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예수의 이야기에서 재판관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와 예수의 청중들이 재판관을 어떠한 시선으로 보았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눅18:2-5을 읽어보자.

이 이야기 역시 매우 어려운 이야기로 여겨져 왔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예수의 말씀이 재판관과 하나님을 연결시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판관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 ‘불의한 재판관’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불의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발생한다. 그러나 농민의 심정으로 예수의 말씀을 들으면 이 이야기는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은 재판관과 과부다. 예수가 이야기의 도입부에 재판관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라고 했을 때 이야기를 듣던 농민들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원래 재판관들은 그런 인간들이니까.

말이 재판관이지 실상은 도둑이나 다름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도둑 재판관(robber judges)”이라고 불렸다고 한다.(각주 1) 또한 재판관이 유대인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만일 재판관이 외국인이었다면, 재판관에 대한 반감은 더 컸을 것이다. 안병무는 재판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 당시에는 재판관을 도둑으로 비유해서 도둑 재판관이라는 표현이 하나의 별명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재판관은 로마 치하의 재판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유다 법에는 없는 관직입니다.”(안병무)

말리나와 로어바우(B. J. Malina and R. L. Rohrbaugh)는 과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과부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속했다. 여성들이 보통 공적인 법정에 출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과부가 그녀 편을 들 수 있는 남성 가족 구성원이 없는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녀는 혼자였다.”(각주 2)

“원수”라고 번역된 낱말은 사실은 고소하는 사람(antidikos), 즉 소송 상대자를 말한다.(각주 3)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는 탄원은 사건을 맡아달라는 말이다. 그러나 재판관은 과부의 부탁을 거절한다.(각주 4)

여기까지 벌어진 일은 당대의 흔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이야기가 청중들에게는 재미있다. 과부가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재판관을 귀찮게 했다. 중동 문화의 맥락에서 볼 때 여자와 드잡이질을 하는 것은 상당히 체면이 손상당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남자가 이런 일을 했다면 그는 당장 쫓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중동의 기사도 때문에 가혹하게 대할 수도 없었다.(각주 5) 이제 재판관은 상당히 귀찮은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 때 재판관은 독백을 하는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의 비유 가운데 등장인물의 독백은 코믹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본문에 있는 재판관의 독백 역시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을 것이다. 재판관이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라고 했을 때 청중들은 웃음 바다를 이루었을 것이다.

특히 과부가 재판관을 번거롭게 한다고 할 때 그 말의 원어의 의미는 “눈 밑을 퍼렇게 만들다”이다.(각주 6) 권투를 하다가 때려서 눈 밑이 퍼렇게 되었다는 의미다. 근엄한 재판관이 과부와 복싱을 하고, 과부에게 얻어맞아 눈이 퍼렇게 멍들었다고 상상해 보라. 과거에 여성들이 남편에게 맞아서 눈이 퍼렇거나 시커멓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면서 사회적인 수치이기도 했다. 이제 강력한 권력을 쥔 남성이 가장 무력한 여성에게 맞아서 공적으로 수치를 당한다.(각주 7)

이 이야기는 예수의 이야기 가운데 많지 않은 승리한 이야기이다. 그 승리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과부의 끈질김에 있었다. “늘 와서”라는 말은 “끝까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끝까지 갈 것 같은 과부의 결기와 끈기에 권력자가 두손 들고 KO패를 당하고 만 것이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사회에서 권력자가 여성에게 패배한 일은 더욱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며, 그 꼴은 청중들을 더욱 즐겁게 했을 것이다.

김재현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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