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브아에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반응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

기브아에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개별적인 차원과 조직적인 차원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토막 난 시체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난 적도 없고 또 본 일도 없다. 이 일을 깊이 생각하여 보고 의논한 후 의견을 말하자”(19:30, 사역)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일을 깊이 생각한다는 구절의 ‘이 일(알레이하)’는 3인칭 여성 단수로 ‘이 사건’을 뜻할 수도 있지만 ‘이 여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버틀러(Trent C. Butler)는 이러한 백성들의 반응에 대한 설화자의 설명에 대한 의미를 “독자들은 이 스토리를 이스라엘의 스토리들 중 가장 위대한 스토리인 애굽에서의 출애굽과 비교해야만 한다. 출애굽 사건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부인의 죽음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사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백성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하고, 또한 논의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역사를 이스라엘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비겁한 행동들 역시 이스라엘에서 기억하지 않은 채 넘어가거나 혹은 보복당하지 않은 채 넘어가서는 안 된다.”(미주 28)는 것으로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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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스라엘 지파의 조직적인 반응은 20장에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이 단합하여 미스바에 모여서 총회를 모이면서 소개된다. 그들은 레위 남자의 설명을 듣고 곧바로 기브아 사람들과 그에 동조하는 베냐민 지파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고(20:11)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이기로 맹세하고(21:5) 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시집보내지 않기로 맹세한다(21:1, 18). 고소를 위해서 최소한 두 명의 증인을 세우도록 요구하고 있음에도(신 17:6-7), 여기서는 레위 남자의 증언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판결한다.

19장에서 토막시체를 받아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끔찍한 일 혹은 여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의논한 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면, 20장에서는 생각할 여지도 없이 일사불란한 군사적 대응을 동반한 지파 차원의 조직적인 대응으로 전쟁이 선포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깊이 생각하여 의논한 후 대체를 마련하기에 앞서 레위 남자의 일방적인 설명만 듣고 진행된 급박하고 극단적인 지도자들의 결정은 ‘한사람의 모습처럼’ 행동하는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형제 지파를 말살하고 멸종 위기에 빠뜨리는 우매한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기브아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총회 지도자들의 대응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 선포였는가? 기브아에서의 성폭력을 정죄하는 이유가 레위인의 영예를 더럽힌 사건이기 때문이었을까?(미주 29) 아니면 윤간으로 죽음에까지 이른 한 여인의 끔찍한 운명을 애도하고 위로하기 위함이었는가?

2) 성서편집자의 반응

사사기 19-21장은 사사기의 부록(후기)의 두 번째 부분으로 간주된다.(미주 30) 편집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을 때” (17:6; 18:6; 19:1; 21:25)라는 표현을 4번이나 언급하면서 이 모든 폭력사건이 왕의 부재 때문에 ‘무정부 상태와 폭력의 면허장’(미주 31)이 된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일로 평가한다. 편집자는 이스라엘의 질서와 의를 세울 왕정을 추진하기 위해서 이 참사를 이용한다. 이 이야기의 성폭력 사례는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비판하기엔 전혀 손색이 없으며 왕정의 필요성을 피력하기에 적절한 일화이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배경이 기브아, 야베스-길르앗 등으로 나타나는 것은 최초의 왕인 사울이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출신이고, 자신의 수도를 기브아에 세우고, 암몬족으로부터 야베스-길르앗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점을 고려할 때 사울의 입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있었거나 그러한 효과를 주기위한 것으로 보인다.(미주 32)

신명기 사가의 역사편집의 특징 중 하나는 역사의 전환점을 기술하는데 여성들의 이야기를 적극 활용하는 점인데,(미주 33) 사사기 19-21장의 참혹한 성폭력 이야기 역시 이스라엘이 부족동맹사회에서 왕정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 시점에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경적 배열에서 사사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사건은 한편에서는 사사기 3-4장의 여성 사사 드보라와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적장을 살해한 용맹스런 야엘의 이야기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왕정을 탄생시킬 예언자를 낳은 한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70인역의 경우는 “사사들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대에”(룻 1:1) 일어났던 룻의 이야기를 바로 뒤에 배치하고 있다. 트리블은 사사기 19-21장의 이야기가 룻과 한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정경적 순서에 대하여 “비록 룻이나 한나와 같은 존재가 그들 자매들의 고통들을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그들을 달래주며, 그들을 향해 구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미주 34)

이스라엘 역사에서 침묵당한 사건으로 묻힐 수 있었던 기브아와 실로에서의 성폭력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 알려지게 한 편집자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 자체에 대한 도덕적 평가나 보응의 신학에 근거한 어떠한 신학적 해석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 단순히 고대 이스라엘 여성들의 참혹한 역사를 사사기의 마지막에 등장시켜 이후 이스라엘에 왕정이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 동기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사건을 피해여성의 시각에서 조명하기보다는 왕정의 출현 동기와 함께 초대왕조에 대한 비판의 사료로 삼으려는 중심신학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영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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