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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툼어가 내게로 왔다<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7.01.10 11:16
 
세계에는 3,000여개의 언어가 있다. 나는 그 중에 하나인 테툼어에 빠져 있다.
 
테툼어는 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국어도 아니고, 세계 공통 언어로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영어도 아니다. 겨우 인구 백 만 명이 사용하는 동티모르의 토착언어이자 모국어이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테툼어 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공문서 등은 포루투갈어를 사용하고 포루투갈어로 된 교과서로 수업을 받는다. 이렇게 동티모르는 테툼어와 포루투갈어 두 개의 공식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꾀 이름이 알려진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대표팀의 김신환 감독님이 우리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김 감독님은 인도네시아어로 강의를 하였는데 학생들은 그 강의 내용을 알아듣고 있었다.
 
수업시간 ⓒ임정훈
감독님이 강의 중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대답도 곧 잘하고 머리도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강의 중에 간간이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하였는데 그때 인도네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나만 멀뚱멀뚱 멋 적게 서있어야 하는 교실안의 이방인이었다.
 
나는 수업을 할 때 테툼어에 없는 단어나 문법은 영어로 설명을 해 준다. 예를 들어 테툼어에는 시제가 없기 때문에 ‘가다’라는 동사의 시제를 설명하려면 ‘GO', 'WENT' 'GONE' 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써 주며 설명을 한다. 우리 학생들은 영어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학생 까를로스 ⓒ임정훈
동티모르는 학생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성인들은 테툼어, 포루투갈어, 인도네시아어 여기에 영어를 더하여 4개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몰론 개별 차이는 있겠지만 학교 동료 선생님들만 봐도 그렇다. 외국어 하나도 제대로 구사하기 어려운데 4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동티모르 사람들이 테툼어인 모어 외에 다른 언어를 잘 할 수 있는 이유는 역사적인 면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포루투갈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생활과 유엔군의 주둔으로 다양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 언어에 대한 넉살이 좋다고 할까.
 
길을 걷다보면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나를 보고 ‘니 하오’라고 먼저 말을 걸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야’라고 말을 해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바로‘안녕하세요?’라고 말을 바꿔 인사를 한다.
 
입학식 ⓒ임정훈
동티모르 아이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여러 나라의 인사말을 하며 외국인에게 쉽게 다가온다. 나는 이런 아이들을 볼 때면 다른 언어는 고사하고 영어 한 가지만이라도 넉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오는 동안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영어. 나는 영어 앞에서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울렁증이 도지고 어느 가요의 노랫말처럼 한없이 작아진다.
 
나는 딜리에 있는 International 교회에 다닌다. 교회에 가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담소를 즐긴다. 그래서 얼마든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내가 교인들에게 먼저 인사를 한 적이 없다. 도무지 영어와 친해지지 않는다.
 
그런 반면 테툼어는 좀 달랐다. 단순하고 간결한 문법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해하고 활용하면 쉽게 문장을 만들고 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영어와 달리 일단 말을 하는데 재미가 있고 내가 새로운 나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상하게 영어나 중국어보다 단어도 잘 외워진다. 언어도 사람과의 관계처럼 마음과 감성이 잘 맞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동티모르에 와서 처음엔 벅벅거리며 테툼어를 조심스럽게 입을 떼기도 하였지만  열심히 선생님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 복습과 예습을 철저히 하였다. 강의는 2개월로 끝이 났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혼자 테툼어 교재로 학습을 하고, 테툼어로 말이 하고 싶어서 길을 걷다가도 내가 먼저 말을 거는 넉살도 보였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테툼어가 내게로 와서 귀와 입이 열리게 되었다.
 
수업듣는 아이들 ⓒ임정훈
내가 동티모르에 오자마자 한 일은 1,2,3학년 고등학생을 위한 한국어 커리큘럼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 만든 커리큘럼으로 우리학교는 교육부로부터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정규과목에 들어가게 되어 다음해 신학기부터 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동티모르 고등학생들에게 한국어가 필요한 이유는 동티모르에 많은 청년들이 한국에 가서 공장이나 수산업 쪽에 일을 하기를 원하고 이를 위하여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작년까지 2,273명의 동티모르 청년들이 한국에서 일을 마치고 왔거나 현재 일을 하고 있으며 한국으로 일을 하러 가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만 해도 해마다 천여 명이 넘는다. 그래서 나는 먼저 우리학교 학생들이라도 쉽게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테툼어로 번역된 한국어 교재를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우리학교에는 나 외에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두 분의 선생님들이 있는데 함께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교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뜻이 모아지자 우리는 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어 교재를 만드는데 주력을 하였고, 일단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해야 할 3학년 학생을 위한 교재를 먼저 만들어 이번 신학기부터 사용 할 수 있도록 지금 준비하고 있다. 책 제목은 ‘KAPAS LIAN KOREA’다. ‘KAPAS’는 테툼어로 ‘아름답다’는 뜻이고 ‘LIAN’은 언어라는 뜻이니‘카파스 리안 코레아’는 ‘아름다운 한국어’라는 뜻이다.
 
학생 헬리나 ⓒ임정훈
우리 세 명의 한국어 교사는 고3 학생을 위한 교재를 만들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1,2,3,학년이 사용 할 수 있는 한국어 교재를 새로 만들려고 준비 중에 있다. 이 책이 한국어를 배우는 다른 동티모르 청년들에게도 유용하게 활용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나는 동티모르를 떠나기 전에 한가지 하고 싶은 일이 더 있다. 그것은 테툼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학습자들이 한국어를 쉽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며 그것을 위하여 먼저 한국어와 테툼어를 비교하여 정리 하는 일이다.
 
동티모르에서 지낸 시간들이 내 삶의 일부인 만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테툼어를 사용하며 함께 정을 나누며 지낸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어나 중국어와는 달리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 테툼어에 대한 고마운 나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선물로 남겨주고 동티모르를 떠나고 싶다.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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