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칼럼
처녀시절 낭창낭창 그 조손하고 사뿐거리던 자태는 어디가고..<전순란의 지리산 휴천재일기>
전순란 | 승인 2017.04.29 16:36

이틀간의 밭일로 무릎이 펴지질 않는다. 우리 동네 할메들, 평생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거나 밭고랑을 기어다니니까 고관절이 벌어진 채로 무릎은 구부러졌고, 그렇게 봄여름가을로 흙과 얼굴 비비다보니 다리가 휜 채로 0자형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걸음걸이는 바닥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어깨를 뒤로 젖히고, 배는 앞으로 내밀고, 관성의 법칙에 따라 자전거 페달 밟듯 양손을 열심히 앞뒤로 저어야 몸이 앞으로 나간다. 아아, 처녀시절 낭창낭창 그 조손하고 사뿐거리던 자태를 어느 구석에서 찾아보아야 할까?

오리궁둥이를 깔고 앉았다 일어서려 해도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난다. ‘겨우 그 일로 엄살이냐?’고 놀리려던 보스코, 갑자기 귀요미 미루의 처지가 생각났던지 "그나마 다행이다, 당신 햇볕 알레르기가 없으니"란다. 우리 부부가 ‘프로 농부’가 아니어서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다.

출처 : 전순란 블로그

배나무 밑에 우엉을 심었는데 작년 가을에 캐려다 보니 너무 가늘어 우엉은 2년생이니까 올봄에 캐면 좀 더 자란다는 마천의 윤경씨 얘길 듣고 오늘 캤다. 나와 드물댁이 풀을 뽑느라 풀과 씨름을 하는데 배나무 밑에서 달가닥 거리는 괭이소리가 나기에 가보니 보스코가 커다란 잎새를 베내고 뿌리를 캐고 있다. 

포클레인으로 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엉은 뿌리를 4, 50cm까지 일직선으로 내리뻗는 식물인데 보스코는 괭이질 서너 번에 우엉 뿌리가 20여cm가 나오면 괭이 끝으로 부러뜨려 뽑아내고 땅속에 남은 더 기다랄 뿌리는 "캐고 싶으면 당신이 캐든지..." 라는 투로 흙을 덮어버린다.

이렇게 어설프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절망않고 포기않는 우리에게 마을 아짐들은 "굳세어라, 금순아!"라고 응원을 해주니 고맙다. 보스코가 오늘도 바람이 일지 않는 새벽 일찍 배나무 소독을 했다. 나도 동네 사람들 하는데 따라 10여년 부지런히 철따라 고랑 일구고, 멀칭을 하고, 씨와 모종을 심고, 시시로 풀을 매니까 이제는 이웃이라고 인정해 준다.

출처 : 전순란 블로그
출처 : 전순란 블로그

호미질하다 심심하면 저 아래 혼자서 고추밭 지주를 박느라 바쁜 유영감님에게 한 시간 간격으로 "아저씨!"(산꼭대기에서 '야호~'하는 투로)하고 불러서는 손을 흔들며 "안뇽!!!"하면 그때마다 껄껄껄 웃으신다. 마나님이 세상을 버린 지 6년이지만 이 동네에서 안팎으로 제일 깨끗한 집이 그 집이고 창고도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되어 있던지 보스코와 내가 그 안에 들어섰다가 마주보며 혀를 찰 정도였다. 고추밭의 고추들도 "헐~, 꼭 저렇게 줄을 맞춰야 하나?" 할만큼, 북한군 김일성 생일 열병식만큼 가지런하다.

드물댁과 나 두 여자가 이틀 걸쳐 맞대고 김을 매다 보니 많은 얘기가 오간다. 우리 텃밭 끝에 옻나무는 내가 심은 일도 없지만 제동댁네 것도 아닌 듯 ‘경계목(境界木)’이어서 내가 순을 좀 땄다. 드물댁네 뒤꼍에도 가죽나무가 있는데 늘 뒷집에서 손을 댄단다. 올해도 손을 댔기에 쫓아가보니 이미 데쳐서 초장에 무쳐 막 먹으려던 참. "니, 도둑놈이가!" "기래도 다는 안 따왔다. 내 먹을 만큼만 따왔다." 너무 천연덕스러워 “니 아들한테 일러뿌릴까보다” 하니까 그제서야 바들바들 떨더란다.

출처 : 전순란 블로그
출처 : 전순란 블로그

부모에게 정말 무서운 건 자식체면이다. "그래서 진짜 이를려구요?" 라고 내가 물으니 "어데, 아들 속상하구로 어째 일르노!" 란다. 남의 새끼도 내 새끼처럼 아끼는 맘이 조용히 묻어난다. 때마침 옻순 주인 제동댁이 지나가기에 “옻순 먹고 싶어 내가 좀 땄제.” 하니 “하모 한번 꺾어먹어서 두 번째 순이라 맛 없으면 우야노?” 라며 맛걱정을 해준다.

해넘이에 허리를 펴고 일어나 집으로 올라오니 우물가 고무양푼에 우엉이 물에 담겨 있다. 정말 그만 하고 싶었는데, 우리집 악덕 기업주 뺑덕아범이 야간 잔업까지 시키다니... 하는수없이 수세미로 씻고 강판으로 썰고 (썰어 놓고 보니 족히 4kg. 씨앗 값 2000원에 이 정도 수확이면 대단한 소득) 불에 올려 쪄 놓았다. 앞으로 여덟 번 더 찌고 말려서 덖으면 올 한해 우리 며느리랑 마실 우엉차가 마련된다.

출처 : 전순란 블로그
출처 : 전순란 블로그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