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이훈삼 설교
좋은 지도자를 세우는 교회 (렘 23:1~4)2017년 5월 17일 5.18민주화운동기념·스승의주일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5.15 10:41

1. 지도자의 중요성

1) 1989년 4월 15일에 영천에 있는 제3사관학교에 군종장교 후보생으로 입대하여 12주간의 훈련을 받고 중위로 임관하면서 3년 동안 군목으로 사역했다. 차렷, 경례부터 시작하여 매주 훈련의 강도를 높여가다가 한 주간 유격 훈련도 했다.

출처 : http://www.instiz.net

해발 890m나 되는 화산(華山)이라는 고지에 유격 훈련장이 있어서 우리는 저녁을 먹고 야간에 유격장으로 출발했다. 4시간 동안 평지를 걸어서 산 아래 도착했고 거기서부터 거의 6시간을 올라가서야 유격장에 도착했다. 깜깜한 밤중에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아직도 훈련병인 우리들은 구대장인 현역 중위의 인도 아래 초행 산길을 더듬으며 온 힘을 다해 걸어야 했다. 얼마나 힘 들었는지 출발한 지 거의 10시간 만인 새벽 4시쯤 간신히 유격장에 도착한 우리는 모두 군화도 벗지 못하고 그냥 쓰러져 잠들었다.

몇 번이나 대원들이 낙오할 수 있었고 사고가 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모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우리 인도자인 그 현역 중위가 끊임없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했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산길에 앞은 안 보이고 비는 내려서 춥고 군화에는 흙이 잔뜩 붙어서 걸음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고 도대체 얼마나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우리는 모두 기진맥진했다. 그때마다 우리 인도자는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거의 다 왔다는 말을 정말 수십 번은 들은 것 같다. 이 말이 나중에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우리를 다독이고 격려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많이 낙오했을 것 같다. 그나마 좋은 인도자가 있었기에 유격훈련보다 더 어려운 유격훈련장까지 가는 임무를 잘 마칠 수 있었다.

2) 가정, 직장, 교회, 국가 등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는 지도자가 매우 중요하다. 그릇된 지도자 때문에 공동체 전체가 파멸에 이르기도 하고, 올바르고 유능한 지도자 덕분에 위험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열기도 한다.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책임이 있다.

초대교회로부터 교회는 교육(Didache)을 중요한 사명으로 인식했다. 교회 건물이나 재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 교육을 통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지도자를 양성하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각 교회가 매년 노회에 회비를 낸다. 우리교회도 연간 600만 원 이상의 노회비를 낸다. 그것을 모아 노회 안의 교회를 살피고 개체 교회가 실행하기 어려운 선교도 하고 또 한신대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한다.

왜 교회가 신학생들의 장학금을 책임지는가?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선언할 좋은 지도자를 양육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교회에 헌금을 하는 이들이고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은 헌금을 쓰는 이들이다. 그런데 왜 재정을 소비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을 소중히 여기는가? 이들을 복음으로 잘 양육하여 좋은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소중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는 소중한 사명자들이고 교회 공동체가 늘 감사를 표해야 한다.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이 미래에 훌륭한 지도자가 되느냐 마느냐는 지금 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인 어린이부와 청소년부 교사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2. 예언자의 사명

1)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가 극심한 혼란과 위기를 맞이했다. 국가는 강대국의 침략 앞에서 풍전등화인데 이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책임지라고 지도자로 세우신 왕들이 무책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국민을 보살피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권력과 쾌락에 빠져 하나님의 음성은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권력을 남용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호통을 치셨다.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렘 23:1)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책임을 물으리라).”(렘 23:2)

개인이나 사회나 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도자의 죄와 무책임이다. 유대가 국가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것은 국민을 올바로 인도하여 위험을 예방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해야 할 지도자인 왕들이 정신 못 차리고 하나님 뜻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오늘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를 부르셔서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게 하셨다. 권력자를 향한 예레미야의 선포는 목숨을 거는 행위였고, 실제로 예레미야는 여러 번의 협박, 테러, 납치, 폭행을 당하고 결국에는 이집트로 끌려가서 죽었다.

2) 우리 현대사의 큰 봉우리 두 개는 1960년 4.19 혁명과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현재 우리 사회 구조를 만든 직접적인 계기다. 유신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로 발전하는 시기에 군대를 동원하여 폭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군부 세력에 대해 아무도 두려워 말할 수 없을 때, 예레미야처럼 분연히 일어나 불의한 권력을 꾸짖고 역사의 방향을 제시한 사건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쿠데타 세력이 서울 도심에 탱크를 몰고 들어오고 군인이 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공포의 상황에서, 학생·노동자·시민들에게 잔학한 폭력을 휘두르고 총을 난사한 권력에 눈 먼 이들에게 광주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 대가는 정말로 참혹한 것이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악인들이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 대상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악한 지도자에 대한 역사의 심판과 새로운 지도자를 민주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예언자적 외침이었다. 이 외침에 광주의 교회들도 깊이 동참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 교단은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항쟁이면서도 민주주의적 이상을 실현했던 5.18민주화운동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5월 18일 전 주일을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소중한 노력이고 지속되어야 할 신앙고백이다.

3) 우리는 지난 9일, 19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정말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는 국정교과서를 폐지하고, 세월호 진상을 재조사하고,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다시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통령이 직접 위로하고, 5.18 기념식에서 군중의 함성을 부를 수 있게 하고, 세계 강대국들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적극적인 외교를 진행하고 있다. 권력의 핵심으로 온갖 불의를 감행하던 국정원과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국가의 지도자와 그 주변인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섬기는 직책임을 느끼게 하고 있다.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동안 왜 그렇게 어렵고 불가능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제야말로 지난 10년간 답답하고 울분에 차 좌절했던 시기를 접고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자동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요 며칠은 정말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다.

물론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소탈한 지도자의 행보, 파격적인 인사, 대통령령 변경 등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제 좀 지나면 정치·사회적으로 수많은 난관을 만나게 될 것이고, 집권층 내부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고, 나아가 우리 힘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국제정세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냉철하고 침착하게 새로운 정부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5천만 국민이 고통과 좌절을 겪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크고 작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정말 지도자가 중요하다.

참으로 지난한 과정을 겪었지만 이처럼 오늘 우리가 이렇게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작년부터 이어진 촛불민주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놀란 우리의 촛불민주운동은 바로 1987년 6.10 민주항쟁을 잇는 것이고, 이러한 모든 민주주의 운동의 밑바탕에는 5.18광주민주운동이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다.

3. 좋은 지도자 만들기

1) 선한 목자, 425-450년, 이탈리아 라벤나 플라시디아 영묘

선한 목자, 425-450년, 이탈리아 라벤나 플라시디아 영묘 (그림 출처 : WIKIWAND)

오랜 박해가 끝나고 기독교 세계가 본격적으로 확립되던 시기, 한 때 서로마와 동로마의 수도였던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과 묘지 내부는 찬란한 비잔틴 모자이크로 수놓아져 있다.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수염 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영웅처럼 젊고 수염도 없고 긴 머리의 매력적인 상이었다. 과거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유대인 예수님에게 로마인의 옷(toga)을 입혔다. 그리스도의 얼굴 뒤로는 금빛 아우라가 펼쳐져 있고, 승리의 상징으로서 황금 십자가를 짚고 있다. 궁핍, 박해, 불안, 고통의 시기가 끝나고, 이제 평안, 기쁨, 희망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이렇게 멋지고 늠름한 주님과 함께 양들은 저 푸른 초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다. 양들은 건강해 보이고 살이 쪘으며 모두 주님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선한 목자는 손을 내밀어 양의 머리를 만져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눈길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혹시라도 양들을 노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살피는 것일까?

오라스 베르네(Horace Vernet), 예루살렘의 파멸을 예고하는 예레미야, 1844년

지도자의 악행으로 풍전등화의 위험에 빠진 유다를 향해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악한 목자(왕)를 심판하고 새로운 목자를 세우시리라 선언하셨다(렘 23:1~4).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 선한 지도자, 선한 교사의 표본이다. 행복하여라, 선한 지도자를 세운 역사는!

2) 좋은 지도자는 타고 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 운동하면서 어떤 이는 소신이 오락가락하고 어떤 이는 인격과 자질이 의심스러운 언행을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자신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다.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라면 반대자들이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좋은 정치 지도자는 성숙한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지도자는 타고난 기질과 이후 만들어지는 것인데 사실 그 비율은 타고나는 것보다 후천적 요소가 더 크다고 한다.

그리고 좋은 목사는 교회가 만든다. 교인들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갈망하고 그 뜻에 인생을 맡기는 결단이 있으면 교회 지도자는 거기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현재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을 교인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로서 교회 지도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만든 요인 중에는 교인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린이·청소년들의 지도자인 교사는 교회가 만든다. 내 자식 가르치기도 어려운 세상에 교회에서 교육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지식을 전수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신앙을 가르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교사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교사들이 지치지 않고 힘내서 우리 아이들의 좋은 지도자가 되고, 이 시대를 살리는 좋은 지도자를 양육하도록 교회가 격려하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은 선한목자요 좋은 지도자이셨다. 제대로 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우리는 직접 경험하고 있다. 37년 전, 악한 지도자를 좋은 지도자로 교체하기 위해서 광주 시민들은 목숨을 걸었고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다. 우리는 그 전통을 이으면서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주님은 이번에 우리에게 좋은 지도자를 주셔서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도 각 자의 자리에서 주님 마음에 합당한 좋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선한 목자요 좋은 지도자이신 주님을 본받고 또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만들고 좋은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