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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있었습니다"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
김령은 | 승인 2017.05.12 16:14

"바로 작년 이 곳에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내가 걸었던 길을 걸었을 한 여성이 여자라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그제서야 이 모든 죽음을 나의 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여자라는 이유로 죽음으로 내몰린, 생명을 강탈당한 이들이 그렇게도 많았습니다. 하나님, 애통해 하심시오. 하나님, 당신이 아파야 마땅합니다."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강남역 부근 공중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범인은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해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자와는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했다. 일부는 사건을 ‘묻지마 살인’으로 치부했으나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여성들은 명백한 ‘여성혐오 살인’으로 규정했다. 강남역 10번 출구벽에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이라는 여성들의 고백이 적힌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11일(목) 강남역 10번 출구 앞, ‘살아남아, 다시 붙인다’는 제목으로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를 추모하는 예배가 열렸다. 믿는페미 짓는 예배,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가 공동 주최했다. 지난 범죄의 희생자 뿐만이 아니라 지금 껏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억압받고, 죽임당한 이들을 기억하는 예배였다.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가 11일(목) 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 열렸다 ⓒ에큐메니안

예배는 윤동주 시인의 ‘팔복’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순서를 이어받은 ‘오스칼네 고양이’(믿는 페미)가 현장의 기도를 드렸다. 기도는 지난 역사 속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수없이 많은 이들의 이름으로 드려졌다. 중세 유럽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마녀’라고 불려 화형당해야 했던 여성들, 여성 할례로 고통당하고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명예 살해’를 당한 여성들, 전쟁 중 성노예로 끌려갔던 여성들의 애통하는 소리를 들어달라는 기도였다. 또한 기도는 그들, 죽임 당했던 여성들이 바로 ‘나’라는 고백으로 이어졌다.

기도자 '오스칼네 고양이'(믿는페미)는 역사 속에서 살해당해 왔던 여성들이 바로 '나'라고 고백했다 ⓒ에큐메니안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멕시코 연쇄살인 사건의 400여명 피해자 중 한 사람이며,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죽은 10명의 여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는,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있었습니다. 그날 나는 친구를 만났고, 화장실에 들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난.

2017년 5월 11일. 이곳에 있는 나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살아 있습니까? 우리는 죽지 않았습니까? 아니, 내가 여성이기에 이것은 모두 나의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애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저,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이날 말씀펴기는 김신애 목사(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가 맡았다. 김 목사는 출애굽기 38장에 등장하는 회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을 칭하는 ‘짜바옷’이야 말로 연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라고 했다. 

‘짜바옷’은 히브리어로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의 신들에게 붙이는 말이었다. 천상의 군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름을 가진 여성들은 회막을 위한 성물을 바치라는 모세의 명령에 자신들이 고이 간직했던 놋거울을 바친다. 놋거울은 제사장들의 부정함을 씻는 물두멍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당시 제사장의 아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사회적 취약계층이었을 이 여인들과 동침한다. 하나님이 여인들에게 부여한 신적 위엄은 너무 쉽게 훼손됐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도 묵인했던 제사장 엘리와 그 아들들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된다. 

김신애 목사는 우리가 바로 '짜바옷'이라고 설교했다 ⓒ에큐메니안

“오늘날 여성을 살해한 것은 악하고 무능력하고 혐오에 찌든 사회입니다. 그러나 정말 살해당해야 할 것은 홉니와 비느하스와 그것을 묵인한 모든 엘리들입니다. 욕심과 죄와 나태로 얼룩진 권력자들은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물두멍에 몸을 담가야 합니다.”

김신애 목사는 살해당한 자들과 함께 죽음을 경험하고 그럼에도 살아남아 연대로 모인 이들이야 말로 ‘짜바옷’이라는 말로 말씀펴기를 마쳤다. 

모인이들은 김주영 목사(감리교 여성지도력 개발원), 나가오 유키 목사(일본기독교단 UCCJ/NCCK국제인턴)의 공동집례로 성찬을 나눴다. 성찬을 받은 이들은 포스트잇에 자신의 짧을 기도문을 써 붙였다.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 포스트잇을 붙였다 ⓒ에큐메니안

예배는 공동축도로 마무리 됐다. 

“매순간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게 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이
1년전 이곳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당한 자매와
지금도 곳곳에서 온갖 이유로 차별 당하고 고통당하는 이들과
살아남아 연대의 함성으로 이곳을 뒤 덮은 우리 모두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특송을 맡은 류아 프란체스카 (나무공동체) ⓒ에큐메니안
특송을 맡은 합창단 '평화산책' ⓒ에큐메니안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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