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시대에 신학은 인간을 이야기할 수 있나?

1.뇌과학과 신학, 누가 인간을 이야기할 수 있나?

신경과학은 뇌졸중이나 치매 같은 뇌와 신경계의 질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지각, 판단, 기억, 언어, 감정 등 매우 다양한 증상 역시 다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마음과 의식, 정신, 더 나아가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추상적 질문에 까지 다다르게 된다. 즉 다윈의 진화론이 생물학을 넘어 인간학과 신학의 영역에 질문을 제기한 것처럼 뇌과학 역시 인간학, 철학, 신학의 영역에 까지 도달하며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 각종 실험과 임상을 바탕으로 축적되어 온 신경과학의 발전은 마음을 뇌라고 하는 생체조직에서 비롯되는 생물학적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결국, 나 자신이라는 ‘자아’는 우리의 머리 속 뇌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인간의 자유의지 역시 뇌 작용의 산물이다. 이러한 신경과학의 발전은 분명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다준 충격 만큼이나 철학과 신학이 견지해온 인간론에 큰 충격을 가할 수 밖에 없다. 특별히 오늘날은 그야말로 뇌과학의 시대 혹은 뇌혁명의 시대이다. 그래서 신경윤리학, 신경심리학, 신경철학, 신경생물학 등 기존의 학문 영역에 뇌과학이 접목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뇌과학의 광범위한 발전은 그 동안 철학과 신학이 제기하며 대답을 해 온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나름의 답변을 내놓으면서 철학과 신학의 영역을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뇌과학은 우리의 종교적 경험 역시 뇌 작용의 결과로 보기 때문에 종교적 경험은 물론 신에 대한 존재까지도 회의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뇌과학에 대하여 신학은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시급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본고는 특별히 이러한 신경과학 특별히 뇌과학이 기독교 신앙에 가하는 도전과 그 양립 가능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과연 기독교 신앙이 제시하는 인간관은 뇌과학이 제시하는 인간관과 양립할 수 있는가?’ 그에 앞서 ‘뇌과학이 제시하는 인간에 대한 설명은 과연 충분한가?’ 또한 ‘기독교 신앙에 제시하는 인간관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탐구를 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뇌과학의 시대에 기독교 신앙과 신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2. 심신문제

뇌과학으로 인하여 제기되는 주요 논쟁은 무엇보다 심신문제(mind-body problem)이다. 심신문제는 영혼과 신체 혹은 심적인 상태 및 속성과 물리적 상태 및 속성의 구분, 본성, 상호간의 관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다. 이러한 심신문제가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인간의 의식이 과연 뇌의 작용인가 아닌가, 뇌의 작용과 의식은 과연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초점 맞추어져 있어 그 결과에 따라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대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신문제의 대표적인 대답의 유형은 몸(물질)과 영혼(의식, 정신)의 이원론과 일원론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 설명은 아래와 같다.

심신문제의 역사적 기원은 무엇보다 기원전 5세기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마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 ‘영혼’을 심장과 혈액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심혈관설”(cardiovascular theory)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반대 견해로는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크로톤의 알크마이온(Alcmaeon of croton)으로 그는 정신 기능이 뇌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를 “뇌수설”(encephalic view)이라고 한다. 이 두 견해는 향후 이 천년 동안 경쟁을 하게 된다. 한편 히포크라테스는 뇌를 감정의 중재자이자 의식의 해석자로 여겼다. 그의 이론을 “마음의 뇌수이론”이라 한다. 한편 기원후 4세기 시리아의 에메사의 주교 네메시우스(Nemesius of Emesa)는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정신기능을 감각과 상상, 사고와 판단, 기억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 그는 각 기능이 서로 다른 뇌실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이것이 “뇌실설”(ventricular theory)이다. 결국 심신문제에 있어 가장 초기의 이론은 심혈관설, 뇌수설, 뇌실설 이렇게 3가지가 있었다. 이러한 세 가지 견해는 세익스피어의 다양한 희곡을 통해 언급될 정도로 오랫동안 경합을 벌였다.

또 하나 주목할 고대 철학자는 플라톤의 “영혼불멸설”이다. 플라톤은 죽음의 순간 영원한 존재인 영혼이 몸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떠오르며 몸 없이 영생을 즐긴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러한 이원론인 플라톤의 견해는 이후 신플라톤주의를 거쳐 무엇보다 기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것이 전통적인 기독교의 인간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심혈관설, 뇌수설, 뇌실설의 논쟁과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적 영혼 개념을 넘어 마음과 몸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온 것이 “실체이원론”(substance dualism)이다. 실체이원론은 데카르트(R. Descartes)가 주장한 것으로서, 영혼과 신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실체로 보았다. 그러나 이 두 실체는 또한 상호작용한다. 불멸하는 비물질적인 영혼은 뇌의 송과선(corpus pineaale)에서, 동물 정기(Spiritus-Teilchen)와 신경과 혈액의 중계를 통하여 몸과 신비스럽게 상호작용한다. 비록 도대체 어떻게 서로 다른 실체인 영혼과 물질이 이처럼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 신비는 신이 설계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간주하긴 하지만 이러한 데카르트의 주장을 “상호작용설”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과 두뇌의 상호작용을 의심하는 주장이 유물론자들로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 이유는 몸과 의식이라는 상호작용이 19세기의 고전물리학의 열역학 제1법칙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경생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에클스는 20세기의 양자물리학에 의존하여 싸이콘(Psychon, 정신적 단위)과 덴드론(Dendron, 물질적·신경적 단위)의 상호작용 가설을 제시한다. 즉 시냅스적인 정보교환에 동원되는 물질들은 원자보다 작은 미세입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을 설명하려면 양자물리학을 적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싸이콘은 양자물리학적 확률장에서 작용한다. 여기서 확률장의 변화는 어떤 질량이나 에너지의 변화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싸이콘-데드론 상호작용은 고전물리학의 법칙을 위배하지 않는다.

한편 헉슬리(T. Huxley)는 “부수현상설”(epiphenomenalism)을 주장하는데, 그에 따르면 두뇌과정은 물리적이고, 의식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식은 두뇌과정의 결과로 나타나는 부수현상일 뿐이다. 부수현상이기 때문에, 의식은 두뇌과정이나 다른 의식을 발생시킬 수 없고, 행동의 원인도 될 수 없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두뇌과정일 뿐이다.

“창발론”을 주장한 알렉산더(S. Alexander)에 따르면, 생물학적인 과정들이 복잡한 수준으로 도달하게 되면, 어느 순간에 새로운 속성을 가진 심적 현상이 창발(emergence)된다. 창발된 심적 현상들은 그것의 하위질서인 두뇌과정으로 환원될 수 없고, 하위질서의 두뇌과정에 의해 예측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 심적 현상이 창발되는가를 우리는 더 이상 알 수 없고, 다만 창발 현상을 부정할 수 없는 사태로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창발론자는 플라나간이다. 플라나간은 우리의 사유를 뉴런들의 연결들을 통하여 창발하는 어떤 것을 본다. 플라나간이 ‘자아’를 설명함에 있어서 ‘자아’는 물리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창발적인 자연적 속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아’들은 다양다변한 사회적 환경들 속에서 살아가는 몸을 지닌 유기체들 속에서 창발한다고 주장한다. 즉 몸과 두뇌를 가가지고 있는 동물들에게는 “자기-창발”(seif0emergence)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창발론은 전체적으로는 의식의 유물론의 틀 안에서 물질과 의식에 대한 속성이원론을 주장한다고 할 수 있다.

“심신동일론”(identity theory)을 제시한 플레이스(U. Place)와 스마트(J. Smart)에 따르면 심적인 것은 곧 신경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심신동일론에 따르면 의식이 두뇌과정과 독립적으로 하나의 영역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식에 대한 유물론을 전개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수반론”을 주장한 에덜먼은 의식은 두뇌과정에 의해 인과적으로 산출된다기 보다는, 두뇌과정과 동시에 두뇌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entail)된 것으로 본다. 의식은 두뇌과정의 한 속성이다. 그러나 의식은 두뇌과정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몸의 움직임이나 다른 어떤 두뇌과정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의식이 아니라 두뇌과정이다. 의식은 이런 두뇌과정에 수반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며, 의식은 몸에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행사할 수 없다.

“중립적 일원론”을 주장한 라마찬드란(V. Ramachandran)에 의하면 정신적인 질료와 물질적인 질료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실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면서 동일한 것이다. 물질과 정신은 동일한 뫼비우스 띠의 양면이다. 즉 물리적인 것(두뇌과정)과 심적인 것(의식)의 이분법을 넘어서, 이들을 동일한 사건의 두 측면으로 보자고 라마찬드란은 제안한다.

지금까지 심신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견해들을 심신문제의 근본적인 논쟁 지점인 일원론 혹은 이원론이라는 양 극단 중 하나로 규정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창발론을 주장한 플라나간(Owen Flanagan)의 경우 물질과 정신의 고유한 독자성을 찾으려는 성향을 ‘철학적 질병’으로 간주하며 신양립론자(neo-compatiblist)의 입장에 서있다. 이러한 신양립론은 두뇌와 정신의 일원적 동일성을 주장하면서도, 전혀 뇌적인 산물이 아닌 자아에 대해서는 긍정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뇌과학 역시 물질과 정신의 궁극적인 정체에 대해서, 그리고 정신과 뇌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신체가 없어도 영혼은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다 풀지 못한 실정이다. 결국 심신문제는 이원론과 일원론이라는 단 하나의 주장을 넘어서 더욱 복잡하고 정교하며 다양한 이해를 하려고 시도함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것을 리벳 실험과 그에 따르는 논쟁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3. 리벳 실험과 신비로운 불꽃

현대에 있어 이러한 심신문제의 논쟁을 가속화시킨 것이 1980년대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의 실험이다. 리벳 실험의 한 가지 중요한 배경은 1960년대에 이루어진 발견이다. 운동피질 부분을 두개골 밖에서 측정한 결과 사람들이 자발적인 운동을 실행하기 전에 천천히 전위를 축적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과정은 단순한 운동의 경우 1초 정도 먼저 시작되며, 일련의 복잡한 운동의 경우 좀 더 긴 시간 동안 준비된다. 이러한 전기적 변화를 ‘준비전위’(RP: readiness potential)라고 부른다.

리벳은 운동과, 음직이겠다는 의식적 결정과, RP의 상대적인 시점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실험 대상자들에게 손가락이나 손목을 구부리는 것과 같은 단순한 운동을 수행하도록 하고, 움직임의 충동을 의식적으로 자각한 시점(W)을 가늠해 보도하도록 했다. 실험대상자는 자신이 충동을 자각한 시점에 오실로스코프 화면상에서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점의 위치를 보고했다. 그들은 언제든 원하는 시점에 운동을 수행하고 ‘움직이려는 충동’을 처음 자각한 시점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라는 지시를 받았다. 리벳은 이 실험을 통해 W가 운동보다 겨우 200일리초 앞서며 RP는 좀더 앞 선 550밀리초 전에 시작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의식적인 의사결정 이전에 뇌 전위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리벳과 많은 사람들은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식적인 결정이 운동의 진정한 원인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자발적 행위는 뇌 속의 무의식적인 과정의 결과이지 의식적 결과가 아니라고 추론했다. 이것은 의식적 의지에 대한 우리의 직관이 환상일 뿐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리벳 실험은 상당한 관심을 끌었고 이후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며 추가적인 실험을 자극하였다. 특별히 두뇌와 종교적 경험의 상관 관계를 증명하려는 실험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뉴버그(A. Newberg)와 다킬리(E. d’Aquili)의 전두엽과 후상부두정엽 실험, 퍼싱어(M. Persinger)의 측두엽 실험이다. 이 실험들은 모두 종교경험은 뇌의 상태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럼에도 이러한 리벳 실험에 대한 반론 역시 수 없이 등장한다. 리벳 실험에 대한 많은 반론이 있지만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대표적인 것이 “자각시점 판단의 문제”이다. 리벳 실험을 수행한 앨프리드 멜레(Alfred Mele)는 W를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밥 도일의 ‘시계’실험 역시 W가 일어난 정확한 시점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존 힉은 리벳의 실험에서 준비전위를 신경활동을 반영하는 지연된 부수현상으로 보지 않고, 의식적 활동의 이면에서 작용하는 “무의식적 사전계획짜기”(unconscious preplanning)의 결과로 볼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특별히 말콤 지브스(Malcolm Jeeves)는 리벳 실험이 종교적 경험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리벳의 연구는 자유의지나 도덕적 책임의 문제와 실질적 관련성이 없다. 리벳의 실험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에 관한 실험이지 도덕적으로 차이가 있는 두 행동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실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목할 것은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리벳은 이 실험을 통해 의식과 자유의지를 거부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벳 스스로도 이 실험에는 작은 구멍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리벳은 이 실험에서 실험대상자들이 W와 운동 시점 사이의 200밀리초 동안 여전히 운동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리벳은, 운동의 개시는 의식적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의지의 작용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리벳과 그의 팀은 1983년에 발표한 최초의 논문에서 자신들이 결론이 즉흥적이고 신속하게 수행된 결정에만 적용한다는 점을 기술했다.

이 주장은 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한 근본적인 직관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리벳에게 중요했다. 자유의지 철학자인 로버트 케인(Robert Kane) 역시 리벳의 이러한 견해를 파악하고 지지했으나 이후에도 이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리벳 실험은 심신문제에 있어서 결정적 답변을 내놓지는 못하였으며 그 실험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종교적 경험을 설명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성급한 판단이다. 리벳 실험에 자극을 받은 후속 실험들 역시 뇌와 마음 혹은 종교적 경험의 상관관계를 설명해 줄 것으로 보였으나 그 어떤 것도 만족할만한 명백한 답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경과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은 신경과학이 뇌에서 어떻게 의식이 산출되는지에 대한, 즉 심신문제에 대해 유물론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답변을 완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철학과 마찬가지로, 뇌과학도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양한 가설들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물리주의(physicalism)에 있어서도 그 견해가 다음과 같이 나뉘어지는 실정이다. 모든 의식과 감정을 생리화학적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환원적 물리주의(reductive physicalism)와 비환원적 물리주의(non-reductive physicalism)로 구분된다. 라벤스크로프트(J. Ravenscroft)는 물리주의자를 크게 ‘낙관적 물리주의자’와 ‘회의적 물리주의자’로 구분한다. 낙관적 물리주의자들은 지금까지 의식의 많은 부분이 과학적으로 설명되었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의식에 대한 완벽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반면 회의적 물리주의자들은 의식이 어떻게 물질(뇌)에서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겨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맥긴(C. McGinn)의 주장을 주목해보고자 한다. 맥긴은 물질에서 비물질적인 현상적 의식이 출현하는 원리는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심신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뇌라는 단백질 덩어리에서 비물질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정신적 내용과 현상적 의식이 출현하는 원리를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맥긴은 의식을 ‘신비로운 불꽃’(The Mysterious Flame)이라고 표현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불꽃이다. 맥긴의 이러한 주장이 다소 신경과학에 대해 냉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뇌과학의 발전과 여러 가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심신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오늘날의 현실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심신문제에 대해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신경과학의 발전과 그 실험들이 비록 몸과 마음의 일원론을 완벽히 증명하지는 못하였다 할지라도 데카르트식의 실체 이원론의 입지 역시 좁아진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신경과학은 뇌와 마음의 인과관계 및 연결성을 부정할 수 없는 유효한 답변들은 내놓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신경과학이 마음과 의식이 어떻게 산출되는지에 대해 확고한 답변을 내놓지는 못한 현실을 또한 인정하며 심신문제는 앞으로도 해결해야 하는 수수께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4. 성서의 ‘영혼’과 인간론

그럼 성서가 말하는 몸과 정신의 관계는 어떠한가? 결국 뇌과학으로 인해 촉발된 심신문제의 오랜 논쟁 속에서 기독교 신앙은 어떠한 입장을 견지하며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성서에 나타난 인간관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 많은 신학자는 구약성서가 인간론의 면에서 일원론을 전제하거나 증언하는 반면에 신약성서가 사람의 인격을 몸과 영혼으로 설명하는 이원론적 해석을 지지한다는 견해를 고수해 왔다. 특별히 신약성서의 영향에 따른 기독교의 전통적인 관점에 의하면 인간은 몸과 혼(영혼)과 영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것을 소위 ‘삼분설’이라 한다. 이러한 삼분설의 난점은 혼과 영의 차이점을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기독교는 사람이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성서적 인간관에 깔려있는 전제는 심신이원론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원론으로 규정하기 이전에 영혼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영혼이라는 종교적 표현이 가지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은 의식인가? 이성적 사고능력인가? 아니면 그것을 초월하는 또 다른 무엇인가? 그 영혼은 물질로서의 몸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성서는 묘사하고 있는가? 따라서 성서적 인간관과 성서에서 도출할 수 있는 심신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영혼에 대한 이해이다.

실제 기독교의 교의학과 조직신학에서 인간이해를 위해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춘 것은 창세기1:27의 “하나님의 형상대로”이다. 제임스 바(James Barr)는 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그 동안 제기되어 왔던 5가지 견해를 밝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가진 불멸의 영혼을 말한다. 둘째,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성적 추론을 말한다. 셋째, 두 발로 걷기 같은 인간의 신체적인 능력을 말한다. 넷째, 세상을 다스리는 인간의 소명을 말한다. 다섯째, 하나님 및 다른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특별히 칼 바르트는 다섯 번째 견해를 강조한다.) 결국 이 다섯가지가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동물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해는 창세기 2:7로 인하여 강화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하나님이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창조행위를 하심으로써 흙이라는 물리적 물질 안에 비물질적인 영적 본질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존재이다. 구약성서에서 ‘흙’은 주로 약함과 필멸성의 개념이다. 그런 인간의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생기”이다. 이 “생기”에 의해 영혼 또는 영적 본성을 지닌 피조물이 되었다. 이것이 동물과 달리 인간이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 성서학자들은 이러한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성서학자들은 이 “생기”가 아담과 동물들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한데 묶어주는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근거로 동물들의 창조를 가리킬 때 쓴 것과 동일한 단어들이 인류 창조를 가리키는 이 구절에 쓰인다고 지적한다. 이 단어가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인간의 본성 안에 두신 불멸의 실체를 의미하며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 준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생령”역시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생령”은 KJV에 “a living soul”로 번역되어 있다.여기서 “soul”은 히브리어로 “nephesh”로 번역되며 구약성서에만 755회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 로슨 스톤(Lawson Stone)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다. 첫째, “nephesh”는 아담이 가진 그 무엇도 아니고, 아담의 본성을 이루는 구성 요소나 그 일부도 아니다. 하나님이 호흡을 불어넣으시자 흙더미가 실제로 변하여 살아 있는 “nephesh”가 된 것이다. “살아있는 네피쉬”라는 용어는 아담이라는 존재의 총체성을 나타낸다. 둘째, 그럼 “살아있는 네피쉬”는 무엇인가? 2:7앞뒤에 등장하는 구절들에 “살아있는 네피쉬”가 네 번 정도 등장하는데(창1:21, 34, 30) 이 용어는 보통의 동물들을 가리킨다. 즉 “살아있는 네피쉬”는 무형의 영적 실체를 보유한 존재가 아니라 “생물”로 번역할 수 있다. 셋째, “nephesh”를 초월성이나 인간의 불멸하는 내적 본질이 아닌 물리적 존재와 연결시키는 것은 내새에 전반적으로 무심한 구약성서의 흐름과 잘 들어맞는다. 결국 “생령”은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창조된 동물처럼 생물로서의 아담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아담과 동물이 차별성이 아니라 둘의 연결성을 보여준다.

H.D. 맥도널드 역시 “nephesh”가 시편에 나올 때는 대부분 “삶의 원리”라는 뜻을 내포하는 것을 본다. 많은 구절에서 이 단어는 물리적 생명과 심리적 측면을 가리키며 때로는 개인이나 자아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말한다.

그럼 신약성서의 경우는 어떨까? 앞서 언급했듯이 신약성서는 인간을 몸과 영혼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그러나 “영혼”을 나타내는 헬라어 “ψυχή”(혼)는 “영”을 가리키는 헬라어 “πνεῦμα”와 종종 동의어로 사용된다. 따라서 통상적으로는 인간을 영혼과 몸으로 구성된 것으로 본다. 바울 서신에 “ψυχή”는 12회 등장하게 되는데, 여섯 번은 생명을 나타내고(롬11:3; 16:4; 고전15:45; 고후1:23; 빌2:30; 살전2:8), 두 번은 개인적인 생명이고(롬11:3; 13:1), 네 번은 육체적인 생명이다. 이 마지막 네 번 중에서 세 번은 욕구를 나타내고(엡6:6; 빌1:27; 골3:23) 나머지 한 번은 감정을 나타낸다.(살전5:23) 이러한 바울의 “ψυχή”에 대한 사용용례는 시편의 “nephesh”용법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편에 등장하는 “nephesh”의 경우 어떤 시는 감정의 원천으로, 또 어떤 시는 의지나 도덕적 행동과 관련된 단아로, 다른 시는 식욕과 연결하여 사용한다. 복음서의 경우 “ψυχή”는 죽음으로 끝나는 육체적 생명 이상이 암시된다.(마10:39; 막8:35; 눅17:33; 21:19; 요12:25) “πνεῦμα”는 육체적 생명 보다 높은 수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생명의 본질을 나타내는데 사용된 경우가 많다.

결국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영혼”을 몸과 구분되는 별도의 비물질적 실체로 규정하기 보다는 몸의 생명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정당하다. 이러한 의미는 구약성서가 가지는 “영혼”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실제 신약의 번역 역시 이러한 이원론적 해석을 경계하며 영혼을 하나의 사물, 별개의 실체로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시도들을 보여주고있다. 대표적으로 누가복음 12:19의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노니 영혼아”의 경우 NIV성서는 “And I'll say to myself”(그리고 내 자신에게 말할 것이다)로 번역한다. 또한 바울서신에 있어서 RSV성서(Revised Standard Version)은 “ψυχή”를 “인간”(human being, 고전15:45), “자신”(self, 살전2:8), “사람”(person, 롬13:1), “살아 있는 존재”(livind being, 고전15:45), “목숨”(life, 롬11:3; 16:4; 빌2:30), “마음”(mind, 빌1:27), “진심”(heart, 엡6:6)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영혼”은 사람을 구성하는 특별한 정신적 요소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개인 자신이나 생명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성서에 나타난 “영혼” 개념을 고찰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일원론을 긍정하는 구약의 사상이나 이원론의 형태처럼 인간을 기술하는 신약의 사상 간의 불일치가 있다는 가정은 불합리 하다는 사실이다. 신약성서학자 조엘 그린(Joel Green)은 신약성서가 모습을 갖추던 초대교회 공동체는 로마의 헬레니즘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로 인한 유대주의의 토양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신약 성서 저자들이 몸과 영혼의 이원론이 팽배한 시대에 살았을 것이라 단언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둘째, 적어도 “영혼”은 몸과 구별되는 비물질적 실체는 아니다. 특별히 구약은 그러한 구분의 흔적 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영혼”은 인간의 생명 내지 삶을 의미하는 용례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심신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성서적 인간관이 전통적인 기독교가 견지한 삼분론은 물론 실체 이원론을 지지하지 않으며 오히려 일원론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성서적 인간관에 대한 반성은 이미 오스카 쿨만(O. Cullmann)이후 많은 학자들이 견지하고 있다. 더욱이 내새와 관련하여 많은 신학자들은 성서가 인간 사후와 관련하여 천국과 지옥 입성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부활에 궁극적 관심으로 두고 있음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신약 성서에 나타난 부활이 영의 부활이 아닌 몸의 부활이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신약성서는 몸과 영혼을 개별적 실체로 보는 이원론에 경도되지 않았다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원론으만 성서적 인간론이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신학자 쿠퍼(J. Cooper)는 인간 본성의 통일성과 영혼이 몸과 분리된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통전적 이원론”(holistic dualism)을 제시한다. 이는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정신-육체적 복합체이며, 비물질적 요소는 사후에도 계속 존속한다는 주장이다. 비록 앞서 설명한 일원론적 성서적인간론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원론적 인간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 기독교 인간론에 힘입어 쿠퍼의 견해 역시 전반적인 설득력을 얻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성서에 나타난 몸과 영혼의 일원론적 이해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일원론적 인간이해는 최근 신경과학이 견지하고 있는 물리주의적인 입장과 대화가 가능한 지점일 수 있다. 물론 앞서 살펴본 대로 쿠퍼의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에서 일원론과 이원론 중 하나만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정답으로 제시되고 있지 않다. 이는 신경과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종교적 경험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대하여 기독교신앙과 신경과학은 앞으로도 서로 대화하며 토론해야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5. 이중양상일원론을 통한 뇌과학과 성서적 인간관의 양립 가능성

그렇다면 최근 신경과학이 펼친 운동장에서 기독교 신앙은 어떠한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표적인 모형 두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이른바 풀러그룹(N. Murphy, W. Brown, H. Melony)이 주도한 비환원적 물리주의이다. 비환원적 물리주의에 따르면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제시되는 인간 존재의 물리적 성격에 관한 진술은 종교 전통의 영적 성격에 관한 진술과 절대 동일한 실체이다. 즉 인간은 본질적으로 물리적인 존재이지만 심적 기능의 높은 수준은 물리적으로 작동하는 낮은 수준에서는 전적으로 해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머피는 마음은 이원론처럼 어떤 형태로든지 인체에 거주하는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복잡한 물리적 유기체의 기능적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종교경험과 연계하여 설명하면 종교경험은 일상 경험의 조합에 수반한다. 즉, 종교 경험에 대한 전통적 이해와 달리 종교적 실재를 경험하는데 필요한 어떤 특별한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그 입장이다. 게다가 종교경험은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사건과 관계를 맺는게 분명한 특정상황에서 발생하는 일상경험의 의미 있는 결합이기도 하다. 개인의 불행을 범죄의 결과로 받아들이거나, 질병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 등이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비환원주의 물리주의의 또 다른 설명방식이 있다. 이른바 “이중 양상 일원론”(two-aspect monism, dual-perspective theory)이다. 우리의 내면적 삶에 대한 주관적이고 일인칭적인 진술과 우리의 뇌 활동에 관한 신경과학의 객관적이고 삼인칭적인 진술이 단일한 실체에 대한 상호보완적인 양상이라고 본다. 일인칭과 삼인칭 진술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므로 나의 의도적인 결정의 결과로 어떤 운동을 수행했다는 나의 일인칭적 주장은 내 운동이 그 결정 배후에 있는 뇌 활동의 결과라는 신경과학자의 삼인칭적 보고와 상응한다.

두 번째 모형은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 철학자, 물리학자, 신경과학자들에게 지지를 받는 상호작용적 이원론이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존 힉(John Hick)이다. 힉은 뉴버그(A. Newberg), 다킬리(E. d’Aquili), 퍼싱어(M. Persinger) 등과 같은 뇌과학과 종교경험에 대해 환원적 물리주의 입장에 경도된 연구들을 비판하면서, 의식적 정신경험은 두뇌 뉴런들의 변화를 통해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뇌경험으로부터 ‘차연’(差延, différance)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의식적 경험은 우리의 경험 구조에 새로운 ‘차이’를 도입한다고 보았다. 물론 이러한 힉의 주장은 데카르트식의 상호작용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힉의 이원론은 뇌와 정신은 끊임없이 상대방과 더불어 움직이면서, 서로를 유도하기도, 예인당하기도 하는 “두 명의 춤추는 파트너”(two dancing partner)이기 때문이다. 힉은 이러한 상호작용 이원론을 주장하기 위해 도이지(N. Doidge)의 뇌 가소성(plasticity) 이론을 도입한다. 즉 뇌란 고정된 장치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탄력과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뇌졸중의 환자들 경우 정상인들이 사용하던 신경 경로가 아니라, 대체 경로를 찾아 새로운 경로를 개척한다는 사실이다. 즉 의식적인 노력으로 인해 두뇌의 신경 배선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일준은 이러한 상호작용적 이원론을 ‘둘’(Two)의 탄생이라 부르며 정신이 뇌와 몸을 변형시키는 사례들을 제시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개미공포증을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바로 잡는 것인데, 이러한 인지행동치료는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서 “뇌를 재조직”하여 공포증을 치료하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인지행동 치료는 오늘날 우울증이나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이는 내담자들을 치료하는 상담 현장에서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심리치료 방식으로 이미 그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박일준은 이 외에도 잘 알려진 위약효과를 제시하는데, 환자가 정말 약을 투여받고 치유 받았다는 믿음 만으로 ‘뇌의 구조가 재조직’되었던 사례를 제시한다. 결국 이러한 상호작용적 이원론은 뇌나 정신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지배하거나 복속하는 관계가 아니라 뇌와 정신은 ‘함께 일어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호작용 이원론은 정신은 두뇌의 부수현상이라는 부수현상설을 근본적으로 배격하고 있다.

이상 살펴본 기독교가 최근 견지하고 있는 심신문제를 비환원적 물리주의(혹은 이중양상 일원론)와 상호작용적 이원론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물론 이 외에도 마음을 환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제거적 유물론(eliminative materialism)과 중도적 입장인 창발적 이원론(emergent dualism), 앞서 잠시 언급한 통전적 이원론 역시 기독교가 신경과학과 대화하려는 노력들 중 하나이다.

결국 우리는 이 입장 중 성서의 진술과 뇌과학을 균형있게 포섭하는 설명이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 앞서 성서적 인간론을 살펴보며 성서가 제시하는 인간론은 일원론에 가깝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런 측면에서 상호작용적 이원론이 그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비환원적 물리주의(이중양상 일원론)가 성서의 견해와 잘 어울린다고 주장할 수 있다. 특별히 이러한 비환원적 물리주의는 심신이원론의 한계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향적인 인과를 주장해서 여전히 물리주의가 주도하는 심신문제에서 기독교 신앙, 즉 하나님의 존재나 그 영향 또는 자유의지 같은 주제를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입지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호작용 이원론 역시 뇌와 정신이 ‘창조적 파트너’로서 서로 간의 상호 작용을 인정하므로 행동의 의식적 결정 배후에 있는 신경 활동이 그 행위를 야기하거나 적어도 그에 영향을 끼치는 신경과학적 주장과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이러한 견해들이 극단적인 환원적 물리주의의 주장이 거짓임을 보였다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6. 종교적 경험에 대한 고찰

성서적 인간론과 신경과학의 대화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중요한 문제를 하나 언급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신학과 신경과학의 중요한 이슈는 종교적 경험이다. 종교적 경험을 증명하려는 신경과학의 실험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으로 종교의 기원과 신 존재 증명 같은 논쟁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을 대하면서 던져야할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종교적 경험”이 과연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본 논고를 준비하며 여러 실험들을 관찰할 때, 신경과학이 증명하려는 종교적 경험이라는 범주가 상당히 한정적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뉴버그의 경우에는 후상부두정엽과 자기초월, 혼연일체의 신비체험의 연관성을 살펴보려 하였다. 퍼싱어의 경우에는 측두엽과 종교적 경험의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신의 헬멧(God helmet)을 통해 간질 환자에게서 보여지는 환상과 환각(hallucination)이 종교적 경험과 동일한 것임을 밝히려고 하였다. 마리오 뷰리가드(M. Beauregard)와 데니스 오리어리(D. O’Leary)는 그들이 책 『신은 뇌 속에 갇히지 않는다』에서 뇌과학과 종교경험의 상관관계를 밝히는데 있어서, RSME(영적체험)을 집중적으로 고려하였다. 이는 비환원적 물리주의의 견해를 밝히는 풀러그룹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상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종교적 경험이 다분히 ‘신비체험’에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언급하는 종교가 대체로는 기독교이고 가끔 불교 정도가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프라우드풋의 지적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프라우드풋은 신성한 것에 대한 경험에 의거해서 묘사하는 종교적 경험을 사람들이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되 누군가가 신성한 대상을 실제로 경험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아도 되도록 종교적 경험의 성격을 넓게 규정해야 한다 말한다. 프라우드풋에게 종교적 경험이란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이 종교적이라고 간주되거나 해석되는 모든 것이다.

힉은 종교경험이란 ‘삶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고, 또 삶의 변화란 삶을 통한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말한다. 실제 종교경험은 슐라미어마허적인 정서적 체험으로 국한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성서의 진리와 가치관 혹은 세계관이 한 사람이 그 동안 견지해 오던 가치관 내지는 진리관을 형성한 지식 체계를 도전할 뿐만 아니라 대치하여 개종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체험은 정서적이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지적 차원의 종교경험이다. 이런 지적이고 이성적인 차원의 종교경험은 뉴버그나 퍼싱어가 실험한 두뇌 실험 결과와 다른 값을 산출함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종교경험이라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종교경험을 대체로 기독교에 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종교적 경험은 특유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에 의해서 좌우되므로 종교가 다르면 경험하는 내용도 현격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종교의 기원을 밝히거나 종교적 경험을 설명하고 또한 종교적 경험과 두뇌 작용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시도에 앞서서 종교와 종교적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한 더욱 근본적인 고찰과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신경과학자와 그리스도인 학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과제이며 그 대답에 따라 연구의 결과와 그 방향도 달라질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7. 결론; 뇌과학과 신학. 경쟁을 넘어 대화의 동반자로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본고는 심신문제의 다양한 이론들을 살펴보고, 최근 신경과학 중에서도 리벳의 실험이 가져다준 심신문제의 논쟁 이슈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뇌와 마음의 밀접한 관계성을 어느 정도 입증한 신경과학에 있어서도 심신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답변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어서 성서가 견지하고 있는 인간론, 특별히 성서가 말하는 영혼에 대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이 몸과 영혼이라는 이원론적 견해를 유지해온 것과는 달리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모두 영혼이 몸과 구별되는 초월적 실체가 아니라 몸 내지는 몸의 생명을 나타내는 표현이며 따라서 다소 일원론적 입장에 서있는 것이 최근 성서학자들의 견해임을 밝혔다. 따라서 이러한 성서적 일원론은 마음과 종교적 경험 등이 뇌의 작용이라 주장하는 신경과학과 대화할 수 가능성을 제공해줄 수 있음을 밝혔고, 실제 상호작용적 이원론은 물론 특별히 비환원적 물리주의(이중양상일원론)가 이러한 신경과학과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입지를 어느 정도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뇌와 종교적 경험의 관계를 밝히려는 여러 시도들이 정작 종교적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고찰이 없음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앞으로 신경과학과 기독교 신앙이 대화하고 토론함에 있어서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종교적 경험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더욱 의미있는 연구가 가능해진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이상의 논고는 뇌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이 그에 대한 적절한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현실적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실제 교회 현장은 과학에 대한 무지와 혐오 혹은 오해와 왜곡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최근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이다. 비록 뇌과학이 교회 현장에서는 아직 우주 탄생 기원 만큼 이슈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학계에서는 이미 뇌과학이 종교의 기원에 대해 큰 도전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의 차원에서라도 기독교 신앙은 적실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모든 물질과 물질현상이 하나님의 창조의 결과라 믿는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 믿음을 고려할 때 뇌과학을 이러한 믿음의 기초 위에서 연구하고 대화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자세일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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