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흔히 7,80년대 특수한 한국적 상황에서 탄생한 상황신학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전태일이 사랑했던 여공들이 사라지고, 스스로 국가임을 자부했던 군대가 사라지면서 민중신학도 자취를 감춘 것으로 생각한다. ‘7,80년대 특수한 한국적 상황’에 맞는 소임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민중신학에 대한 평가, 정당한가

이런 민중신학에 대한 평가는 몇 가지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먼저 민중신학이 모습을 드러낸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시대가 달라졌다고 믿기를 강요할 뿐이다. IMF 이후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의 바람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부추겼으며, 대량의 실업자와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노동계층을 탄생시켰다. 전태일 시대의 어린 여공이 대량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바뀌었을 뿐, 자본에 의한 노동의 소외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군대의 독재가 사라졌는가? 분명히 군대는 사라졌다. 직선제로 형식적 민주주의도 도입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국가 폭력을 목격하고 있으며, 촛불에 의해 심판되었다고는 하지만 조금 전까지도 독재의 망령이 살아 있었다. 지역주의, 차별, 빈곤, 분단 등 사회가 민중신학이 극복하고자 했던, 아니 민중이 극복하고자 했던 시대의 과제들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민중신학 세미나를 지도하는 한신대 류장현 교수(조직신학) ⓒ고수봉

특별히 교회는 더욱 심각하다. 7,80년대 사회적 과제들을 애써 부정하면서 위로와 축복만을 주술 외우듯 했던 교회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던 위로의 기능마저 스스로 내던져 버린 것이다. ‘3박자 축복’으로 대표되는 산업화 시기의 성장주의에 영향을 받은 번영신학의 몰락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가 지금도 민중신학과 그 교회의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민중신학은 7,80년대 특수한 상황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중신학은 70년 전태일 사건을 통해 드러났을 뿐이지 지금도 역사적 현장, 민중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길 기대한다. 그것은 민중신학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으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민중사건을 해석하고자 한다.

민중의 사회적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수업을 담당하는 류장현 교수는 “민중신학에서 성서는 하나님 말씀이 문자화된 전거로 본다.”며, “성서를 해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역사의 현장을 통해서 성령으로 계시하시는 말씀, 민중사건에 대한 해석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사회는 99대 1의 사회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구축되면서 비정규직, 이주민, 청년실업, 빈곤(특히 노인빈곤) 등 문제가 급격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분단과 통일, 평화의 문제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민중현실이다. 장애인, 여성, 아동, 성소수자 등 차별과 학대, 혐오의 문제도 산적해 있다. 민중신학은 이러한 현실을 새롭게 보게 한다.

여기에 더해 류 교수는 “민중신학은 7,80년대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며, “한국의 종교사상사 속에 뿌리 박혀 있는 우리의 고유한 종교성이 기독교와 만나 신학적으로 표출되어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중신학에는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종교성, 해원상생의 무속과 홍익인간, 제세이화와 같은 전통경전, 유불선의 고유한 정신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신학이 한국적 신학으로서 갖는 위치를 설명해 주기 충분하다.

민중신학, 민중교회와 더불어 계속

마지막으로 민중신학이 오늘의 신학으로 살아있다는 것은 민중교회를 통해 웅변한다. 서적 안에 머무는 신학은 죽은 신학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7,80년대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넘어 오늘의 시대에도 민중교회와 선교를 통해 여전히 살아있다.

70년대 민중신학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민중선교는 싹을 틔우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이농정책으로 도시빈민이 급격하게 증가할 무렵 민중적 교회는 도시문제연구소, 수도권특수선교회 등을 통해 민중선교를 펼쳐가기 시작한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민중적 선교의 맹아들은 민중신학과 함께 권력과 폭력에 저항했다.

기장교단의 경우 기장선교교육원(현 총회교육원)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다 쫓겨난 학생들과 신학교육(민중신학)을 하기 시작했다. 민중신학과 함께 자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은 광주 민주화 사건을 거치면서 교회와 민중선교 현장으로 들어갔고, 85년 한국민중선교협의회를 거쳐 민중교회연합(이하 민교)을 설립했다. 민중선교를 통해 민중사건 한복판에서 씨름해온 기장 민교는 다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97년 생명선교연대로 개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담론으로서 민중신학과 민중선교 현장으로서 민중교회가 멀어져 있는 듯 보인다. 예전에 비해 선교의 형태도 개별화, 지역화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민중교회는 민중신학을 고백하며, 역사적 현장에서 새로운 고민과 시도에 몸부림치고 있다. 민중신학이 특수한 상황에만 머물 수 없다는 증거이다.

대학원 세미나 <민중신학과 교회>는 앞으로 민중선교 현장의 이야기와 신학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다변화한 사회에 맞게 현장의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그렇기에 신학적 작업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장의 정신, 기장의 신학으로 민중신학은 우리 신앙양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새로운 종교개혁 운동의 화살촉이 되길 기대해 본다.

고수봉 기자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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