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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세상을 바꾸고 극복하는 방법라가츠의 종교적 사회주의란 7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 승인 2018.12.06 16:09

예수의 대리적 고난과 희생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종교적-사회적 투쟁의 원리와 방법이다. 라가츠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화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통한 세상의 극복을 생각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고난 당하는 형제들과 연대성을 통해서 실현된다.

희생, 세상을 극복하는 방법

그러나 라가츠는 이러한 태도에 깊은 경외를 느끼지만, 이 연대성이 하나님 나라를 통해서 세상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대성은 잠정적인 방법이다.(1) 세상은 희생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으며 희생의 방법이 세상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역사의 가장 강한 승리의 힘은 희생이다. 희생이 있는 곳에 이미 승리가 있다. … 예레미아의 희생은-오직 이것만을 말한다면-예언의 승리의 힘이다. 후스의 희생은 오늘날까지 강력한 힘을 미친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세상을 극복했다.”(2)

하나님의 전술은 그와 함께 “십자가의 전술”이(3) 되어진다.

희생은 윤리적인 “책임적 행동의 구조”가(4)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속한다. 희생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희생은 그리스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선포하고, 실행하고, 그것을 위해서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서 일어났다.

라가츠는 이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이사야 52장 13-53절의 하나님의 종의 대리적 고난에 관한 말씀의 해석을 통해서 간략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그의 영원한 진리는 모든 하나님의 세계질서들의 가장 심오한 진리이다: 세상은 희생으로, 참으로 우선 다른 사람의 과실을 위해서 대리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의로운 자의 무죄한 희생으로 산다. 그것이 역사의 근본 법칙이다...그것은 모든 창조, 또한 세계 창조의 마지막 비밀이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룬 이스라엘의 소명을 위한 가장 심오하고 탁월한 표현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강한 힘, 악의 가장 확실한 극복,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투쟁하고, 고난 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최상의 위로이다.”(5)

누군가를 위한 희생

희생은 대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희생은 대리이다. 그것이 그의 의미이다. 예수는 그렇게 그의 희생을 이해했다.”(6)

희생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대리적 고난”(7) 및 “구원하는 질서로서 의로운 자의 무죄한 고난”(8) 그리고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정의의 모든 승인을 위한 총체적 상징”(9)이다. 희생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상징적 희생이 아니라 실제적 희생이었다. 그의 죽음은 “희생의 설교”(10)이다. 십자가는 대리적 고난일 뿐만이 아니라 역사의 핵심이며 역사의 전환점이다.

“십자가에서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세상 나라는 하나님 나라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하나님의 종의 대리적 고난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11)

희생은 모든 역사의 가장 심오한 힘과 질서이며,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 고난은 악의 거대한 힘을 약화시키는 마술이다. 희생이 세상을 통치한다.

대리적 희생은 라가츠의 예언자적 사상에서 연대성 곧 하나님의 완전성 안에서 인간의 형제됨을 나타내는 최고의 표현이다.

“다른 사람의 짐, 곧 그의 연약함, 그의 운명, 그의 고난, 그의 과실을 짊어짐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가장 내적인 결합이다.”(12)

이러한 희생의 행위는 하나님 인식과 봉사의 지평의 새로운 확장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역사의 인식 및 하나님의 직접성과 살아 있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에서 나온다.

“희생을 한다는 것은 생명과 생명에 속한 중요한 재물을 포기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 그것은 우선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한 내외적 투쟁에서 섭리하도록 하는 것, 하나님 자신이 영광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그를 신뢰한다는 것을, 따라서 물론 명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과 기구, 기술과 방법들을, 그러나 특별히 수, 돈, 외교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폭력 같은 허무한 세상의 수단을 의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13)

희생은 영이 섭리하도록 만드는 것, 겸손, 자아의 극복과 사랑을 위한 진리의 봉사이다. 희생은 우리가 선과 정의를, 하나님과 인간의 일을 위한 투쟁에서 포기해야만 하는 물질의 결핍과 빈약함 속에서 우리의 신뢰와 철저한 충성 즉 우리를 신실하게 만들고 우리를 희생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신뢰 속에서 헌신이다.

혁명은 폭력이 아니라 희생으로부터

라가츠는 희생의 방법을 사회주의적 혁명에 적용한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십자가를 부인할 수 없다.”(14)

우리는 폭력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 폭력의 사용은 계속해서 대응 폭력을 생산한다. 사회주의와 폭력은 불과 물처럼 서로 모순된다. 모든 폭력에 대한 예찬은 범죄와 사회주의로부터 일탈이다.

▲ 라가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희생으로 해석하고 이를 통해 사회주의적 혁명의 완성을 바라보고 있다. ⓒGetty Image

그리고 모든 폭력의 사용은 사회주의의 패배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를 승리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폭력의 방법이 아니라 희생의 방법이다.

“사회주의는 최고의 승리의 힘이 십자가가 가장 강력하게 구체화한 저 진리, 곧 헌신하는 사랑에, 불결한 자를 위한 순결한 자의 희생에, 불의한 자를 위한 의로운 자의 고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의 위대함은 그가 마침내 이러한 힘을 필요로 한다는데 있다.”(15)

우리는 계급투쟁을 통해서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계급투쟁은 계속해서 증오의 정욕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고 현실적인 하나님은 전능자일 뿐만이 아니라 무능한 자로도 섭리하신다. 악을 극복하는 선의 승리의 무기는 폭력이 아니라 무죄한 자의 고난, 희생과 십자가이다. 희생만이 화해시키며, 속죄하며, 평화를 창조한다.

“검이 아니라 십자가가, 타인의 피흘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피흘림이 승리를 창조한다. 민중의 진정한 승리의 길은 그들의 희생을 통해서 관철되어진다.”(16)

라가츠는 이러한 희생의 방법을 통해서 폭력 없는 사회주의적 변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바로 이 희생의 길을 걸어갔다.(17)

희생의 힘이 하나님의 종교적-사회적 혁명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살아 있게 만들었고, 악마들을 정복했던 희생의 힘이다. 그것은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종교가 하나님 나라로 그리고 기독교가 그리스도교로 될 때까지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나라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때까지.”(18)

 

미주

(미주 1) L. Ragaz, Weltreich, Religion und Gottesherrschaft, Bd. 2, Erlenbach-Zürich; Müchen; Leipzig 1922, S. 179-182. 개신교가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분리를 생각한다면, 카톨릭 교회는 세상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획득하려고 노력한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상반된 방법으로 완전히 세상의 손에 넘어갔다(S. 179). 이 두 방법은 라가츠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의 포기이며,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 나라로, 그리스도에서 시이저, 심지어 적그리스도에게로 타락이다.
(미주 2) L. Ragaz, Das Reich und die Nachfolge. Andachten, Bern 1938, S. 405. Vgl. Paul Tillich, Systematische Theologie Bd. 3, S. 444-445: “초월적 하나님 나라는 역사 내재적 하나님 나라의 투쟁에 참여 없이는 얻을 수 없다...이러한 희생이 성숙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는 승리를 쟁취한다”.  F. Engels, Zur Geschichte des Christentums 1894, MEW Bd. 22, Berlin 1963, S. 459: 초기 기독교의 혁명적 요소들은 엥겔스에 의하면 희생, 천년 왕국,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러나 희생이 초기 기독교의 “본질적 내용”이다.
(미주 3) L. Ragaz, Sozialismus und Gewalt. Ein Wort an die Arbeiterschaft und ihre Führer, 2. Aufl. Olten 1919. S.  30.
(미주 4) D. Bonhoeffer, Ethik, S. 275.
(미주 5) L. Ragaz, Das Reich Gottes in der Bibel, Zürich 1948, S. 13.
(미주 6) L. Ragaz, Die Bibel. Eine Deutung, Bd. 5, Zürich 1947-1950, S. 248.
(미주 7) Das Reich Gottes in der Bibel, S. 12.
(미주 8) Bibel 4, S. 87.
(미주 9) Bibel 2, S. 134. 이러한 희생의 원리는 라가츠에 의하면 “거룩한 공산주의”와 십일조에 반영되어 있다. 성만찬은 애찬식 또는 형제식이며, 희생의 만찬이다. 그것은 예수가 그의 희생을 통해서 세운 새로운 계약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상징”이다 (vgl. Bibel 5, S. 247 ff).
(미주 10) Weltreich Bd. 1, S. 103.
(미주 11) L. Ragaz, Das Glaubensbekenntnis. Zur Bekenntnisfrage. Mit einer Erklärung des apostolischen Glaubensbekenntnisses, 2. Aufl. Zürich (o. J.), S. 20 f. “희생은 구원이다: 죄 없는 피가 죄를 제거한다”(S. 21). 피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가장 강한 상징”이다 (S. 22).
(미주 12) A.a.O., S. 21.
(미주 13) Reich und Nachfolge, S. 405.
(미주 14) Weltreich Bd. 2, S. 42.
(미주 15) Sozialismus und Gewalt, S. 30. 사회적 혁명의 힘은 포기, 희생, 영감 그리고 봉사의 도덕적 힘이다.
(미주 16) Bibel 3, S. 81.
(미주 17) 예거는 라가츠의 교수직의 포기를 희생의 길로 해석한다 (Jäger, Von Christus zu Marx, S. 54).
(미주 18) L. Ragaz, Die Geschichte der Sache Christi. Ein Versuch, Bern 1945, S. 141.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jen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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