하거나 경찰, 검찰에 호소한 사례는 나은 축에 속한다. 대부분 진료거부, 의료 차별을 당한 감염인들은 항의하지 못한다. 감염 사실에 대한 수치스러움, 자괴감은 물론, 감염 사실이 알려져 입을 2차 피해가 두려워서다. 당장 기분은 나쁘지만 ‘참고 말지’하고 넘긴다. 

발제를 맡은 권미란 씨(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가) ⓒ에큐메니안

권 씨는 인터뷰 참여자들이 대부분 “의료인들이 정확한 지식을 통해서 차별 없이 진료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HIV/AIDS 감염인에 대해 일반인들도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지만 의사들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대희 씨(KNP+ 자문위원/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는 “치료나 예방이 어려웠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질병의 만성화에 따라 HIV 감염 치료를 전담하는 대형 병원에 감염인들의 집중화가 일어나면서 소규모 의료기관의 경우 HIV감염인을 진료하게 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짚어 냈다. 

실제로 HIV/AIDS 감염인들을 진료할 기회가 없다보니 그들이 걸리는 작은 질환을 다루는 소규모 의료기관에서 감염인 질환 치료는 의료의 사각지대다. 김 씨는 “HIV 감염 치료 임상경험이 부족한 의료인들에게 적절한 임상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실습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진료 과정중 발생 가능한 HIV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는 실질적 홍보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의료인뿐만 아니라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지식은 모두에게 희박하다. 토론에 참여한 이인규 씨(대한에이즈예방협회)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에이즈 정보 관련 홍보물을 의료기관에 지속적으로 배포해야할 뿐만 아니라 대국민 에이즈 정보 교육 및 홍보를 활발히 하여 에이즈에 대한 인식전환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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