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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보름달처럼 삶이 환해지소서!
박철 | 승인 2006.10.04 00:00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청백리를 말하는 대목에 "청풍명월(淸風明月)은 돈을 쓰는 것이 아니며 대울타리 띠 집에 돈 쓸 일이 없으며"한 대목이 있다.

청풍명월은 예부터 이렇게 맑고 깨끗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옛 사람들은 이를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최상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사람이 되지 않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도 일년에 또한 몇 날 되지 않는다.

   
▲ 더도 말고 덜더 말고 한가위 보름달처럼 우리네 삶이 환해져서 모든 걱정 근심이 물러가기를!
세속 일에 정신을 빼앗기기로 하면 현대인이 옛 사람에 비할 바 아닐 것이요, 현대인에게 청풍명월을 돌아 볼 수 없게 하는 장애라면 우선 도시화를 들 수 있으리라. 빌딩 숲과 매연에 청풍은 무참히 죽고, 휘황찬란한 불빛이 밤하늘에서 달과 별을 빼앗아간 지 오래 아닌가. 이런 때 맞는 추석 명절, 마당 앞에 나서니 하늘은 감쪽같이 별들로 총총하고 둥근 보름달이 선명하기만 하다.

"세속 일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혹은 장애 때문에" 청풍명월을 즐기지 못한 사람들에게, 찌든 마음과 몸을 씻고 잠시나마 도시의 장애에서 벗어나 조물주가 보내는 무진장의 선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때가 바로 이 추석 명절이다.

바쁜 일상과 도시의 장애는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로 쌓이게 마련인데, 심신이 피로할 때도 역시 청풍명월이 최상의 묘약이다. 일찍이 중국 북송(北宋)의 명신 사마광이 스트레스를 푸는 그 묘방을 설파해 둔 것이 있다.

"몸과 정신이 피로할 적에는 낚싯대를 던져 고기를 낚거나, 옷자락을 거머쥐고 약초를 캐거나, 개천 물을 돌려 꽃밭에 물을 대거나, 도끼를 들어 대나무를 쪼개거나,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관망하거나, 이리 저리 한가로이 거닐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거나 하면 좋다. 그때 밝은 달이 제 때 떠오르고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면 움직이고 멈추는데 구애가 없어 나의 이목폐장(耳目肺腸)이 모두 자유가 되므로 이 하늘과 땅 사이에 또 다시 그 어떤 낙이 이를 대신할 수 있을지도 잊게 된다."


사람마다 저렇게 바삐 찾는 고향이란 무엇인가. "나의 이목폐장을 자유롭게 하는" 청풍명월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은 "어떤 낙이 이를 대신할 수 있을지도 잊게 하는" 곳이 바로 고향이리라.

단 며칠이라도 잡다한 일상에서 탈출해 쌓여서 찌든 스트레스를 모두 털어내고 한가위, 그 청풍과 명월에 심신을 적셔 돌아간다면 그것이 또 조물주가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최상의 선물일 터이니, 이래서 명절은 귀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추석이 되면 봄여름 뿌리고 열심히 가꾼 것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농가 앞마당에서는 풋풋함이 채 가시지 않은 햇곡식들을 타작하고 울타리 지붕에서는 호박이 빨갛게 익어간다. 너른 들녘에서는 벼며 잡곡들이 황금물결을 이뤄 익어가며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 추석이 되면 지붕에서는 호박이 빨갛게 익어간다.

논밭에 터를 둔 우리 민족에게 일년 중 가장 큰 축제가 추석이다. 각자 거둔 것만큼씩 갖고 우리는 논밭의 고향을 찾는다. 갓 수확한 햇곡식 지고이고 어른 집을 찾고 선물꾸러미 바리바리 싣고 고향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우리는 먹고 마시고 나눠주고 노래하고 춤추며 인정의 축제를 벌인다.

옛날에 우리나라엔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때가 마침 한가위 보름달이 뜬 깊은 밤, 멀리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어머니를 등에 업은 아들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등에 업힌 어머니는 잠이 들었는지 아무 기척이 없었다. 늙은 노인을 산에 갖다 버리라는 국법을 따리기는 하지만, 분하고 원통해서 그대로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산중턱을 지나자 얼마 전부터 눈여겨봐 두었던 조그만 바위굴이 나왔다. 아들은 그 안에 들어가 마른 풀을 쌓은 한쪽에 어머니를 눕히고 작은 모닥불을 어깨를 덮어 드렸다. 그러자 또 눈에서 눈물이 어른거렸다.

"얘야, 어서 돌아가거라. 밤이 깊었구나."
어머니가 염려하며 나직이 말하자 아들은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어머니, 이틀에 한 번씩 양식을 가지고 들르겠으니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괜찮다. 애들 먹일 양식도 부족할 텐데… 걱정 말아라. 내가 알아서 산열매나 나무뿌리를 찾아 먹으마."

어머니의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아들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막 동굴을 나가려고 했다. 그 때, 어머니가 아들을 부르더니 주머니에서 헝겊에 꼬깃꼬깃하게 싼 뭔가를 내밀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그것은 아내가 저녁마다 어머니의 간식거리로 드렸던 누룽지였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나를 업고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산을 내려가면서 먹으려무나. 게다가 넌 오늘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잖니."
아들은 어머니 앞에 엎드려 오래도록 울었다.

   
▲ 가을의 풍요로운 흔적이 처마에 매달려 있다.
하늘은 파랗게 높아만 가고 먼 산도 확 트여 이마 앞으로 다가온다. 맑고 삽상한 바람을 피부가 먼저 알아 사람과 사연들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지난 계절의 꽃도 열흘 간 붉지 못했고 달마다 달도 차면 기울었다. 이 꽉 차올라 더할 수 없이 좋은 때 텅 빈 계절을 준비하는 것이 추석이다. 노랗게 풍요로 물들인 들녘의 것들을 다시 대지에 다 나눠주고 빈손으로 이 계절은 겨울 속으로 간다.

오늘부터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추석을 맞아 빈손으로 오면 어떤가? 자식들의 손이 빈손이어도 부모는 섭섭하지 않다. 내 자식들이 객지에 나가서 힘들게 살다가 추석명절이라고 부모가 계신 곳으로, 자기가 자라난 고향으로 그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부모는 자식들이 말하지 않아도 그 고단한 마음을 다 안다.

추석을 맞아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누이가 빚은 고운 송편처럼 우리네 삶의 환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박철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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