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 주체적 기독교를 찾기 위해 몸부림 친 믿음의 선조들. 참기독교를 고민했던 그들의 행보에서 나의 하느님, 우리의 기독교를 모색해본다. 8회에 걸쳐 만나게 될 이들에게 진한 신앙의 향기와 고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편집자주

회색 옷을 입고 하얀 터번을 쓴 키 크고 깡마른 그녀가 들어왔을 때, 모두 긴장했다. 그리고 그녀가 강연을 하기 위해 왔다는 것에 대해 여기저기서 반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둥이를 쫓아버려”라며 비아냥거리는 수많은 관중들. 그리고 주최측조차도 그녀가 연설하는 것이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분위기는 매우 껄끄러웠다. 왜냐하면 그녀가 연설하려는 주제, ‘노예제도 폐지와 여성 참정권의 문제’는 별개의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상황은 역전됐다. 감리교, 침례교를 비롯한 연합교회 사람들까지도 모두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왔고, 교회 안은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1851년 오하이오 주 애크런에서 열린 여성 인권 집회의 사회를 맡은 게이지의 글에서

▲ 소저너 트루스.

소수자의 인권에 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대로 인권이 실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불명확하지만, 인권에 대한 요구와 현실이 좀 더 구체화됐다. 더욱이 과거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노비’라는 이름으로 노예제가 존재했듯이 세계 각국의 과거에도 ‘노예제’가 존재했다. 인간이 아니라, 양도·매매가 가능한 ‘생명 있는 도구’로 치부되었던 노예. 그리고 노예제로 큰 상처와 질곡을 갖고 있는 존재는 ‘흑인’이다.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1797∼1883). ‘19세기 미국 흑인 여성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여성’이라 불리는 그는 노예였다. 부모가 흑인 노예라는 이유로 노예가 돼야만 했던 그는 노예제도 폐지와 흑인 여성들 참정권 문제를 가지고 평생을 고투했다. 6피트의 큰 키와 굵직한 목소리를 가졌던 그는 타고난 언변으로 전 미국을 돌며 ‘노예제 폐지와 여성 참정권’을 위한 강연했다. 노예제도 폐지에 관한 논의만으로도 매우 급진적인 사안으로 비판을 받던 당시, 흑인 여성의 참정권 문제도 함께 주장했던 그의 연설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흑인 여성이라는 신분으로 연설을 하는 그는 곳곳에서 많은 비난을 받기 일쑤였지만 타고난 언변과 논리로 그의 연설은 점차 명성을 얻어갔다. 흑인 노예로 태어나 노예제폐지 운동과 여성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소저너 트루스. 그의 삶이 더욱 가치있게 빛나는 것은 삶의 근원에 ‘신앙’이라는 무한한 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회 설교가 소저너 트루스

노예제 폐지와 흑인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운 소저너 트루스가 있었다면 그에 비길 만큼 커다란 또 하나의 이름은 ‘순회 설교가 소저너 트루스’다. 1791년 뉴욕 북부에서 태어난 트루스의 본명은 이사벨라였다. 허드슨 강 부근 농장의 노예로 살았던 그녀는 열네 살 무렵 토마스라는 나이든 노예와 결혼해 다섯의 아이를 낳아 길렀다. 1827년 뉴욕의 노예들은 합법적으로 노예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노예로서의 삶을 참기 힘들었던 그는 1826년 주인에게서 도망쳐 퀘이커 교도의 집에 머물렀다. 그 곳에 있는 동안 뉴욕에 살고 있던 자신의 아들이 불법적으로 알라바마 주에 종신노예로 팔려간 것을 알고 뉴욕 킹스턴에 있는 법원에 고소하여 법적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830년대 초 트루스는 자신이 태어났던 뉴욕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순회설교가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은 바로 거기였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는 매춘부 교화를 위한 감리교 선교모임 ‘막달레느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고 그 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이후 공동체가 와해되긴 했지만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하던 트루스는 1843년 하나님의 형상과 음성을 경험한 뒤 순회 설교가가 되리라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의 전반을 뒤집어 놓은 반전의 계기였다. 백인에 의해 지배당하고 억압당하던 노예에서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순회 설교거로,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는 한 인간이 됐다. 미국 곳곳을 다니며 야외집회와 교회, 거리에서 노래와 설교를 하거나 논쟁을 벌였고, ‘하나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형제’라는 사실을 전했다. 그의 힘있고 뛰어난 복음의 메시지는 듣는 이들의 가슴 깊은 곳을 적셨고 가는 곳마다 복음전도자로서 그녀의 위상은 드높았다. 이사벨라에서 소저너 트루스로, 노예에서 순회설교가로 변화한 트루스는 이제 새로운 인생의 문턱에 서게 됐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노예제도’의 폐지

복음을 전하던 트루스가 노예제 폐지 운동에 가담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나님 아래 모든 피조물이 동등하다는 것, 그 동등한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 그것은 바로 억압받고 있던 흑인 노예들의 삶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아래 올바른 것인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지표였기 때문이다.

그가 노예제 페지 운동에 결정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메사추세츠주의 노스햄프튼으로 갔을 때였다. 그 곳에서 노예제 폐지와, 평화, 평등 인간 삶의 증진을 위해 힘쓰던 공동체 ‘노스햄프튼 협회’를 만났다. 거기서 그는 처음으로 노예제 폐지론과 여성운동에 대해 알게 됐고 그것이 신앙적 관점에서도 타당한 일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트루스의 연설의 내용은 한층 폭 넓어지게 됐다. 단순히 신앙과 성경의 말씀만을 전파하던 그의 연설은 인종차별의 부당성, 노예제도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 등 사회적 관점에서의 문제들에 대해 강론하기 시작했다. 노스햄프튼 공동체의 더글라스는 당시의 트루스를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재치와 지혜, 열렬한 열정과 냉정한 분별력을 고루 겸비한 그녀는 매우 보기드문 여성이었다.”

물론 트루스는 그 연설에서 강조하는 모든 일들이 자신이 느끼고 믿는 하나님 아래에서 가장 옳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그는 힘든 줄 모르고 전국 각지를 돌며 연설을 하였다. “하나님은 백인뿐 아니라 흑인도 사랑하지 않으셨는가? 구세주는 백인뿐 아니라 모두 인간을 위해 죽으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동등하다”라는 그의 설교를 통해 그가 신앙 안에서 믿고 붙잡았던 하나님의 참 뜻이 무엇인지 잘 드러난다.

1850년이 되면서 그는 박탈당한 노예의 인권과 더불어 흑인 여성의 인권을 연결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흑인 노예의 인권이 백인들과 같이 동등해야 한다면 그 속에서 흑인 노예 여성들의 인권도 동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노예 폐지 운동이 큰 문제였던 당시에 ‘흑인 여성의 참정권’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자청하는 일이었다. 그 둘은 별개라고 생각하였고 흑인 노예의 자유가 더욱 중요했지 부수적 문제인 흑인 여성 노예의 참정권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연설은 종종 흑인 남성 노예들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힘있고 호소력있는 연설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것 ‘노예 제폐지와 여성 참정권’에 대한 연관과 정당성을 설파했고 많은 이들은 크게 감명받기도 했다. 트루스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만약 흑인 남성들이 그들의 권리는 갖는데 흑인 여성들이 그럴 수 없다면, 흑인 남성들이 흑인 여성들의 주인이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전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입니다”라고 소리 높였다. 인종간의 차별을 넘어 남성에게 또 다른 노예로 남아 있는 여성의 위치를 각성한 그녀는 노예제도의 폐지뿐 아니라 우리 속에 남아 있는 보이지 않는 노예제도까지도 폐지하자고 강조했다.

인종간의 결합, 성(性)의 결합

▲ 사망했던 1883년에 트루스의 묘비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2년후 절친한 동료였던 프란시스 티투스에 의해 기록됐다. “소저너는 갔지만, 나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부터 미래까지 그녀의 무덤을 찾을 것이므로 묘비에 그녀의 생애와 삶이 기록돼야만 한다.”

1857년 미시건주로 이동한 소저너 트루스는 1863년 노예해방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도 여전히 흑인들을 위해 일했다. 남북전쟁동안 트루스는 흑인 병사들을 위해 일했고, 해방 노예들 중 자신은 노예신분에서 풀려났으나 자녀를 납치당해 노예법이 존속하는 메릴랜드로 보내졌던 이들을 위해 법정 투쟁을 계속했다. 또 해방된 노예들이 정착해서 살 수 있는 토지와 직업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지원할 것을 위해서도 활동했다. 노예해방 후에도 그는 여전히 바쁘게 돌며 운동했고 연설했다.

1864년 그녀는 노예제 폐지를 위해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링컨 대통령으로부터 백악관으로 초청받기도 했으며, 같은 해 전국자유인구제협회로부터 노예의 근절과 재정착문제를 상담하는 역을 임명받았다. 그리고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그는 1883년 미시건 주 배틀 크리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소저너 트루스. 소수자 중의 소수자. 흑인 노예로 태어나 온갖 억압 속에서 그가 피워낸 결실은 값지다. 하나님 아래 모든 피조물의 동등함과 권리를 깨달은 그가 그 신앙을 몸소 실천함으로 전화해간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더없는 귀감이다. 국가종교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에서 부당하게 자행되는 차별과 불평등을 비판했던 소저너 트루스의 삶은 하나님의 참 뜻을 알지 못했던 많은 이국인들에게 커다란 경종이 되었으리라.

지금, 여전히 갖가지 조건들로 불평등과 차별이 존속하는 이 시대에 소저너 트루스가 주는 메시지는 우리 가슴에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든다. 흑인 노예여성이라는 신분으로 그리고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불평등과 차별 철폐를 위해 살았던 트루스. 안락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순에 너무 둔감한 것은 아닐는지. 신앙인으로, 여성으로, 그리고 운동가로서의 소저너 트루스의 삶은 1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깊숙한 깨달음을 전한다.

김진아 기자  nebo99@nate.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