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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이스라엘의 심장을 쏘다장일선, 『구약성서와 설교』 10
에큐메니안 | 승인 2018.10.25 20:35

지난 시간에는 고 장일선 한신대 구약학 교수님의 예언서에 대한 신학적·설교학적 이해를 전해드렸습니다. 장일선 교수님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개혁자도 신비주의도 아닌 “과거 전승의 충실한 보유자”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즉 예언자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되새기며 그들이 저한 역사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여 그 메시지를 선포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일선 교수님은 예언자들이 바랐던 것은 소수의 사람이라도 야훼의 말을 듣고 그들의 행동을 바꾸어 야훼가 시작하시는 새로운 공동체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시대에 예언자가 되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탄생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의 예언서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남왕국 유다 출신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이다. 그는 이사야, 미가 호세아와 더불어 주전 8세기의 예언자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남왕국의 웃시야, 북왕국의 여로보암 2세의 시대로(1:1), 이때에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솔로몬 이래 처음 맛보는 태평 성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평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팔레스틴 주변의 강대국인 앗시리아와 이집트가 자체내의 문제로 국력이 약해진 데 있다. 이 두 나라가 팔레스틴의 문제까지 관여할 수 없게 되자 유다와 이스라엘은 오래간만에 정치적인 안정을 누리게 되었고, 여기에 발맞추어 국제 무역 통로의 개방으로 경제도 부흥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전에 없던 신흥 상업 계급이 일어나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고, 사법이 권력과 금력에 오염되고 아울러 종교와 도덕까지 타락하게 되었다. 바로 이 무렵 드고아 들판에서 양을 치던 젊은 목자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분연히 일어나 권력자의 횡포와 가진 자의 착취 및 성직자의 타락상을 일일이 신랄하게 고발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시골 동네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누가 이웃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한 사람 두 사람씩 꾸역꾸역 몰려들어 신나게 듣는 것과 같이, 아모스는 벧엘 도성의 왕의 성소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웃 나라의 잘못을 꼬집는 험담을 늘어 놓기 시작한 것이다, 자고로 이웃 나라들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가운데 두고 시계 방향으로 주변의 나라들을 돌면서 하나씩 하나씩 그들의 흉부를 찌른다.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 중 그들 이웃이 저지른 나쁜 것을 한 가지씩 들추어 내니까 청중들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라고 듣는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다메섹의 실권자인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며 벤하닷의 궁궐을 사르며 또 다메섹의 빗장을 꺾으시리라는(1:4) 말에 청중들은 잘 되었다고 환성을 울리며 신나는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으로 이스라엘 편에 서서 그들을 괴롭히는 이웃 나라들을 하나씩 물리쳐 주시는 “신적인 용사”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 구스타프 도레,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 ⓒWikipedia

아모스는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모조리 공격하고 마지막으로 청중들이 “그러면 그렇지!” 하고 방심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심장부를 찌른 것이다. “야훼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2:6) 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아모스의 이 같은 수법은 나단의 경우와 비슷하다. 다윗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고 난 다음에 나단은 다윗을 찾아 가서, 어느 부자가 자기 집에 찾아 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이웃집의 가난한 이의 양 한 마리를 잡아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다윗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화를 내며 당장 그 무법자를 끌어 오라고 호통을 친다. 왜냐하면 적어도 자기가 다스리는 통치 구역 안에서는 정의가 지배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고 지적하여 그의 무릎을 꿇게 한 것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던 순간에 뜻밖의 청천벽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네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기 백성을 치신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라면서 한동안 멍청히 서서 그들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아모스는 외과 의사가 환자의 아픈 부위를 가른 다음 곪아 터진 부분을 잘라내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 사회의 썩어 문드러진 부분을 모조리 파헤쳤다. 아모스 예언서의 대표적인 구절이라고 볼 수 있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5:24)라는 말씀이 잘 보여 주듯이, 아모스는 정의 사회의 구현을 외쳤던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아모스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은, 야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직접 심판하시며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을 부인하신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자기 스스로 야훼의 선민이라고 생각한 것은 출애굽 사건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야훼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흐ㅔ에게 보응하리라”(3:1-2). 위의 구절에서 암시하듯이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그 특권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더 벌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유일회적 사건이며 인류 역사상 자기들에게만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해 왔으며, 그러기에 야훼는 자기네들의 하나님이라는 생각도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출애굽 사건을 상대화시키며 일종의 객관적인 민족 이동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으냐”(9:7). 주전 13세기 이스라엘이 팔레스틴에 정착할 무렵 블레셋과 아람도 거의 같은 시기에 이 지역에 정착한 것이다. 주변 강대국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팔레스틴에 여러 국가들이 제각기 왕정 체제의 국가를 시작한 것이다. 아모스는 이들 국가 건립을 위한 민족 이동의 배후에는 야훼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이 앞서 1장과 2장의 열방에 대한 신탁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른 나라의 역사도 주관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임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이 아니하냐”(9:7). 아모스 시대의 구스 족속은 현재의 이디오피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얼굴이 검은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팔레스틴에 용병으로 또는 노예로 소개된 듯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얼굴 색깔 때문에 구스 족속을 경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하나님 앞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구스 족속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네는 선민이고 다른 이들은 이방인이라고 경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편성과 그분이 역사의 주관자인 만군의 주라고 선언한 아모스의 하나님 개념은 참으로 특이한 것이다. 아모스는 전통적인 선민 사상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야훼의 날”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종전까지 야훼의 날에는 야훼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워 주는 승리의 날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광야 시대에 그랬고 또 부족 동맹 시대에도 그러했다. 아모스의 첫 부분 열방 신탁에서도 백성들은 야훼의 날에 야훼가 인근의 적들을 다 무찌르고 이스라엘에게 대승리를 주는 기쁨의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와는 정반대로 “야훼의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5:18)고 선포한 것이다.

초창기 이스라엘 신학은 무척 배타적이며 또 국수적이었다. “나 이외에는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지니라”는 계명은 야훼 한 분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너희는 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특별한 계약 때문에 이스라엘을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구별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시내산 계약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고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왕정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계속하여 주변의 정치적 억압을 받아 오는 동안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은 백성들에게 이 같은 계약 조건에 충실할 것을 선포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요에 의하여 피차 약속을 맺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 되었고, 하나님은 팔레스틴에서 이스라엘만을 다스리는 신이 되었다.

그러나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 이 같은 고정 관념은 깨지고,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신도 되기 때문에 고레스를 불러내어(사 45:1)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보았고, 요나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까지도 돌보신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욘 4:11). 그렇지만 왕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모스에게서 이러한 범우주적인 신관이 나온 것은 전통적인 선민의식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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