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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위하여! (스가랴 8:18~19)2017년 6월 25일 민족화해주일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6.26 12:44

■ 주간 단상 : 길거리 전도

지난주일 오후에 우리교회 전도부와 어린이, 청년, 여신도회원들이 교회로 이어지는 골목길 대로변에서 노방 전도를 했다. 교회 로고를 붙인 호두과자와 전도지를 나누어주었다.

잘 받는 이들도 있고 냉담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이들도 있다. 원래부터 기독교 복음은 수용보다는 배척받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이 복음이 생명의 길이기에 굴하지 않고 전도한 결과가 오늘의 세계적 기독교이다. 지난주일 전도했다고 오늘부터 우리교회에 새 신자가 차고 넘칠 것으로 기대하지는 말자. 그러나 전도는 소중한 것이다.

전도 열심히 하는 다른 교회들이 보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고 하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일이다. 이번엔 처음이라 분량도 많지 않아서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한 선물과 전도지를 다 나누어주었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많이 준비해도 좋을 것이다. 또 전도의 기술적인 부분도 전도부를 중심으로 다른 교회를 참고삼아 연구하고, 우리 교회 상황과 메시지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꼭 길거리에서 전도를 해야 하느냐? 꼭 그렇진 않다. 그러니까 여태 안한 것이다.

그러나 꼭 안해야 할 이유도 없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주민교회의 존재를 알리고 교회 나오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신앙과 교회의 선교에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전도를 목사가 강제로 해라해서가 아니라 교인들이 스스로 우리도 전도해보자 라는 마음을 갖고 준비하고 후원도 받고 해서 기꺼이 실행했다는 점이다. 전도 방법이 꼭 노방전도만 있는가? 그렇지 않다. 다양한 방식의 전도가 있을 것이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행해도 좋다. 단지, 전도 안 해도 된다는 비 복음적인 생각, 전도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죄를 범하지는 말자. 앞으로 주민교회의 전도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더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예언자 스가랴

1) 그의 시대

스가랴는 학개와 같이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후 활동하던 예언자다.연대로 따지면 지금부터 2500여 년 전인 BC 520년쯤이 그의 활동 시기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참담한 조국의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축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당장 먹고 자고 살 곳도 마땅치 않은데 먼저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보통 신앙이 아니다. 아마 요즘 주거, 교육, 건강 등보다 교회를 우선해야 한다고 말하면 교인들 반은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랬다. 50년 이상 고향을 비운 사이 땅과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고 엉뚱한 이들이 들어와서 자기 집처럼 살고 있는 현실, 황폐함 그 자체인 암담한 현실에서도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데 모든 노동과 물질을 다 드렸다.

이런 신앙의 중심에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다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에는 별 어려움 없이 진행되고 그러고 나서 자기들 집, 농사, 회당 등을 돌봐야했다. 그러나 현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꾸만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 유대인들은 맥이 빠지고 불만이 생기고 무엇보다 신앙적 회의가 안개처럼 번져나갔을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짓자는 것인데 그것마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이렇게 어렵고 중단된다면,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건가? 하는 합리적이고 당연한 의문점!

2) 금식이 축제로!

미켈란젤로, 스가랴, 1512년,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 천정

이 때 스가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러 번의 상징적인 예언을 통해서 불신과 죄악을 벗어버리고 마침내 가능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꿋꿋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갈 것을 외치고 다그쳤다.

18절 4,5,7,10월의 금식은 고통과 슬픔의 금식이다. 50여 년 전, 예루살렘은 바빌론에 의해 성벽에 처음으로 구멍이 난 때가 사월이었고, 10월에는 성읍이 에워싸이기 시작했다. 우리로 치면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가는 치욕적인 계기가 된 날들이다. 이런 날들에 우리 선조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면서 괴로워하고 어떤 이들은 자결한 것같이, 이스라엘의 금식은 영성훈련이나 다이어트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의 금식이었다. 당시 포로에서 돌아와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의 상황이 이처럼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쁨의 뿔나팔을 부는 유대인

그런데 오늘 스가랴는 이러한 슬픔과 고통의 금식이 변하여 기쁨의 축제가 되리라고 선언한다. 기독교는 이러한 급작스러운 변화, 혁명적 변화의 계기를 선호한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철저한 안티 그리스도였던 사울이 목숨 걸고 그리스도 증언자 바울로 변화되는 사건도 굉장히 급작스럽다. 처절한 아픔의 현실에서 덩실덩실 춤추고 신나는 새로운 현실로의 변화, 우리는 예로부터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에서 이 날을 꿈꾸고 있다.

2. 전쟁 후유증

1) 오늘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한국전쟁 6.25 67주년 되는 날이다. 전쟁이 발발한 지 두 세대가 훌쩍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6.25 전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지 못하다.

80년대 대표적 저항시인 김지하는 일찍이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처음 들을 때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시를 발표했다.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 김남주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어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의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이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크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 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3.8 선은 강원도 지역의 특정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까지도 우리들의 생각, 우리들의 일상생활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시인의 통찰이 아프다.

2)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우리의 딸들

2002년 6월 13일, 당시 14살이던 신효순, 심미선 양은 다음날이 효순이 생일이라 친구들과 의정부 시내로 놀러가려고 약속 장소로 가던 두 친구는 마침 이동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처참하게 죽었다. 이 사고는 도로 폭은 좁은데 양쪽에서 미군 장갑차가 교차하게 되면서 장갑차끼리 충돌하지 않으려면 도로 갓길을 걷고 있는 이 학생들을 칠 수밖에 없었다.

사고를 낸 미군 장갑차와 같은 종류의 장갑차

미군이 일부러 그랬겠는가마는, 좁은 길을 훈련하는 미군이 서로 연락하면서 훈련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이들의 끔찍한 죽음은 누가 책임지는가? 아니 책임질 수 있는 일인가? 다시 살려내지 않는 이상!

사고 10주년을 맞이해서 추모 조형물을 제작했지만 부지를 구입하지 못해 기장 총회교육원 정원에 임시로 설치했다. 그 때 아내가 10주기 기념식에 기장 여신도회 대표로서 다음과 같은 추모 글을 낭독했었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비를 세우며…

효순아, 미선아!

너희 이름을 다시 불러 본다.

벌써 10년이 흘렀구나! 그 해, 6월을 어찌 잊을 수 있겠니?

2002년, 월드컵 축구로 세상이 온통 잔칫집처럼 들썩이던 6월,

여름이 녹음으로 짙어가던 어느 날. 너희는 여느 때처럼 그 길에 나섰지.

늘 그렇게 집과 학교를 이어주던 길.

초등학교 동창인 너희는 학교가 끝나면 그 길을 걸으며,

까르르 웃고 토닥거리고 때론 삐치고 싸우기도 했겠지.

아무려면 어떠니?

웃고 울던 너희의 사춘기와 주변의 일상들이 함께 녹여진 길인 것을….

 

그 길이 너희의 마지막 길이 되었구나!

장갑차에 깔린 너희의 여린 몸에 시퍼런 죽음의 공포가 덮쳐왔을 때,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니?

장수하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목이 메는데...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난 자식도 부모는 차마 땅에 묻지 못하는데...

하물며, 너희를 어찌 묻을 수 있겠니?

아버지들도 너희처럼, 초등학교 동창이었구나.

그 길을 다니면서 장갑차가 지나가는 것을 수없이 보고 살았지.

위험하긴 해도 서로 비키면서 조심하니까 별일 없을 거라 믿고 사셨겠지.

그러나 막연한 믿음에 돌아온 것은 사랑하는 너희들의 주검이었다.

 

무참히 빼앗기는 너희의 그 꽃다운 삶을 지켜주지 못했구나.

그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아려오는구나.

이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말 - 너희는 이마저도 말하지 못하고 떠났지만,

이제 다시는 이 아픔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뒤늦게나마 이곳에

우리의 다짐을 세운다.

또다시 이 땅에 너희의 어이없는 고통이 생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언약의 증표로 이 추모비를 세운다.

 

미선아! 효순아!

10년 전, 너희들을 추모하는 작은 집회에서 나는 추모사를 낭독했었다.

그 때, 내겐 너희보다 한 살 더 많은 쌍둥이 딸이 있었다.

우리 딸 또래인 너희들의 엄청난 비보에 내 가슴이 얼마나 무너졌던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 그저 눈물만 쏟았단다.

그러니 너희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겠니?

탄식하며 몸부림치는 너희 부모님의 소리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단다.

이제 우리 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단다.

너희도 한창 그럴 나이가 되었는데…

해맑은 너희 모습이 그립구나!

이제, 이곳에 추모비를 세움으로써 너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련다.

억울한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불공정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의

개정을 요구하고, 이 땅에 정의로운 평화를 만들고자 다짐한다.

너희도 저 하늘에서는 진정 평안을 누리며,

이 땅에서 이뤄지는 이 작은 움직임들을 힘차게 응원 해 다오.

너희는 이젠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스런 딸이요,

다정한 친구이며, 언니이면서 동생이 되었다.

작지만 뜨거운 마음들이 모여 세운 이 추모비 앞에서

다시 한 번 너희 이름을 불러 보고 싶구나!

효순아! 미선아!

미선아! 효순아!

2012년 6월 13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전국연합회 협동총무 윤혜숙

미선 효순 10주기 추모 조형물

지난 5년 동안 기념 조형물을 사고 지점 근처에 설치하려 했지만 부지를 구입하지 못했었는데, 드디어 이번에 땅 매물이 나와서 부지 매입비용 1평당 백만 원을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모금하고 있다.

내 아이가 육중한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면? 아마도 나는 미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우리들 일상의 밑바닥에는 아직도 3.8선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직도 우리는 전쟁을 살고 있는 것이다.

3) 한신대 간첩 조작 사건

1972년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장기독재를 이어가자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이 이에 거세게 항의하였다. 이들의 항거를 아주 손쉽게 무력화시키고 짐승 같은 잔인한 방법으로 진압한 그곳에도 3.8선이 도사리고 있었다.

1975년 중앙정보부 대공 국장이던 김기춘은 평범한 학생과 시민들을 하루아침에 빨갱이로 만들어서 구속하고 처형하였다. 그것이 1975년 한신대 간첩 사건이다. 한신대에 유학온 김철현이라는 재일동포가 간첩으로서 같은 기숙사 학생들을 포섭하여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20일(화) 한국기독교장로회 평화통일위원회 NCCK 인권센터는 이들이 평생 간첩 혐의로 살아왔지만, 마침내 42년 만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 받은 것을 감사드리는 예배를 드렸다. 김명수, 나도현, 전병생 이 목사님들 어느새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할아버지가 되었다. 천만 다행인 것은 이들이 모두 기장 소속 목사님들이었으니까 그나마 떳떳하게 살았지 일반 직장인이나 보수적인 교단소속이었다면 벌써 쫓겨났을 것이다.

감사예배 순서 중에 한분씩 나와서 증언을 했는데 나도현 목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간첩이 아닌데 내가 하는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중앙정보부에서 써준 내용을 반복해서 옮겨 쓰라고 했다. 처음에는 중정에서 쓰라고 한 것을 베껴 쓰면서도 그것이 사실이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3~4번 쓰다보니까 이게 사실인가 혼동되기 시작했고, 10번 쓰니까 자기도 모르게 중정의 각본이 사실이라고 자기도 믿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 참 이상하다고! 분명 자신은 간첩이 아닌데, 스스로 간첩이라고 생각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옆방에서 친구가 고문 받으며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올 때라고 했다. 그리고 중정 조사실에 들어가자마자 정말 인정사정없이 두드려 맞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이런 협박도 받았다고 한다.

내가 스위치 하나 누르면 너는 곧바로 밑으로 떨어지고 그 다음에는 닭 사료 만드는 기계에 갈려서 흔적도 없이 바다로 사라져 버려!

지금 내가 누구에게 이런 협박하면 대개는 코웃음 칠거다. 우선 나는 그럴만한 힘이 없고 또 힘이 있다 해도 이제까지 겪어본 목사님이 그럴 분이 아니고, 또 주변 시설이 전혀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현재 우리 사회 성격 상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만약 어둡고 작은 골방, 아무도 접근 못하는 중앙정보부 골방에서 인정사정없이 사람을 때리고 고문하고, 옆방에서는 죽음의 소리가 들리고,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행방불명 처리해버리는 기술과 권력을 쥐고 있고, 또 실제 그런 사건들이 발생하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중정의 권력자가 내게 그런 협박을 했다면 누구도 코웃음 치지 못한다. 아니, 대부분 공포와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울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간첩임을 인정하는 것이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지들에게 어떤 결과인가를 잘 알고 있는 젊은 청년 학생들이 간첩 누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 고문(拷問)

이날 기독교 노래패 ‘새 하늘 새 땅’의 가수인 방기순 님이 특송을 불렀다. 현장에서 바로 녹음할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후에 방기순 님이 노래 원작자인 류형선 님이 직접 부른 파일을 보내줬다. 노래 제목은 ‘고문’!

https://www.youtube.com/watch?v=g5uPZ85SJBQ

어떻게 선량한 신학생들을 천하에 두려운 간첩죄로 누명을 씌우고 이를 위해 고문을 가하고 평생의 삶을 망가트린 이런 행위가 가능한가? 우리가 분단국가가 아니라면 감히 국민을 이렇게 만들 수가 없다. 이들에게 덧씌운 죄목이 간첩죄였기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들이 저항하고 호소하기가 훨씬 어려운 사회분위기였을 것이다. 6.25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 분단은 영혼까지 나누고 있으며 이를 악용하여 고문에 의한 간첩죄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파괴하였다. 여기에도 3.8선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3. 진실과 화평을 사랑하라!

1) 금식이 변하여 축제가 되기 위한 스가랴의 제언

어떻게 하면 식음을 전폐하는 슬픔과 고통의 날들을 중단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축제의 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까? 시민 의식을 일깨우고, 정치 조직을 든든하게 세워가고, 재정을 모으고, 네트워크를 건설하여 이제 우리 사회에 다시는 이런 불행의 과거가 되풀이될 수 없는 세상을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 시민사회의 답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우리는 모두 이런 미래 사회 건설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조직적으로 연대하고 회원 가입하여 재정적으로 기여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민주사회의 일반적인 대응에 연대하면서도 이것이 완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전망과 활동이 소중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한 최종 결정적 주도권(Initiative)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고백이다. 이 믿음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적 모든 활동을 통해 슬픔을 끊고 축제적 인생과 역사를 위해 활동하되, 궁극적 권한은 하나님께 있음을 끊임없이 고백하고 확인해야 한다.

2) 거짓과 전쟁이 달콤한 세상에서!

오늘 스가랴는 이 뜻을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진실과 화평을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은 쉽지만 실제 세상 속에서 진실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삶을 살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거짓과 강제,폭력,전쟁이 훨씬 쉬워 보이며 그 유혹은 너무나 새콤달콤하기 때문이다.

민주적이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하기에 시간이 필요하고 내 생각에 제동이 걸리기도 한다.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이럴 때 ‘민주는 무슨 민주? 그냥 명령하면 되지!’라는 속삭임은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다. 통일을 이루는데 남과 북이 서로 다르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옥신각신하고 때로는 결렬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문제 가지고 대립도 하고, 대화를 통한 통일의 길은 멀고 지루하고 성질이 나서 못 견딜 것 같다. 그 때 ‘뭘 그리 복잡하게 하나? 세계 최강국 미국의 힘을 업고 평양에 B52로 폭격하면 끝인데!’하는 속삭임은 매력적일 수 있다.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실과 평화를 사랑하는 곳에 진정한 축제의 삶이 가능하다 하신다. 어렵고 절망적일수록, 신앙생활에 회의가 들고 하나님이 멀리 느껴질수록, 내 삶에 비 신앙적인 유혹이 죽음처럼 달콤하게 다가올수록, 나무를 심듯이, 하나님의 진실과 평화를 심자. 그 속에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축제가 잉태되어 있으니!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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