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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말3:1-7 계3:14-22 눅3:1-17)대림절 첫째주일(2018.12.2.)
최병학 | 승인 2018.12.08 20:14

최국희 감독의 영화 <국가부도의 날>(2018)은 1997년 IMF 위기 전 후,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국가부도까지 남은 일주일의 시간 동안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김혜수 분),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유아인 분),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허준호 분), 마지막으로 위기를 방관하며 자기 몫을 챙기는 관료(조우진 분)와 재벌 2세의 모습을 세밀하게 다룹니다. 이 영화를 보고 종말(국가 부도의 날)은 어떻게 오는지,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육화됩니다.

1.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종말의 때

첫째, 종말은 금융자본(돈) 때문에 다가옵니다. 맘몬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킵니다.

둘째, 종말의 때에 정부는(자유한국당의 전신이 집권한 때죠?) 이를 감추고, 사건이 터지자 재벌만 껴안고, 중소기업은 포기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위기를 기회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경제 관료들 때문에 종말은 막을 수 없습니다.

셋째, 종말을 앞두고 ‘적그리스도’는 미국의 금융 자본가들과 한국의 재벌,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경제 관료들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물론 언론도 한 몫 합니다. 미국의 금융 자본가들은 투자처를 찾아 세계를 떠도는 늑대들입니다.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을 뜯어먹고 자신의 배만 불립니다. 그리고 IMF는 그들의 충직한 ‘개’입니다. (물론, 뱅상 카셀은 그의 연기력으로 그 ‘개’의 모습을 세련되게 연기합니다.)

넷째, 종말은 여신(與信), 줄 여, 믿을 신, 곧 금융 기관에서 부실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일 때문에 망합니다. 빌려주고 받지 못하죠. 부실 어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청업체로부터 시작하여 중소기업, 대기업, 은행 그리고 국가부도 상황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잘못된  믿음(信)이 연쇄부도를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종말의 때에 진정한 ‘믿음’이 우리 서로를 살릴 것입니다.

다섯째, 종말의 때에 남성들의 권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음녀 바벨론’은 남성들의 탐욕, 권력욕, 동문의식(‘하버드 MBA’ 동문이라는)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리고 종말의 때에 의미가 있는 것은 여신(女神)입니다. 바로 여성의 ‘합리성’과 여성들의 연대입니다. 이러한 여성들의 연대로 위기의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김혜수와 한지민의 크로스는 그 어떤 연대보다도 강하고 아름답습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

그럼, 이러한 종말의 때에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가요? 파산하거나, 감옥에 가거나, 쫓기거나,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거나, 집 팔고 빚 갚을 수 없어 안방에서 목 메달아 자살합니다. IMF 이후 우리 경제의 체질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대량해고가 행해지고, 비정규직이 양산됩니다.

또한 국내 기업들은 도산하고 외국 자본이 손쉽게 그것을 인수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미국 정부 재무부의 지시였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는 ‘재벌-미국-언론-권력의 결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너희들이 막 써서 그렇다. 연필 깎아 쓰고, 수돗물 아껴 쓰고, 근검절약해라!”

IMF 이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130만 명 넘게 실업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자살률도 전년 대비 42% 증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을 벌여 경제회복을 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모두 재벌 대기업의 부채 갚는데 쓰였습니다. 그런데 재벌들은 국민들의 그 피와 땀을 자신들의 사내 보유금으로 쌓아놓고 자기 배만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20여년이 지났습니다. 변했을까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위험이 놓여져 있습니다. (영화는 ‘가계부채폭탄’과 ‘수도권 미분양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값 상승’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와 족벌 사립대학과 사립유치원장들은 살찌고, 노동자와 시간강사와 프랜차이즈 점주와 알바, 그리고 학부모 등 서민 가정은 말라죽어 가고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 ‘최저 임금 인상’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보면 20년 전 교훈으로도 부족한 것입니다.

더구나 불행한 것은 20년 전보다 사람이 변한 것입니다. 영화 속 작은 공장의 사장이었던 허준호의 변화가 그렇습니다. 20년 전 그 좋은 사람이, 이제 내국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바뀐 일꾼들을 닦달합니다. “핫산 똑바로 안해! 빨리빨리!” 그리고 금융회사에 취업면접 보러가는 아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해주는 사람 믿지 마라. 그 누구도 믿지 말고, 너 자신만 믿어.”

오늘 세 본문 말씀은 <국가부도의 날>과 같은 심판의 메시지와 그 심판의 때에 어떻게,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심판의 도래

느헤미야 시대의 선지자 말라기는 타락한 제사장들에 물들어 사악한 행위를 일삼으며,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그릇된 특권의식에 빠져있던 백성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말라기는 문답식 방법으로 백성들의 위선과 불신, 이방인과의 결혼, 이혼, 거짓예배, 오만함 등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 사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도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만큼 죄악이 만연해 있어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아무런 감동도 감명도 받지 못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따라서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가 있은 후 400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 후 세례 요한의 출현과 더불어 비로소 하나님은 한 선지자의 음성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대화를 다시 시작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말3:1)

그러나 주께서 성전에 임하시고, 언약의 사자가 임하시면 심판이 임한다고 말라기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말3:2-3)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은 심판의 은유입니다. 그 직접적인 표현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말3:5)

그리고 이러한 언약의 사자가 400년 후에 나타납니다. 누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출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 회개의 세례와 알곡, 쭉정이

세례 요한은 요단 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합니다. 그에게 많은 무리들과 세리들, 군인들이 나옵니다. 요한은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눅3:8-9)

그러나 이러한 세례 요한의 선포와 회개의 세례는 물로 베푸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는데,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씀을 선포합니다. 성령과 불세례는 바로 심판의 상징입니다. 누가는 이 말씀을 선포했던 시대적 배경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1-2)

디베료 황제(Tiberius, B.C. 14~A.D. 37)는 로마의 제 2대 황제로 아우구스투스의 양자입니다. 아버지가 이룩한 제국의 제도와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말년에는 공포정치를 실행하기도 합니다. 한 속주의 반란을 잔인하게 집압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유대인 4명이 한 여인의 재물을 훔치려고 모의했다는 구실로 유대인 전체를 로마 밖으로 추방하기도 합니다. 오늘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나 유럽의 난민 수용 반대와 비슷하죠? 철저히 로마 제국만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세례요한의 선포>

헤롯왕(Herod Antipas, B.C. 4~A.D. 39)은 또 어떤가요? 40년 동안 갈릴리를 대리 통치합니다. 예수님 재판 때 그 판결을 빌라도에게 넘긴 아주 간교하고, 쾌락만을 추구했던 왕입니다.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불법 재혼하고 이를 책망한 세례요한을 잡아 죽이기도 합니다(마14:3-10). 그런데 이러한 헤롯왕의 재임 기간이 디베료 황제와 겹칩니다.

정치의 위기 시대에 종교지도자인 제사장은 어떠했을까요? 누가는 당시 대제사장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제사장은 원래 한 명인데, 두 명을 소개합니다. 교단장이 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처럼 교단을 분열시키고, 연합기관을 계속해서 만들어 장이 되어 싶어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탐욕을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같습니다. ‘미국-재벌-권력-언론’의 결탁처럼, ‘로마 황제-분봉왕 헤롯-종교지도자’의 결탁을 통해 백성들은 고통당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때 요한이 나타나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줄 아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6-17).”

메시야께서 오시면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4.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가복음에서 무리들과 세리들과 군인들은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눅3:10, 12, 14)” 요한은 무리들에게는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10).”라고 선포합니다. 또한 세리들에게는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13).”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는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14).”고 선포합니다.

말라기서 역시 백성들은 여호와께 돌아가는 방법을 묻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말3:7)

오늘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말라기서와 누가복음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사도 요한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통해 오늘 우리들에게 귀한 교훈을 깨우쳐 줍니다. 사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영부영한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4-16)

영화의 마지막에 국가부도를 끝까지 막으려고 했던 한시현(김혜수 분)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위기에 당하지 않기 위해 의심하고 사고하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두 번 지고 싶지 않다.”

지금 국가부도를 내고, 다시 ‘이명박근혜’로 나라를 망친 세력들이 회개하지 않고, 기지개를 펴려고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 권력 투쟁으로 보이는 것이 없나 봅니다. 이제 국가부도 사태는 마지막 종말로 치닫습니다. 다른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 세상은 20년 전 고통의 몇 100배가 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로 추정되는 곳>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눅3:19)”. 그리고 계속해서 그 방법을 일러줍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20).”

5. 대림절, 아기 예수

대림절입니다. 평화의 왕 아기 예수께서 오시는 계절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한 모습이 보입니까? 회개하여야 합니다. 다시금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쭉정이가 아니라, 알곡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초대 받고 새로운 시간을, 역사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께서 오시는 세상을 잘 보여줍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3:4-6)

그 누구도 쭉정이로 심판받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야 합니다. 대림절 첫째 주일 작은 촛불을 밝히며 마음의 문을 여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대림절 첫째 주일 촛불>

최병학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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