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어볼 예수 이야기는 흔히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라고 불리는 민담이다. 주인과 관리인 사이의 갈등, 그리고 관리인들 사이의 갈등을 말한다. 마태복음 18장을 보자.

본문에서 “임금”은 이방인 왕(로마 정복 이전의 헬라 군주들)이나 폭정을 일삼았던 헤롯 안티파스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종은 누구일까? 학자들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종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종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했었을까

맨슨(T. W. Manson)은 본문의 ‘종’을 고위관리(각주 1)라고 보았다. 글랜시(J. A. Glancy)는 재무담당자라고 생각했다.(각주 2) 게리 벌지(G. M. Burge)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종이 재무 담당자일 수도 있겠지만 지역별 책임자 혹은 ‘세금 농부’라 불렸던 당시 주민들에게 세금을 걷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각주 3) 그는 세금 농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각주 4)

아마도 이 종은 세금농사(tax farming)의 일을 맡았던 왕의 관리인이었을 것이다. 백 데나리온을 빌린 동관(ὁ σὐνδουλος)은 ‘소시민’인 하급관리이다.(각주 5) 벌지는 이들이 첫 번째 종에게 세금을 거두어 바쳐야 했던 ‘하청업자’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100데나리온을 빚진 종은 첫 번째 종과 직급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옥졸들”로 불리운 사람들은 “고문관들”(교도관들)이다. 즉 고문을 함으로써 빚을 받아내는 사람들이었다.

왕과 종을 향한 농민들의 마음은?

이제 농심으로 이 이야기를 들어보자. 왕(이방인 왕이나 헤롯 안티파스 같은 인물이다)과 관리인이 등장한다. 농민들에게는 왕이나 관리인이나 둘 다 탐탁지 않은 인물들이다. 만약 벌지의 주장처럼 ‘세금 농부’의 맥락이 있었다면, 그들은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 종이 임금에게 탕감을 요청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이 등장인물로 언급될 때 야유가 터져나왔을 수도 있다. 왕이 결산을 하니 관리인은 주인에게 10,000 달란트의 빚을 졌다. 요세푸스의 환산을 따르자면 이는 1억 데나리온이다.

헤롯 대왕이 그의 모든 왕궁에서 거두어들이는 총세입이 900달란트라는 것을 생각할 때 10,000 달란트는 엄청난 거금이다.(각주 6) 김명수는 주인과 종 사이의 이러한 채권 관계는 상류사회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10,000 달란트는 식민국가 대 피식민 국가 사이의 채무관계(전쟁배상금, 징세)를 반영한다고 보았다.(각주 7) 10,000달란트와 같은 터무니없는 과장법은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했을 것이다.

왕은 관리인에게 관리인 자신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갚으라고 했다. 이러한 처사는 예수의 청중이었던 농민들의 심성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왜냐하면 유대법은 채무를 갚기 위해서 처자를 노예로 파는 것을 금하기 때문이다.(각주 8)

관리인은 엎드려 절하며 간청했다. ‘다 갚으리이다’(마18:26)라는 호소는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이런 비참한 관리인의 처지는 예수의 청중들에게는 큰 웃음거리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소에 그들은 농민들에게 큰소리를 치던 인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청중이었던 “농사에 매인 농노들 다수가 세금 납부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군주에게 일정액을 올려야하는 세리들의 입장으로는 사정을 봐 줄 수가 없었다. 제자들 중 일부, 심지어 예수님도 능숙한 이야기꾼이 왕의 신하 한 사람이 빚더미에 올라앉는 과정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미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각주 9) 그리고 어쩌면 농민들은 관리인이 탕감받고 풀려나는 것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빚을 갚기 위해서 더 독하게 세금을 거둬들이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에게 일어난 반전?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주인이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 물론 이러한 탕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나 흉년으로 세금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억지로 돈을 받아내려 해 봐야 돈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세금을 감면해 주는 일이 있었다.(각주 10)

그러나 면제된 액수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각주 11) 왕은 관리인의 가족과 전 재산을 처분해도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오히려 다시 기회를 주어 세금을 거두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빚탕감을 받은 관리인이 자신에게 100데나리온 빚을 진 동료 관리인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겁박하였다. 10,000달란트 탕감을 받은 관리인은 100데나리온 빚진 관리인의 목을 잡았다. 바클레이는 이 행위에 대해서 “옛날 그레코-로만의 법에는 채무자를 잡을 때는 토가(toga, 로마인들이 입던 헐렁한 옷)의 깃을 잡도록 되어 있고 법정에 글고 들어갈 때도 그 깃의 절반 정도만을 잡도록 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대개 원고 스스로 피고를 잡아 법정에 세웠는데, 질식할 우려가 있으므로 목을 잡는 것은 금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논평한다.(각주 12) 그리고 그는 10,000달란트 빚진 관리인이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말이 다음과 같은 험상궂은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빌려간 돈을 갚지 않다니, 모름지기, 정직한 사람은 빚을 잘 갚는 거야”라는 뉘앙스로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더 편하게 옮기면 “사람이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할 것이 아냐?”라고 소리치는 격이다.(각주 13)

이러한 겁박에 100데나리온 빚진 관리인은 호소한다. 100데나리온 빚을 진 관리인의 호소는 첫 번째 관리인의 호소와 다르지 않았다. 멱살을 쥐는 폭력 행위를 통해 도주를 막은 것이다. 그리고 채무자를 감옥에 가두었다.

농민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1만 달란트 빚진 관리인이 100데나리온 빚진 관리인을 탕감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다 이러한  폭행의 장면을 들으면서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고 그 행태에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반전의 반전

그런데 이 사건은 또 다른 관리인들을 분노하게 했다. 동료 관리인들은 그 장면을 보았으며,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모든 것을 다 보고했다. 이 때 딱하게 여겼다는 말은 슬픔과 분노를 의미한다.(각주 14) 왕은 10,000달란트 빚진 관리인에게 행했던 면제 행위를 철회한다. 왜냐하면 그 관리인은 동료를 감옥에 넣음으로 궁극적으로 왕의 재산에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왕은 첫 번째 관리인을 책망하고 그를 고문관들에게 넘겼다. 고문관들은 빚진 자가 숨겨진 재산을 가져오게 하고, 재산이 있는 친인척들이 대신 빚을 갚게 하기 위해서 고문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유대교에서는 고문을 금지했지만, 이방에서는 이러한 고문이 행해졌고, 특히 로마와 헤롯 가문의 통치에서는 고문이 이루어졌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그 빚을 다 갚도록”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10,000 달란트의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 형벌의 고통이 끝없는 것을 의미한다.(각주 16) 엎드려 빌어 얻은 기회를 놓치고 다시 형벌을 받게 된 관리인의 모습에 청중들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키너(C. Keener)는 이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대조는 익살스러우면서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게하는 효과도 있지만, 부채로 인한 종살이, 고문 등의 암담한 세부사항은 비유의 논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각주 17)

우리는 농민의 시각으로, 농민의 마음으로 예수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농민들에게 이 이야기는 주인과 관리인, 관리인들 사이의 갈등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야기는 관리인의 비정함을 비판적으로 시각으로 서술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관리인은 같은 관리인들에 대해서조차 비정하게 대한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 채무자 및 가족을 노예로 팔고, 빚진 사람을 감옥에 가두며, 고문관을 통해서 돈을 받아내는 행위들은 유대인들의 정서에 크게 반하는 것이며, 특히 주인공인 10,000 달란트 빛진 관리인의 행동은 공동체적인 농촌의 상황에서 볼 때 상당히 생경한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주인이 관리인을 심판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이는 예수의 민담과 말씀 가운데 자주 반복되는 패턴이며, 예수 이야기에 담겨있는 소망을 암시한다.

김재현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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