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흔히 ‘예수의 비유’라고 알려진 많은 이야기들을 공부하면서 예수의 ‘비유’라고 알려진 이야기들이 실은 ‘비유’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들은 무엇이었을까? 그 이야기들은 비유라기보다는 차라리 “민담”이었다. 예수의 짧은 민담들은 교회에 전해지면서 나중에서야 비로소 ‘비유’가 되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은 종말론적, 기독론적, 교회론적 의미를 담고 있는 비유로 변화되었다. 이 과정은 “은유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은유가 되는” 엄청난 반전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비유라는 틀을 깨트리면, 이야기와 민담이 보이게 된다.

예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상상할 수 있다. 2000여년 전 갈릴리 마을에서 고된 노동을 마친 농민들이 예수의 식탁에 둘러 앉아 빵과 포도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던 장면을.

그렇다면 예수 민담의 소재는 무엇이었을까? 예수 민담의 기원과 소재는 ‘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마을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문, 돌아온 부재지주가 관리인을 처벌했다는 소문, 귀족이 왕위를 받아와서 그의 가신들에게 상과 벌을 주었다는 소문, 소작인들이 지주의 아들을 죽였다는 소문, 포도원 주인이 불만을 토로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했다는 소문, 부자의 아들이 외국 도시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말아먹었다는 소문, 부자의 집 앞에서 떨어지던 부스러기를 먹던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문 등.

갈릴리 농촌 민중들에게 떠돌던 소문은 예수라는 솜씨 있는 민담 작가에 의해서 민담으로 개작되었다. 그래서 예수의 이야기들 중 다수는 농민의 시각에서 지배계층과 중간관리인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예수 이야기는 종교적인 이야기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이야기들은 몹시 아프고 어두운 이야기로만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예수는 진실하고 정직한 눈으로 당대의 어두움을 통찰했다.

그러나 예수의 리얼리즘은 결코 어두움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두움 속에 빛이 있었다. 잔인하고 무서운 동화들 사이에서 익살과 해학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고난과 가난 중에도 넉넉한 낙관적 웃음소리를 듣게 된다.

기쁨과 해학을 알지 못한다면 예수의 이야기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고통을 넉넉하게 이기는 기쁨의 웃음이야말로 초기 예수 운동과 초기 기독교의 생명력이었다고 믿는다.

예수의 농심은 지주와 부자, 그리고 엘리트들을 비판하는 이야기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또 다른 종류의 농(農)의 이야기들이 있다[이 이야기들을 소개하려면 ‘대지의 시인 예수’라는 또 다른 시리즈가 나와야 할 것 같다]. 그 이야기들에서는 주인공이 탐욕적이고 혼란스러운 사람들에서 땅과 생명으로 바뀐다.

사람은 조연에 불과하다. 그 이야기들에는 땅과 생명에 관한 아름다운 말씀들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들이야말로 예수의 이야기 중 이야기며, 복음 중 복음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땅을 중심으로 비유를 해석한 학자로는 조태연 교수를 들 수 있다.(각주 1)

그런 땅과 생명의 이야기 중 대표적인 이야기가 ‘씨 뿌리는 비유’와 ‘저절로 자라는 씨의 비유’라 불리는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에서 땅과 생명을 이야기하는 ‘농부 시인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조태연에 따르면 씨 뿌리는 이야기를 보면 자연의 정상적인 순환을 말하고 있다. ‘기적 같은 성장’도, ‘세 번의 실패 한 번의 성공’과 같은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자연과 생명의 순환을 말한다.

예수가 새들을 사탄으로 묘사했을리 없다. 새들이 씨앗을 먹고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새들도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예수가 가시떨기를 ‘염려, 유혹, 욕심’으로 비난했을리 없다. 가시떨기도 대지의 한 요소이며, 하나의 생명인 것을.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각주 2)

이러한 예수의 이야기는 밀레나 고흐의 미술 세계와도 통하는 것 같다.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어떤 성만찬보다 경건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 생각된다. 고흐의 ‘성찬식’이라 불린다고도 한다)은 탄광촌의 한 가정의 저녁식사를 묘사하고 있다. 전체적인 그림은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탄광의 색을 띠고 있다. 가난해서 감자를 먹지만 그들은 땅의 색깔이 입혀진 사람들이다.

고흐는 평생 밀레를 존경했다고 한다. 밀레의 그림을 보면 역시 사람을 땅의 색깔로 그렸다. 사람과 땅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들도 땅의 색깔로 그려져 있다.(각주 3) 땅의 색깔로 그려진 사람. 이런 그림들은 그야말로 예수가 말씀하시려던 메시지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돈과 욕심을 쫓는 사람이 되지 말고 땅을 닮은 사람이 되라는.

▲ Vincent van Gogh, “De aardappeleters”(The potato eaters), 1885, oil on canvas mounted on panel, 72cm x 93cm.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도시에서 사는 죄인이 농사 한번 지어보지 않고 감히 농심 운운하며 지금까지 글을 썼다. 심히 부끄럽다. 그저 예수 말씀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예수 말씀을 이해하려 공부를 하다 보니 농심을 만나게 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11번이나 이어지는 긴 시리즈의 글이었는데, 부족한 글을 잘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연재를 마친다.

(각주 1) 대체적인 연구가 집약되어 있는 대표적인 글은 조태연, “땅의 애가, 땅의 연가: 일곱 개의 자연비유를 중심으로” 『기독교 사상』 45(7)호 (2001): 199-226이다. 이외에도 조태연 교수는 예수의 비유를 땅의 관점에서 읽은 여러 편의 귀중한 연구들을 발표했다.
(각주 2)  조태연, “땅의 애가, 땅의 연가,” 209-213.
(각주 3)  김현화, 『성서 미술을 만나다』(한길사, 2008) 참조.

김재현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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