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종교가 있다. 성서는 야훼종교와 우상종교 사이에서 선택할 것을 독자에게 요구한다. 창세기 4장은 이 두 가지 다른 삶의 양태를 가인과 아벨로써 제시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사람이 선악과를 먹더니 타락하였다. 그에게 이기심이 발호하였는데 무엇이든지 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났다. 이에 그를 둘러싼 모든 피조물이 맺는 관계는 소유욕을 중심으로 왜곡되기 시작하였다.
에덴동산에서는 모든 관계가 사랑으로 맺어져 있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자기중심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게 되니 모든 관계가 어긋나게 되었다. 죄인은 자기에게 유익하고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들만 좋아하게 되었다. 이 죄인으로부터 카인과 아벨이 갈라지게 되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란 용어가 창세기 2:9에 나오는데 여기에 ‘알다’란 동사 <야다 יָדַע>가 쓰였다(창2:9, 다아트 דָּעַת). 창세기 4:1에도 동사 <야다 יָדַע>가 직접 사용되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창4:1). “동침하매”란 번역은 그 원어가 <야다יָדַע>이다.
아담이 아내 하와를 알게 되었다. 남편이 아내를 ‘알았다’는 표현은 성행위를 에둘러 표현한 완곡어법(euphemism)이다. 창세기 4:1은 동사 <야다 יָדַע>를 통해 선악과를 먹고 나타나는 현상을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 선악과가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끼친 영향이 암시되어 있다. 에덴동산에서 살던 때 맺었던 부부관계는 에덴동산 바깥에서 왜곡되고 있었다.
창세기 4:1은 후반절에서 주어가 하와로 바뀐다. 하와가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하여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의 이름을 “카인 קין”이라고 붙여준 사람은 어머니 하와였다. “카인 קין”이란 이름은 동사 <카나 קָנָה>에서 파생한 것이다. 동사 <카나קָנָה >는 “소유하다”란 뜻이다.
하와는 <카니티 이쉬 엩-야훼>라고 말했는데 ‘내가 야훼로 인하여 한 남자를 소유하게 되었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여기서 ‘남자’를 가리키는 <이쉬 אִישׁ>란 명사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와가 아들을 낳았으니 당연히 “카인”을 가리킨다. 한편 <이쉬 אִישׁ>가 남편 아담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틀린 것은 아니다. 아기를 소유하게 된 한편 이제 남편도 온전히 자신의 소유물이 되었다.
선악과를 먹은 결과, 사람은 자기중심주의(ego-centrism)와 이기주의(egoism)에 빠지고 말았다. 이 점을 창세기 4:1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식 전환의 결과는 끔찍하였다. 자식도 내 소유물이고 남편도 내 소유물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도 자신의 소유물이 되어야 했다.
하나님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소유물로 삼는다. 에덴동산에서 발현했던 인간의 보편성과 공공성은 선악과를 먹은 후 점점 퇴행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사화(privatization)의 좁은 가치로 둔갑하고 말았다. 성서는 이러한 모습을 ‘죄’라고 일러주고 있다.
모든 죄를 이기고 승리하신 분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신 공공성의 모범이시며 보편성의 화신이시다. 그래서 본회퍼는 예수를 가리켜 “타자를 위한 절대존재”라고 고백하였고 또 “유일한 참된 현실은 오로지 그리스도밖에 없다”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야 비로소 사사화의 죄에서 벗어나 보편적 공공성으로 나아가는 구원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보편성과 공공성의 대립개념은 창세기 4:2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창4:2개정). “양치는 자”와 “농사하는 자”의 삶의 양식이 대조법으로 주어져 있다. 창세기 4:2은 <와토세프 וַתֹּסֶף>라는 동사구로 시작하는데 “더 하여 ~하였다”란 뜻이다. 이것은 앞의 1절에 나온 가인의 출생에 이어 동생 아벨을 더하여 주셨음을 표현한다.
이 문장의 주어는 여성삼인칭으로 <하와>를 가리킨다. 개역은 ‘그가’라고 번역하여 아담으로 오해하기 쉽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은 “하와가”, 카톨릭역은 “그 여자는”이라고 명기하여 오해의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어머니 하와가 자신의 두 아들의 이름을 작명하였다는 점이 이채롭다. “가인”은 하와의 소유욕을 표현하고 “아벨”은 그녀의 허무한 마음을 드러낸다. “아벨”의 히브리어 발음은 <하벨>인데 헬라어 번역에서 <아벨>로 음가가 바뀌었다.
<하벨>이란 단어는 ‘헛되다’란 뜻으로 전도서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여 총 28회나 사용된다. “내가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 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하벨>”(전2:1개정). 아기를 낳고서 인생의 허무를 탄하여 <아벨>이라고 이름하였다. 선악과를 먹고 죽음에 종속된 인생은 허무주의(nihilism)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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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lliam-Adolphe Bouguereau(1825-1905), “The First Mourning”, 1888, 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Wikipedia |
허무혼의 아들 아벨은 양치는 일을 하였다. 히브리어로 <로에 촌 רֹעֵה צֹאן>이다. 아벨은 ‘양을 먹이는 자’ 곧 목동 내지 목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로에 רֹעֵה>는 ‘먹이다’란 동사 <라아 רָעָה>의 분사형이다. 이 말씀의 신학적 의미는 아벨은 양과 같은 타자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하였다는 뜻이다.
타자를 먹이는 일 <로에 רֹעֵה>는 창세기 1:28에 나오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일이다. 아벨은 에덴동산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창세기 1:28의 명령을 준행하려고 애썼다는 뜻이다. 아벨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사랑함로써 죽음에 종속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려고 애썼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애쓰는 아벨의 삶을 통째로 예물로 받으시고 즐거워하셨다(창4:4).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다. 히브리어로는 <오베드 아다마 עֹבֵד אֲדָמָה>이다. <오베드 עֹבֵד>는 ‘섬기다’란 동사 <아바드 עָבַד>의 분사형이고 목적어 <아다마 אֲדָמָה>는 ‘흙’을 가리킨다. 흙은 창세기 3:23에 규정된 대로 자신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다.
창세기 6:3에는 이 <아다마 אֲדָמָה>를 ‘육’(肉)이란 말로 해석한다. 가인은 육신을 섬기는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롬8:13). 가인은 선악과를 먹고 이기주의에 빠져서 자기중심주의로 살았다. 가인이 농사를 짓되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가인은 인류 최초의 타락한 농부가 된 것이다.
농경의 시작은 BC 10,000년 경에 이루어졌다. 쾨베클리 테페 유적지가 이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유적지 인근에서 인류 최초로 밀과 보리가 재배되었다. 이를 ‘농업혁명’이라고 부른다. 농업혁명으로 생산력이 증대되어 풍요한 삶이 전개되었다고 해석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님이 판명되었다(유발 하라리, 참조).
불행하게도 농업혁명으로 인간에게 탐욕이 증대하여 힘센 자가 더 많은 농산물을 차지하게 되었고 약한 자가 적게 가지게 되는 인간불평등이 시작되었다. 가인은 농업혁명의 혜택을 누렸지만 아벨은 사회적 권력에서 소외된 약자가 되었다. 가인은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대로 사사화(privatization)의 삶을 살아서 욕망의 충족을 위한 투쟁의 길을 갔다.
괴베클리 테페 인근에 차탈휴이크라는 또 다른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이들 유적지의 탐사 결과 농업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이 신전의 종사자 곧 종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농업혁명을 주도한 신전 종사자들은 “신탁”을 매개로 사람들을 신전으로 유도했다. 이것이 농업혁명 시기에 종교가 했던 역할이었다.
이들 원시종교의 사제들은 본디 마을공동체를 이끌었던 주술사(샤만)들이었지만 농업혁명 이후 타락하여 우상숭배 신전의 제사장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이 성경이 금하는 우상숭배 종교의 배후에 놓여있는 종교사이다. 창세기 4:2은 이러한 종교사의 발전상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가인의 삶을 ‘흙을 섬기는’ 삶으로 규정하면서 죄의 발원과 전개를 논하고 있다.
한 개별자가 모든 피조물을 섬기려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면 된다. ‘야훼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는 내가 모든 타자를 이롭게 하겠다는 결단의 표현이다. 이 지점에서 성서의 말씀은 독자에게 결단을 재촉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하며 살 것인가? 예물을 바쳐서 하나님 야훼를 기쁘게 해드릴 것인가 아니면 복을 받겠다는 전제조건으로 예물을 바치려는가?
예물을 바치는 자의 삶에 따라 예배자와 하나님의 관계가 규정된다. 예물을 바쳐서 복을 받으려는 기복주의 신앙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우상숭배이다. 농업혁명으로부터 우상숭배가 더욱 조직화되었고 농업생산의 증대는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하다가 마침내 도시라는 성곽으로 둘러싼 기괴한 형태의 생활양식을 출현시켰다(창4:17).
가인이 거둔 ‘흙의 열매’는 곧 ‘육의 열매’였다. 이기적으로 사는 자가 거둔 소득이 가인의 예물이다. 이기적인 존재는 자신의 이기를 위해서 예배하고 예물을 바친다. 신이 복을 주는 신이라야 유효했다. 복주는 신을 예배하겠다는 이기적인 욕심의 종교는 우상숭배이다. 가인의 제물은 우상종교의 기원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상숭배는 “산당”에서 진행되었다. 창세기가 이야기하는 가인과 아벨의 대조법에는 “산당”에 관한 신명기사가(DtrH)의 역사신학이 깔려 있다. 우상을 모신 타락한 농부들은 가나안의 곳곳에 “산당”을 모셨다. “산당”은 히브리어로 <바마> 또는 <바모트>라고 한다.
신명기사가는 산당을 철폐하지 못한 과오를 왕국멸망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는 기복신앙을 의미하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를 타락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기독교 안에도 두 가지 종교가 있으니 잘 분별하여야 할 것이다.
이영재 rheeyjae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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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징계 사건에 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