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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의 민중신학과 통일신학늦봄 문익환 목사의 사상과 신학(3)
조헌정 | 승인 2018.06.07 23:01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기를 맞이하며 4월 26일 한신대학원 목요강좌에서 발표한 강연에 기초해 세 번의 나누어 개재한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글이 개재될 것이다.

(1) 해방의 신학(Theology of Liberation)
(2) 시 신학 (Poem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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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옥신학 (Prison Theology) 
(4) 예언자 신학(Theology of Proph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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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중신학(Minjung Theology)
(6) 통일신학(Theology of Reunification)

이번 글은 문익환 목사의 민중신학과 통일신학이다.

(5) 민중신학(Minjung Theology): 히브리 민중사

민중신학이란 항목은 앞서 언급한 해방의 신학 그리고 예언자신학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따로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은 문 목사님의 말년의 역작인 『히브리 민중사』가 지닌 신학적인 독창성과 세계 신학계에서 남미의 해방신학과 더불어 민중신학이 갖고 있는 무게감 때문이다. 이 책이 절판이 되었다가 올해 문 목사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복간되었다는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이다.

흔히 제1성서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로 이해한다. 성서공부를 진행하다 보면 곧잘 신도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놔두고 왜 다른 민족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에 대한 가장 분명한 답이 문익환의 『히브리 민중사』이다. 『히브리 민중사』는 제1성서가 하나의 민족사가 아니라 세계 모든 약소민족이 강대국에게, 또는 한 나라의 밑바닥 민중이 지배권력으로부터 겪는 억압 가운데, 야훼 하느님께서 어떻게 해방의 역사를 이끌어내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함석헌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사와 한국 민족사를 민족 수난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내었듯이 목사님 또한 유대민족과 한국민족을 ‘히브리’라는 한 단어로 묶어내고 있다. 히브리 민중사는 제1성서 전체를 민중 해방의 이야기로 풀어낸 역사 파노라마이자 야훼 하느님의 인간 역사 개입의 본질을 드러낼뿐더러 목사님 자신의 고난에 찬 삶을 노래한 가슴풀이이다.

▲ 1976년 3.1명동구국선언 후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에 뛰어든 문익환 목사는 한국사회 곳곳 민중들의 아픔과 함께 ⓒ오픈아카이브

우선 히브리라는 단어는 고대 서남 아시아에서는 핏줄로 이루어진 하나의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밑바닥 계층을 일컫는 사회용어였음에 대해 여러 문헌을 통해 그 사례를 밝히고 있다. 먼저 성서에 등장하는 히브리 또한 그 쓰임새를 보면 특정한 사회계층을 일컫는 것을 볼 수 있다.(창 43:32, 고후 11:22) 히브리와 같은 어근을 가진 ‘하비루’라는 용어는 고대 중동의 기원전 18세기 기록에서는 용병 혹은 강도떼로 나온다. 또 15세기 기록에서는 ‘하비루들의 신들’로 등장함으로 국제조약 체결의 증인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애굽의 기록에서는 왕의 전리품으로 혹은 해방 혁명군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하비루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각기 달리 지칭되면서, 전쟁포로, 노예, 용병, 강도떼, 해방군, 소작농, 떠돌이, 더부살이 등의 다양한 계층으로 말해진다. 목사님은 이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결국 히브리는 종족 혈족으로 단위를 이루는 배타적인 칭호가 아니라 자주적인 주격으로 해방되어야 할 밑바닥 계층이자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약자들을 포함하는 총칭”이라고 규정한다.(30쪽 이하)

그리하여 가나안 정복은 여호수아가 이끄는 하비루 부대와 가나안 내부에서 반애굽의 기치를 들고 일어선 농민해방군으로서의 하비루가 합세한 해방전쟁으로 이해한다. 목사님은 여기서 ‘난 발바닥으로’라는 유명한 시를 읊으며 하비루의 저항정신을 자신의 현존으로 끌어온다.(42-43쪽)

하느님

이 눈을 후벼 빼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볼 겁니다
이 고막을 뚫어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들을 겁니다
이 코를 틀어막아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숨을 쉴 겁니다
이 입을 봉해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소리칠 겁니다
단칼에 이 목을 날려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당신 생각을 할 겁니다
도끼로 이 손목을 찍어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풍물을 울릴겁니다
창을 들어 이 심장을 찔러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피를 철철 쏟으며 사랑을 할 겁니다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발바닥에 불질러보시라구요
젠장 난 발바닥 자죽만으로 남아
길가의 풀포기들하고나 사랑을 속삭일 겁니다

십계명에 대한 해석은 더욱 놀랍다. “십계명은 단순한 도덕률이 아닙니다. 그건 모세의 등허리에 패인 열 줄 핏자국입니다. 성난 시나이 산 가슴 터지며 내뿜는 불꽃입니다. 아니, 그건 불꽃처럼 뒹구는 하비루 노예들의 살점들이었습니다. 다시는 억울하게 짓밟히고 억눌리고 착취당하고 죄 없이 맞아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살점들의 아우성이 바로 십계명이란 말입니다. 이 아우성이, 이 요구가 바로 야훼 하느님이 모세를 시켜 세우려는 새 공동체의 정신이요 뼈대가 아니겠습니까?”(109쪽)

이어 유일신 신앙 또한 해방과 자유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신앙 지키기 운동이었지, 이웃종교를 부정하는 배타적인 교리가 아니었음을 설파한다. “어렵게 터득한 유일신 신앙이 지배자의 종교가 되면서 배타적인 독선에 빠져 독재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온 겁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성서도 잘못 이해하면 침략전쟁을 거룩한 전쟁으로 정당화하고 급기야는 독재를 뒷받침해 주는 이념이 되는 것입니다.”(114쪽)

창세기 2장의 선악과 열매에 대한 해석 또한 (제국)권력자의 흑백논리의 시각 안에서 보는 점은 정확하다. 곧 (권력자의) 선악 판단이 독선이 되어 (민중) 생명이 이에 짓눌려 짓밟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가인의 아벨 형제 살해 해석에도 같은 흑백논리를 적용하는 일에 있어서는 선뜩 동의하기 어렵다.(144쪽) 오히려 이는 농부로 상징되는 집단정착문명 곧 땅을 사유화하고 부를 확대해나가는 도시의 제국성(가인)이 목자로 상징되는 곧 땅을 공유하고 부의 확대를 스스로 절제해야 하는 ‘유목생명공동체(아벨) 파괴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북방 이스라엘은 62년 동안 세 번이나 반란이 일어났고 세 왕이 비명으로 죽어가는군요. 어쩌면 분단 44년에 걸친 이 남쪽의 역사를 보는 것만 같군요. 거기 비해서 남쪽 유다는 세 왕이 세습으로 대를 이어 가거든요. 다윗 왕조가 확고한 지배권을 유지해 내려갔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평양 정권이 확고한 지배권을 유지해 내려온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는 하비루 두목 다윗의 전통이 예루살렘이라는 뚜렷한 상징과 난공불락의 도성과 함께 지속될 수 있었던 반면 북쪽 이스라엘에는 중앙집권이 확고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2018 152쪽)

남북왕국의 분열의 역사를 통해 한반도의 역사를 읽는다. 확고한 통치 지배권을 세웠다고 해서 역사의 정당성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김일성 주석을 다윗으로, 주체사상을 다윗의 전통으로 보는 유혹을 이겨낼 수가 없다. 역으로 상황주석을 해 본다면 남한이 확고한 통치 지배권을 확립하지 못한 이유가 일제 식민지지배 청산에 대한 불충분과 외세의 간섭으로 본다면 이는 북 왕국의 정치적 혼란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간접 설명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무당들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짓누르며 머리에 떠오르는 건 웬일일까요? 무당들이란 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천대를 받아 가면서도 그걸 탓하지 않고, 남의 아픔을 짊어지고 그걸 풀어 주는 걸 천칙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거든요.(166쪽)

목사는 한(恨)의 사제(司祭)여야 한다는 말은 서남동의 말이긴 하지만, 누구의 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감옥에서 민중의 한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문익환은 예언자들의 중요한 점을 신학에서 말하는 말(logos)이 아닌 몸짓, 몸부림으로 보았다. 해방을 갈구하는 민중의 저항의지의 표현으로 본 것이다. “꿈틀거리는 격정이 먼저이다. 거기서 말이 터져 나오면 그 말이야말로 역사를 변혁시키고 새 질서를 줄 수 있는 말인 거죠.”(169쪽) 필자는 이 ‘새 질서를 줄 수 있는 말’이란 다름 아닌 목사님께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장에서 29명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는 외침이었다고 본다. 모든 이를 전율에 떨게 하는 그 외침은 하느님의 몸부림이요 땅의 뜨거운 저항이었다.

아모스 2장 9-12절에 나오는 짧은 구절을 통해 나실인의 해방전승과 예언자들의 해방전승을 비교하고 이를 이사야를 다루면서 유목민들의 해방전승을 언급하면서 이를 장소에 연계하여 언급하는 부분에서 그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한 문 목사님만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혜안을 느낀다. 곧 자원하여 몸을 하느님께 바친 나실인들을 출애굽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사막을 떠도는 반농경사회의 해방운동가로, 예언자들은 주로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해방운동가로, 유목민들은 광야의 초원지대에서의 해방운동가로 보는 관점이다.(190-191쪽) 이사야가 그리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사자와 어린 양과 늑대와 염소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가 송아지와 함께 풀을 뜯는 새 역사 창조의 장소를 사막과 농경지대의 경계선상에 있는 광야로 말하는데, 그렇다면 이 광야 유목민이 사막의 나실인 그리고 농경지대의 예언자들과 어떻게 구별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못내 아쉽다.

구원에 있어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루터의 개혁교리는 오늘날 남한교회의 핵심 가르침인데, 이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하는 교회의 폐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믿음만의 교리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가르침으로서, 이는 본래 예언자 하박국에 기인하고 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개역, 합2:4) -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공동) 여기서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큰 오해가 없는데, 개역으로 읽으면 이 믿음에 대한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여기서 문익환은 오늘의 교회가 하박국 예언자의 본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 본래 뜻은 ‘힘을 하느님이라고 믿는 사람들, 힘이 정의라고 믿고 설치는 사람들을 무서워 말라. 힘의 횡포-그건 옳지 않은 거야. 이런 뜻이죠. 하박국은 악에 항거해서 소신껏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세계를 환상으로 보았던 겁니다.’ 곧 하박국이 말하고자 했던 의인 신앙이란 ‘눈 딱 감고 믿는’ 현실 도피의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와짝 뜨고 믿는’ 현실 역사 참여의 신앙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269쪽)

『히브리 민중사』는 예언자들의 해방 전통이야 말로 성서의 일관된 중심 사상임을 밝히고 있다. 곧 ‘서구백인남성 신학자’들이 지난 이천 년동안 애써 외면해온 성서 안의 핵심인 발바닥 민중의 역사를 찾아낸 것이다. 문익환을 통일지상주의자 혹은 그래서 민족지상주의로 말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뿌리에는 하비루 곧 민중해방사상의 실현을 꿈꾸는데 있는 것이다.

문 목사님의 뒤를 이어 가는 후학들이 담당해야 할 두 가지 신학 작업을 얘기하고자 한다. 우선 중도에서 그친 예레미야와 예레미야 이후 바벨론 포로기의 에스겔과 제2, 3이사야 그리고 포로 귀환 이후의 에스라와 느헤미야까지 다룸으로 히브리 민중사를 완성하는 일이다. 강연자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바벨론 포로기의 문서들을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추구한 바 있다. 그리고 민중신학의 폭넓은 소개와 발전을 위해 『히브리 민중사』를 영어로 번역 출판하는 일이다. 사실 민중신학은 80년대 초 여러 학자들의 짧은 논문들을 모아 영문으로 번역된 책 한권 외에 특별한 책이 없어 매우 아쉬웠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국내외 소장 조직신학자들의 논문을 엮은 『Minjung Theology Today』라는 책이 곧 출판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민중신학 제1세대 학자들의 역작들이 세계 신학계에 소개되는 것이다. 제2성서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책이 올해 안에 영문으로 출판될 예정에 있다. 따라서 문 목사님의 『히브리 민중사』를 번역 출판할 때에 비로서 민중신학의 전체가 소개되는 것이다.

(6) 통일신학(Theology of Reunification): 주체사상과의 대화

1) 통일의 시급성

남한은 현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제1의 자살률국가이다. 국민소득은 계속 올라가고 국가안보는 신무기로 계속 튼튼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전쟁 아닌 전쟁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건 남북분단이 만들어낸 반생명 반평화 죽음의 기운이 한반도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세계 자살율 2위 국가가 같은 분단의 비극을 겪고 있는 사이프러스임을 알 때 더욱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99마리 양보다 우리 밖의 한 마리의 양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교회의 복음 사역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그 초점이 맞혀져야 한다. 38년 전 서울대 신입생 환영예배에서 행한 문 목사님의 하늘뜻펴기를 들어보자.

대한민국의 국시가 민주주의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는 ‘민족을 통일하는 민주주의’가 아닌가요. 요새 저같이 민족통일을 말하는 사람을 관변측에서는 뉴레프트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저는 그런 건 일소에 붙일 겁니다.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고 때려잡는 칼은 한 번도 우리의 목을 떨어뜨리지 못했어요. 저는 국토 분단을 고정시키고 민족 분열을 심화시키는 민주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거부할 거예요. 이것이 이 땅에서 신앙을 사는 길이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민족을 통일하는 민주주의-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휴전선으로 갈려 있는 민족의 통일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휴전선의 철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이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갈려 있는 한, 휴전선의 철폐만으로는 민족이 통일되지 않아요. 민족 통일의 실체는 휴전선의 철폐가 아니라, 우리의 국토인 이 한반도에서,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에서 지배자-피지배자의 관계를 몰아내는 일입니다. 이렇게 자유인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민족의 주체적인 자기주장의 함성 앞에 휴전선은 여리고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문익환, 『통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학민사, 1984. 136쪽.)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들 대부분이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휴전선의 철폐를 넘어서 지배자-피지배자의 관계를 몰아내는 일이 통일의 실체라고 하는 목사님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목사님이 지적하는 일차적 지배자는 미국이지만, 지금은 여기에 동승하고 있는 시장자본주의하의 투자 자본가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도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빈민들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고 있다. 또 목사님의 발언 가운데 우리가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은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에서’라는 단서이다. 북조선 또한 이러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우선의 NL주의와 민중우선의 PD주의를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합일의 정신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1989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남을 가진 문익환 목사. 이 사건을 계기로 민간 차원의 통일이 급속도로 진행되게 되는 혁명적인 길을 개척했다. ⓒ오픈아카이브

통일신학이란 단지 통일의 필연성을 주창하는 신학이 아니라, 남과 북의 이념과 체제가 하나로 통일이 되는 신학을 말한다. 쉽게 말해 남쪽의 자본주의에 기초한 자유사상과 북쪽의 사회주의에 기초한 평등사상이 만나는 신학이어야 한다. 물론 남이라고 해서 모두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소수이고, 다수는 성공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북의 평등 또한 상당부분 제한적이다. 지역적으로는 평양 그리고 계급적으로는 10%에 해당하는 당원과 관료들에게 부가 편중되어 있다. 97년 처음 평양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것은 자본에 물들기 시작하는 관료들이었다. 지금은 훨씬 더 심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체 모순에도 불구하고 강연자는 남쪽의 신자본주의와 북쪽의 신사회주의가 함께 만나 어우러지는 새로운 경제체제야말로 이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경제모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함석헌 선생이 말한 대로 ‘세계사의 하수구’인 한반도의 수난의 역사는 세계를 구원하게 될 것인데, 강연자는 이 세계 구원은 바로 남과 북이 만나 창출해 내는 새로운 정치사회경제체제라고 본다.

오늘 문 목사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어떤 신학적 작업을 진행할 것인가? 이미 해외에서는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지만, 그건 민중신학과 주체사상의 만남이라고 본다. 여기서 필자는 주체사상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80년대 브리태니카 사전은 <World Religion> 이라는 항목에서 북의 주체사상을 세계 8위의 ‘주체 종교’로 분류하고 있다. 필자는 97년 이후 2013년까지 3, 4년 주기로 다섯 차례 평양을 다녀온 바 있는데, 곳곳에 붙어 있는 여러 구호들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 이념을 엿보게 된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첫 방문에서 “주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등등의 구호를 보면서 이는 기독교의 부활과 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꼈었다.

지금도 김정은 위원장이 핵개발 중단 내지 핵폐기를 말하면서 그 정당성의 근거로 김 주석의 유훈을 언급하는 것은 북조선이 유사종교 사회체제를 갖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흔히 우리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김일성 개인숭배사상’으로 치부하고 마는데, 이는 북에서 기독교를 향해 ‘주 예수 개인숭배사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얘기가 되고 만다.

교회가 이천 년 전 예수의 사상과 행동을 오늘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듯이 북 또한 수십 년 전의 김일성의 사상과 행동을 오늘의 시대에 재해석하고 있다. 물론 교회에도 문자 근본주의자가 있듯이 북에도 그런 근본주의자들이 있을 것이다. 남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단들이 있듯이 북에도 그런 이단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극단의 예를 갖고 전체를 속단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며, 탈북자들이 하는 얘기를 전적으로 신뢰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북에서 비판하는 기독교는 미국의 제국성을 대변하는 국가종교로서의 비판이 우선이지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닌 것이다.

2) 민중신학과 주체사상과의 대화

이제 시급하게 준비해야 할 통일신학의 과제는 민중신학과 주체사상과의 만남이다. 문제는 북은 기독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고 있으나 남은 ‘빨갱이 덫’에 걸려 주체사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순 우리말인 ‘동무’ 대신 한자어 ‘친구’를 사용해야 하고 ‘인민(人民)’이란 좋은 단어 대신에 ‘민중(民衆)’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주체(主體)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비주체성에 휘둘리며 살아온 것이다. 남에서 가장 선호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건 민(民)의 주체인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는 곧 주체(主體)의 실현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민중신학과 주체사상과의 대화는 오히려 30년 전 한때 해외에서 진행된 적이 있을 뿐이다.

기독교도 비판할 게 많듯이 주체사상도 비판할 게 많다. 그러나 일단 저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자.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진정한 통일을 이루겠는가? 화해와 평화를 말하면서 내 것만 옳다고 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진정한 통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80년대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로 “주체사상과 기독교”라는 과목을 가르친 바 있는 홍동근 목사도 주체사상의 매력을 정치혁명의 맑스주의를 넘은 도덕철학과 종교성에 있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주체사상을 주체종교 내지는 주체신학으로 읽는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체사상은 맑스주의처럼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생소하지 않다. 해방 직후 맑스주의자들이 무신론과 유물사관을 가지고 기독교를 관념론이라고 조소하고 인민의 아편으로 치부하였을 때 (김일성 주석은) 이념적 반대나 적대의식을 표시하지 않았다. 반대로 토착적인 따뜻함과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하여 좋다. 맑스주의도 차이점을 거두고 공통점만을 찾으며 기독교와 사촌사이까지 갈 수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주체사상과 기독교』 선우학원 홍동근 공저 북미주체사상연구회 1990. 78쪽. 괄호 안은 필자의 첨가)

이 배경에는 김일성 자신이 어렸을 때, 외가 특히 어머니 강반석 집사의 영향 아래 교회를 다녔으며 아버지 김형직 또한 기독교학교인 숭실중학교를 졸업했다. 김형직 사후, 그의 절친인 손정도 목사 가정에서 양아들로 같이 자라났던 이가 김일성이다. 그리고 김일성의 외삼촌 강량욱 목사는 초기 수상을 지낸 바도 있다. 적어도 김일성에게 있어서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함께 갈 수 있는 사상이었다. 서구 기독교가 세계패권 제국주의와 결별하고 약소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조선의 기독교로 탈바꿈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김 주석은 여러 차례 남에서 온 목사님들에게 식사기도를 부탁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민중신학과 주체사상과의 접점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주체사상의 기본 교리는 다음과 같다. (1) 사람 중심의 사상, (2) 민족 자주성의 신앙, (3) 공산주의사회의 열망, (4) 혁명가적 풍모.

1. 주체사상의 사람 중심의 사상은 기독교의 하느님 중심 사상과는 반대개념으로 들리지만, 불트만이 지적했듯이 ‘신학은 인간학이다’라는 관점에서 또는 ‘안식일의 주인은 사람이다’라고 하는 예수의 선언을 통해 얼마든지 접점은 가능하다.

2. 민족 자주성의 신앙 또한 역사적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 관점에서 보면 예수 운동의 실체이기도 했다.

3. 공산주의를 논할 때에 원론적 의미에서 맑스의 유물사관과 주체사상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역사의 주체를 물질이 아닌 사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하고 필요에 따라 나눠 쓰는 초기교회의 모습은 공산주의의 원형이지 않는가?

4. 혁명가적 풍모는 헤롯왕을 여우로 비웃고 유대사회 지배의 근간인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채찍을 휘두르며 상을 뒤집어엎고 종교장사꾼들을 쫓아내고 성전을 장악하는 모습이야 말로 과연 혁명가적 풍모가 아닌가?

이러한 기독교와 주체사상의 대화를 만약 문 목사님의 『히브리 민중사』의 민중신학과 인민의 삶을 극대화하고자 하여 사회주의로 탈바꿈하고 있는 북조선의 주체신학으로 그 폭을 더욱 좁힌다면 둘 사이의 간극은 훨씬 더 좁아질 것이다. 필자는 목사님께서 지금 살아계신다면 분명 이 작업을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의 통일시대를 바라보면서 한신신학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진행하여야 한다고 본다. “민중신학과 주체사상 연구소”(가칭)를 설립하는 것을 제안한다. 10년 전 홍근수 목사께서 <기독교와 주체사상과의 대화>라는 과목을 개설했을 때, 등록학생 미달로 취소된 바 있지만, 이번의 한신신학의 광맥을 찾아가는 연속강좌가 하나의 행사로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던 김재준 목사님과 송창근 목사님 그리고 문익환 목사님의 유지를 이어 반드시 이런 연구소가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문 목사님은 ‘역사를 산다는 것은 벽을 문으로 알고 부딪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것이 바로 벽을 문으로 알고 부딪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7) 나가면서

▲ 문익환 목사의 사상과 신학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조헌정 목사 ⓒ에큐메니안

출애굽의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야웨흐 아세르 야웨흐’라고 답하신다. ‘나는 곧 나다.’라고 번역되는 이 말을 필자는 크게 두 가지로 이해한다. 첫째는 ‘백성들 사이에 거하는 신의 현존성’이고 둘째는 ‘인간의 언어로 규정받지 않는 곧 이름이 없는 신의 자율성’이다. 늦봄 문익환은 이러한 하느님의 본질적 형상을 가장 잘 보여준 분으로 하느님이 이 땅에 보내신 예언자였다. 미국의 퀘이커 봉사회는 1992년 문익환 목사를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천거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의 평생의 반려자 박용길 장로를 언급한다. 그는 남편의 가는 ‘늦봄’ 길을 함께 가겠다는 뜻에서 ‘봄길’이란 아호를 짓고 명동구국선언에서부터 뜻을 같이 하며 십자가 수난의 길을 걸었다. 남편을 대신하여 1995년 김일성주석의 1주기에 방북을 하였고 이로 인해 구속을 당했으며 그의 뒤를 이어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모임’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부활과 생명의 역사를 한반도에 펼쳐 보인 자랑스러운 부부였다.

『문익환 평전』은 다음의 문장으로 문 목사님의 삶을 정리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잘못된 수치심 없이 저 아득한 21세기의 나날들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분단ㆍ전쟁ㆍ국가폭력 같은 두려운 단어들이 아닌 따뜻한 언어로도 우리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꿈과 사랑을 보여준 그의 업적 덕분에 새로운 세대는 다른 눈으로, 더 잘, 더 자유롭게, 더 정직하게 자기들의 시대를 껴안을 수 있게 되었다.

조헌정  choshalo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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