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숲에게 길을 묻다

서덕석 시인(목사,한국작가회의회원)

지혜로운 이는
거기 있음을 알 수 있어도
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지혜로운 말은 듣기는 들어도
소리가 없다는
스승의 말씀이 떠올라
가을 숲을 찾아가
길을 묻는다.

나이 오십 줄이 되도록
풀지 못한 인생사 수수께끼가
상수리 열매 하나가
머리위에 떨어질 때
비로소
깨달아진다.

“.... 저 바보,
작년에도 오고
재작년에도 왔고
키 재기 놀이하던 코흘리개 적부터
해마다 꿀밤 맞더니
뭘 하나 깨달았나본데,
이제 어떻게 사는가 두고 보자”
하면서 둘러선 상수리나무들이
소근 소근 귓속말 한다.

반평생 동안
수백 번 길을 물었어도
가르침대로 살 마음이 없어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만 듣고,
발밑에 떨어진 도토리 주워 모아
묵이나 만들어 먹을 궁리만
하고 살았네.

거기,
하루 한 번씩은 쳐다보고
가끔은 지나가다
오줌도 누곤 하던 숲에서
상수리 나무들이 늘어서서
이 인간을 겨냥해
쉼 없이 꿀밤을 먹였는데.

서덕석  yeall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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