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며 광장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인 횟수만 19번, 기간으로는 98일이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가 내려진 후 열흘이 지났다. 다시 토요일의 광장은 한산해졌다. 사저로 복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첫 소환조사를 하루 앞두고 있다. 

사실 국민들에 의해 형성된 ‘촛불정국’은 처음 일이 아니다. 촛불은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타올랐다.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가 그랬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집회, 광우병, 세월호가 그랬다. 촛불 집회는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 나타난 중요한 민중현상 중 하나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지난 ‘격동의 98일’을 ‘시민명예혁명’으로 표현했다.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박 시장은 “국민들의 평화 집회 의지와 역량이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거나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며 이에 대한 지원을 추진해 보려한다는 계획도 전했다. 

박원순 시장을 비롯해 2016-2017 촛불집회의 의미를 분석하고 이어가려는 노력들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3월 6일에 열린 민중신학회 세미나에서 강원돈 교수(한신대 기독교윤리)는 2008년 촛불집회와 2016-2017 촛불집회의 긍정적 측면과 한계를 비교, 분석하며 우리사회가 촛불집회를 통해 민중정치로 향해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강원돈 교수 (한신대 기독교윤리)

2008년 촛불집회의 군중들은 누구인가? 

2016-2017 촛불집회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규모의 군중이 참여했던 2008년 촛불집회는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제도권 정치는 민중의 요구를 수렴하지 못했다. 경제대통령을 자처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 성장은커녕 국민의 생명과 건강까지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협상을 타결했다. 2008년 촛불집회에도 연령, 성별, 계층을 막론하고 엄청난 군중이 모여들게 했다. 강 교수는 2008년 촛불군중이 뚜렷한 주도 단체 없이 다양한 연령, 성별, 계층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느슨하게 결속되는 특징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그들은 이전과는 대비되는 새로운 운동 주체로의 가능성을 보였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강 교수의 분석이다. 

강 교수는 이들이 ‘다중’이라는 개념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중’이라는 기념은 네그리와 하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자발적인 네트워크 소통을 통해 공통적인 것을 창조하는 유니크한 행위주체들의 집합을 말한다. 그러나 2008년 당시 광장으로 모여든 군중은 ‘국민의 건강한 삶’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였지만 더 본질적인 것을 우회했다. 바로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다. 강 교수에 따르면 2008년에 군중들을 모여들게 했던 광우병 공포는 ‘어떤 것’의 징후였다. 그것은 자본이 부추기고 있는 성과주의와 소비주의의 물신적 상징질서에 가려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또한 2008년 촛불집회의 특성은 집회를 이끌었던 ‘대책회의’의 지도력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있다. 대책회의의 헤게모니는 민중적 이해관계 보다는 시민적 이해관계에 치중했다. 결국, 100번째 촛불집회가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된 이후, 촛불 군중이 한사코 반대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반도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등 거침없이 추진됐다. 

강 교수는 “2008년 촛불집회가 남긴 교훈은 시민의 보편적인 이익과 권리를 앞세워 민중적 이해관계의 추구를 부차화하거나 계급적 이기주의로 낙인찍고 시민사회 중심의 협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민중의 이해관계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정리했다. 

2016-2017 촛불집회에 더 많은 깃발이 펄럭인 이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이를 규탄하는 민중총궐기에 의해 촉발된 2016-2017 촛불집회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개인들이 군중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물론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나 다양한 시민, 사회단체들에 의해 조직된 사람들도 있지만 자연발생적으로 모였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했다. 2008년에 징후만 보였던 그 ‘어떤 것’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났다.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국민들은 삶의 파탄을 겪었다. 2016-2017년에 모인 군중들이 외친 것은 비단 국민의 생명권뿐만이 아니라 적폐청산이었다. 강 교수는 이들이야 말로 민생파탄에 저항하는 ‘민중’이라고 명명했다. 

“국정농단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박근혜 정권에서 쌓인 적폐들과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전면적인 삶의 파탄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이 군중을 이루어 적폐청산을 외쳤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3포세대, 5포세대, 7포세대,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혼밥, 혼술과 같은 단어들이 우리시대에 키워드가 된 것도 이와 무관 하지 않습니다. 2008년 촛불집회와 달리 2016-2017년 촛불집회에서 ‘깃발들’이 펄럭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2016-2017년 촛불집회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의 지도력도 두드러졌다. 퇴진행동은 그때그때 조성된 국면에서 구호를 가다듬고 모인 군중들은 그것을 함께 외쳤다. 강 교수는 퇴진행동의 지도력이 촛불 군중 사이에서 인정되고 존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강교수는 촛불집회가 민중정치로 나가기 위해서는 민중의 정치적 구심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력 장치들은 민중은 체제 바깥으로 배설하는 찌꺼기처럼 여기지만 민중은 그 권력 장치들이 작동하는 체제 안에서 그 체제를 해체하는 역량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87년체제’의 해체가 필수적이다.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한 개헌논의는 민중의 광범위한 참여를 전제해야 한다. 또한 민중적 당파성을 가지고 군중 운동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지도부도 필요하다. 강 교수는 “아직 확실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그러한 지도부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더 많은 정의,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인권을 구현하고자 하는 민중정치 과정에서 창출 되어 그 정치를 지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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