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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저항이다Santiago Camino 1
조헌정 목사(향린교회 은퇴목사, 예수살기 상임대표) | 승인 2018.12.29 18:57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대한 책이 안병무 교수의 『역사와 증언』이다. 70년 초반에는 작은 문고판으로 나왔고, 당시 인기가 많아 수십 번의 복쇄를 해야 했고, 이후 몇 번의 저자 편집을 통해 책의 부피도 커지고 내용 또한 민중해방신학적 관점을 통해 훨씬 풍부해졌다. 책 제목이 『역사와 해석』으로 바뀌었다. 난 서구신학자 중에서도 성서 전체를 이렇게 깊이 있게 동시에 괄목요연하게 해석해 놓은 책을 보지 못했다. 수십 번을 읽어도 항상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14년 향린교회 목회를 하는 동안 새교우들과의 성서공부 주교재로 써왔다.

이 책에 대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얘기를 시작하는 첫 장의 제목이다. <도상의 나그네>. 나이 19세에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의 문을 두들긴 나의 뇌리에 콘크리트 바닥의 철심처럼 꽉 박혀버린 글귀였다. 이후 나의 삶을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신앙의 푯대였다. 사람들은 내가 진보교회의 대명사격인 향린교회 목사라고 하면 쉽게 "운동권 목사"로 분류한다. 물론 그렇다! 지금도 나는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땅의 정의·평화·생명의 가치가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 건설 운동가이다. 그런데 동시에 난 내면적인 성격으로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특히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그간 안식년을 맞아 프랑스의 테제, 스코틀랜드의 아이오나, 영국, 미국, 독일의 부루더호프 공동체를 비롯한 미국 내의 여러 공동체를 찾아다녔고,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를 5번 완주했으며, 최근에는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걸었다. 2년 전에는 33일동안 생장드폴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거쳐 묵시나까지 900킬로의 프랑스길을 걸었고, 작년에는 한달동안 리스본에서 산티아고까지 750킬로를 걸었다. 지금은 37일 여정으로 이룬에서 산티아고까지 북쪽 해안가를 따라 걷는 중에 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혼잡을 피해 겨울에 걸었으나 북쪽 해안길은 겨울에 걷는 것은 날씨로 인해 위험이 많아 가을에 걷고 있다. 열흘이 지나가는데, 다행히 우리나라 가을 날씨처럼 청명하다.

까미노의 유래

까미노(camino)는 스페인어로 '길'이란 뜻이다. 산티아고(Santiago) 또한 성 야고보(Saint James)의 갈리시아 지방 발음이 변형된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였던 야고보가 포르투칼 길을 따라 전도하다가 성모 마리아의 환상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가 거기서 죽었는데, 야고보의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당시 세계의 끝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묻었고, 그 무덤 위에 지금의 성당이 세워져 있다. 콤포스텔라(Compostella)또한 라틴어로 별들의 운동장(Compus + Stella)을 뜻하는데,  하늘의 운하가 바다 끝에서 지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산티아고 순례길, 매년 헤아리기 힘든 사람들이 이 긴 길을 걷는다. 왜 그럴까? ⓒGetty Image

그동안은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가 9세기 경에 처음 알려졌고, 이후 로마와 예루살렘에 이어 기독교인들의 순례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 순례자들이 끊이지는 않았지만, 12세기에 유럽 각 지역 특히 프랑스와 이태리에서 이곳을 찾아 나서는 순례 신앙운동이 열풍처럼 불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전쟁, 페스트병, 종교개혁 분쟁 등으로 말미암아 중지가 되고 말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교황청과 유럽연합에서 역사적 장소로 명명하면서 다시금 순례운동이 시작되었다. 작년에 정식으로 기록된 순례자 수가 30만명을 넘어섰는데, 1985년까지만 해도 일년에 수백 명에 지나지 않았다.

알베르게

중세시대에는 강도들이 많아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또 그들이 머물도록 성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저들을 치료하는 병원이 만들어졌다. 산등성위에는 그런 역할을 하던 탑이나 성곽들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지금도 그런 전통 속에서 순례자들에게 하루 밤을 제공하는 성당이나 병원이 있다.

흔히 순례자용 숙소를 스페인어로 뻬레그리노스 알베르게라고 부른다. 이를 줄여서 그냥 알베르게라고 부른다. 순례자들의 숙소는 크게 네 종류로 나뉜다. 알베르게, 호스텔, 펜션, 호텔.  알베르게는 보통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지자체나 성당에서 운영하지만, 개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도 있다. 그러나 일단 알베르게라는 이름이 붙으면 5유로에서 10유로 사이를 내고 기부금 형태로 받기도 한다. 때로는 '까미노의 친구들'이라는 신앙단체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기도 한다.

프랑스길을 걸을 때이다. 겨울이라 숙소가 많이 닫혀 있어 날은 어두워졌는데, 다음 마을까지 가려면 두시간을 더 가야 했다. 그런데 개인 집으로 알베르게가 있었다. 어느 독일인 부부가 여름에는 자신들이 여기에서 지내고 겨울에는 이곳을 알베르게로 내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당일 기부금은 모두 먹을 것으로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어 다음 사람들이 먹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까미노에서는 수많은 천사들을 만나곤 한다.

형태는 보통 2층 침대로 한 방에 열 개에서 이십 개 정도의 침대가 있으며 큰 알베르게의 경우에는 백 개의 침대가 있는 곳도 있다. 호스텔은 보통 15-20 유로정도 하는데, 한 방에 6개 혹은 8개의 이층침대가 놓여 있다. 알베르게와 호스텔은 모두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알베르게는 자신의 침낭을 사용해야 하지만, 호스텔은 담요 하나는 준다. 그러나 간혹 빈대나 벼룩이 있기에 호스텔에서도 대부분 자기 침낭을 사용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알베르게에는 마켓에서 음식을 사와 요리를 해 먹도록 부엌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데, 요즘은 동네 상권 활성화를 위해 부엌 사용이 점점 어렵게 되어 있다. 마을 식당에서는 싼 값에 질 좋은 순례자용 식사(the Pilgrim's Menu)를 제공하는데, 보통 10유로에 샐러드, 고기나 생선, 디저트 그리고 물 혹은 포도주 한 컵을 제공한다. 어떤 경우는 포도주 한병을 통채로 주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알베르게는 들어오는 순서대로 침대를 주기에 남녀 혼성이 보통이다. 호스텔인 경우에도 혼성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익숙하지 않지만, 유럽인들은 별로 꺼리지를 않는다. 그런데 여럿이 함께 잠을 자다보면 코를 고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고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하더라도 옷과 배낭에 배어 있는 쾌쾌한 땀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한다. 2년 전에는 여러 날을 함께 다니던 한국인 젊은 친구가 매우 심하게 코를 골아 애를 먹은 적이 있는데, 어제도 코골이가 한명 있어 잠을 설치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호스텔 좁은 방에서 8명이 자는데, 지하라 환기가 잘 안되다 보니 쾌쾌한 냄새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다. 살면서 항상 좋은 일만 겪지 않듯이 이런 불편함 또한 까미노 순례의 일부이기도 하다.

조금 편하게 다니려면 우리나라 모텔을 이용하다는 셈치고 북킹닷컴을 이용하여 4, 50유로 정도의 펜션이나 호텔을 이용하면 조금 편하기는 하다.  이렇게 하면 알베르게는 예약을 받지 않고 침대수가 제한되어 있기에  늦게 가면 숙소 구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생기는데, 그런 염려는 가질 필요는 없게 된다. 그러나 혼자서 하루 20유로 이상의 방값을 지불하는 것은 순례의 의미를 잃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크레덴샬 혹은 순례자 패스포트라는 것이 있어 묵는 장소마다 도장을 받고 걷는 거리가 100킬로가 넘으면 산티아고 순례 본부에서 증명서를 떼어준다. 이 도장은 단지 숙소에서 만이 아니라, 걷는 길에 있는 음료를 파는 바나 슈퍼마켓에서도 받을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길 위에 개인이 임의로 작은 장소를 마련해 놓고 도장을 찍어가도록 편의를 베풀기도 한다. 심지어는 과일같은 것도 준비해 놓고 그 옆에 돈통을 놓아둔 곳도 있다. 백킬로를 걷고 확인증을 받을 경우에는 하루에 최소 두 곳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상 까미노 길은 특별히 정해진 루트는 없다. 여름에 텐트를 갖고 다니는 경우에는 자신이 걷는 길이 곧 순례길이 되기 때문이다. 한 젊은 남녀 한 쌍은 겨울인데도 텐트도 없이 다니며 하루 2유로 이상 쓰는 것을 금지하고 집을 두드리어 잠자리를 얻는 것을 기준으로 걸어다니는 경우도 보았다. 그러나 표지판이 잘 되어 있고 알베르게가 계속 이어지는 길로서는 가장 유명한 길이 프렌치길이고 그 다음이 포루투칼 길과 북부해안가 길이다. 약 80%가 프렌치길을 이용한다. 우리는 보통 가면 완주를 목적으로 가기에 보통 한달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유럽인들은 휴가를 이용하여 한주일 혹은 열흘동안씩 몇 년간에 걸쳐 완주하는 경우도 많다.  또 어떤 경우는 아예 자기 집에서부터 출발하여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 몇 개월씩 걷는 사람도 있다.

쩨나루짜 수도원

난 앞의 두 번의 경우에는 발에 물집이 생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새 신발 때문인지 첫날부터 물집이 생겨 한동안 고생을 하고 있다. 아마 백 명 중 90명이 물집이 생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10킬로그램에 가까운 배낭을 매고 매일 25킬로 이상의 산길을 걷다 보면 절로 생기는게 물집이다. 난 물집이 생긴 것을 억지로 참고 이틀을 연속해서 걸었더니 결국 성이 나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수 없을만큼 악화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머문 장소가 다행하게도 Zenarruza라는 천년된 수도원이 있는 곳이다.

지금 4일째 이곳에 머물고 있고 이 글 또한 이곳에서 쓰고 있다. 까미노길을 걸으면서 수도원을 몇 개 지났지만, 수도원에서 순례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대체로는 아예 공개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는 새벽 5시반부터 저녁 9시반까지 하루 7번의 기도회가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매번의 기도회는 주로 그레고리안 형태의 노래로 화답하면서 드리기에 책을 보면서 따라 할 수도 있다.

나로서는 전연 새로운 찬송예배을 접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고 있다. 이 기도원은 산 위에 있고 마을까지는 걸어서는 3시간이 걸리기에 평일에는 순례자들 외에는 거의 찾아오는 사람이 없지만, 주말이 되면 주위 도시에서 차량을 타고 오고 때로는 관광버스가 오기도 한다. 지금 일요일 오전인데 12시 유카리스트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다. 게다가 일년에 두 번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그러니까 모두 4번의 음악회가 연속해서 진행이 되는데, 어제 저녁에는 세번 째 시간으로 두 개의 파이프올갠 합주 연주회가 있었고 약 이백 명의 사람들이 모였었다.

이 수도원은 10세기 후반에 처음 세워졌고, 성당은 16세기에 고딕식 형태로 세워졌다. 실내 장식과 건축 양식도 매우 흥미롭지만, 이 성당 안에는 두 개의 파이프올갠이 있다. 하나는 이층 뒤편에 놓여 있고, 다른 하나는 정면 오른쪽에 놓여 있다. 뒤의 것은 17세기 중엽, 앞의 것은 18세기 중엽에 만들어졌다. 바로크 형식이라고 한다. 두 개가 서로 백 년의 차이가 있는데, 만든 장소가 같은지 전체 형태가 비슷하고 파이프의 수가 같다. 다만 옛 것은 밟는 페달이 없고 무릎으로 누루는 두개의 페달만 있으며 가운데 소리관이 밖으로 나와 있다.

앞의 것은 여성 소리 뒤의 것은 남성 소리가 난다. 마치 소프라노 테너의 두 성악가들이 노래하듯이 두 개의 서로 다른 파이프 올갠에서 나오는 소리가 묘하게 어울린다. 여러 차례 파이프올갠 연주를 들었는데, 이번 경우처럼 특별한 경우는 처음인데, 오래된 올갠이라 여기에 맞는 음악이 제한되어 있을 뿐더러 어제 연주자가 82세된 유명한 사람인데, (다른 한명의 여성 연주자는 30대 중반) 매우 다양한 음색과 연주 기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근처 도시의 작은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다. 매우 기대가 된다.

까미노 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일정과 경험은 그날그날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올리고 있으니 이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사실 내가 이 까미노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약 30년 전 미국 공항에서 우연히 고른 책이 까미노에 대한 책이었다. 당시 미국의 유명 여배우가 60세 중반에 인생의 아픔을 경험하고 혼자 한달동안 이 까미노를 걷고 나서 일기체의 조그마한 책을 냈는데, 이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국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10% 이상이 까미노 길을 걸어본 경험이 있다. 전체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걷는 것을 본다. 걷는 게 체질화되어 있어 순례자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다. 그러나 요즘은 소매치기들도 가끔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한 10년 전부터 알려지게 되었고 제주 둘레길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걷고 있다. 갔다온 이들이 펴낸 책만 해도 수십 종류가 된다. 순례자들은 내가 목사라고 하면 “왜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이곳을 찾느냐?”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사실 사실 이게 의문이다. 왜 그럴까? 난 목사로서 신앙적인 이유도 있지만, 신앙과 관계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까미노길에 그렇게 몰입할까?

까미노 길은 단순한 여행길이 아닐뿐더러 우리나라 둘레길과도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온 종일 산속을 걸어야 할 때도 많다. 비나 눈이라도 만나게 되면 낭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남북 분단과 대결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젖어온 죽음의 문화를 떠나 자유를 경험해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까미노길에는 천년의 역사가 숨어 있고, 심지어는 로마시대의 역사 유물까지 보게 되는 경우도 많아 역사공부도 된다. 길만 걸을 뿐만 아니라 도시 안에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통해서 유럽 역사의 일부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길에서 만나게 되는 세게 여러나라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기쁨을 준다. 여기 순례길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찾아 본다.

걷기는 저항

작년에 갖고 다닌 책이 『걷기의 인문학(Wanderlust: A Histotory of Walking)』이었다.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 2001)의 책을 김정아 씨의 번역으로 작년에 출판이 되었다. 글쓴이도 매우 탄탄하게 썼지만, 번역 또한 매우 탄탄하다. 여러 사상가들의 걷기에 대한 철학적 사색이며, 사색을 넘어 행동과 실천을 동행하는 삶의 나눔이다. 내용의 깊이와 폭 그리고 작은 활자와 책의 부피로 볼 때, 일반서적 3권의 책에 맞먹을 분량이다.

저자의 서문의 첫 문장이다. “지난해 한국 사람들이 부정한 정권에 맞서 뭉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경이로웠습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공적 공간으로 걸어 나오는 비무장 시민들이 엄청난 힘이라는 것, 때로 자치의 힘이기도 하고 때로 압제 정권, 불량 정권을 막아내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 책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첫 문장부터 나의 시선을 확 끌어당긴다. "길을 걸으면서 자기 몸의 힘을 느끼는 경험, 집 밖에서 집처럼 편하게 느끼는 경험, 스스로를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고 느끼는 경험, 낯선 사람들과 공존하는 경험입니다.” “집 밖을 집처럼 편하게…” 우선 말이 제대로 안통하니 집처럼 편하게 지내기는 쉽지 않지만,  내 삶을 '도상의 나그네'로 인식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혼자 다닐 때 다른 이들과 같이 다니는 경우보다 위험성은 높다. 까미노 길이 아닌 유럽과 남미 지역에서 몇 차례의 소매치기단을 만났다. 그때마다 임기응변과 주변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것은 없지만, 표적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을 포함해서 낯선 이들과 공존하는 기술을 배우는 건 삶의 지혜이자 축복이다.

솔닛은 말한다. “정신과 육체, 내면의 성찰과 사회의 결성,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도시와 시골, 개인과 집단, 이 양쪽은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립하는 듯한 두 항이 이 책에서는 보행을 통해 하나로 연결됩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그렇다. 나도 그러하지만, 사람들이 까미노를 걷는 것은 일종의 저항의 목적이 아닐까? 자본주의로 인한 경쟁과 물질 욕망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실제로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사람들은 걷기를 통해 찢어진 곳을 꿰매고자 한다. 영혼의 치유를 위해서이다. 나 또한내 삶의 찢어진 곳과 사회의 찢어진 곳을 새롭게 회복하기 위함이다.

일상의 기적

혼자 걷다보면 외로움은 물론이고 먹는 것 자는 것 아니 걷는 일조차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걷는 것은 바로 이를 통해 자유를 느끼고 저항을 배우기 때문이다. 2년 전 한 독일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매우 건장한 40대 후반의 사람이었는데, 그는 당시 10년째 까미노길을 걷고 있었다. 돈은 한푼도 쓰지 않았다. 텐트에서 자고 먹는 것 또한 남이 나눠주는 걸 먹거나 혹은 굶거나 한다. 구걸하지는 않는다. 다만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먹을 것을 나누게 된다. 사실 그는 당시에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가 까미노를 걷게 된 연유를 말한다. 그는 본래 서울에도 며칠을 다녀간 자동차 엔진 기술자였다. 그러다가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먼저 뜬다. 아들 딸을 돌보면서 열심히 일을 하던 어느 날 한 일본인 노인 여행객을 만나는데, 그 여행객이 하루밤 자리를 제공하고 이 노인의 얘기를 듣는다. 이 노인은 크리스챤으로 돈 한푼 없이 세상을 10년째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하늘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아이들도 고등학생으로 제 앞은 혼자 헤쳐갈 수 있었기에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그 길로 집을 떠났고 지난 10년 동안 딱 한번 집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핸드폰도 없었다. 작은 성경책을 들고 다니면서 기도 수행을 하고 있었다. 난 그때 그에게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그에게서 들은 기적과 같은 이야기가 많다. 한번은 3일을 굶고 걸어다니는 데 버스정류장에 피자 세 박스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혹 가질러 올까봐 세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하늘이 준 선물로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 몇날을 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한밤중에 이태리 길을 걸어가는데, (이태리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텐트를 못치게 되어 있다) 가다 보니 다리가 홍수에 의해 끊어져 있어 다시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차에서 한 여성이 나오더니 어제 밤 꿈에 자기를 보았다고 하면서 자신을 집에 가서 먹여주고 하루를 재워주더라는 것이었다. 자기는 생전 처음 본 여성이었다고 한다.

나 또한 짧지만, 까미노를 걸으면서 전연 예상할 수 없는 그래서 ‘기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일 몇 가지를 경험하기도 했다. 2년 전 프랑스길을 걸을 때이다. 겨울에는 해가 짧고 열려 있는 알베르게 숙소가 먼거리에 있어 새벽 5시반에 숙소를 나섰다. 도시를 벗어나 들판 길로 접어드는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참새 한마리가 내 앞에 날아와 안더니 내가 다가가면 깡충 뛰어 서너 미터 앞으로 가고 또 내가 다가가면 서너 미터 앞으로 뛴다. 그러기를 너댓 번을 한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하고 걷는데, 갑자기 이 참새가 길 반대편으로 훌쩍 날아간다. 아 그런데 바로 거기에 노란색 화살표시와 함께 까미노길을 상징하는 조개껍데기 길 표시가 있는 것이었다. 만약 지나쳤다면 한참을 가서야 되돌아왔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날 목적지까지 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얘기해보면 저마다 한두 가지의 기적과 같은 경험들이 있다. 어제 하루를 함께 보내고 같이 잠을 잔 독일 젊은 친구(그의 직업은 올갠전문 목수)가 아침 길을 떠나면서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어디에 연유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까미노길을 걷는 사람들끼리 하는 인사말이 있는데 (보통은 뷰엔 까미노!라는 스페인 인사를 한다.) ‘하우이데’라고 말하면 그 말을 받아 ‘이데우데’라고 답한다고 한다.(그런데 바로 적어 놓지 않아 발음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다.) 앞의 말은 ‘계속 앞으로 앞으로 끊임없이 걷는다’는 뜻이고 뒤의 말은 ‘그래서 천국까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가면서

도상의 나그네. 우리는 모두 길 위의 나그네이다. 아브라함의 축복이란 다름 아닌 바로 이 도상의 축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을 쌓는 자 망하리라.” 이 말은 몽골의 어느 장수가 남긴 말이다. 아파트 한평을 넓히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도시 문명 그건 문명이 아닌 죽음의 길이다. 톨스토이의 우화에서와 같이 끝없이 보이는 평야에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말뚝을 박아놓은 전 땅을 주겠다고 하는 왕의 말을 들은 어느 신하가 아주 신이 나서 지평선 너머까지 말뚝을 박고 해가 서산에 지기 직전 돌아왔는데, 그만 왕 앞에서 보고를 함과 동시에 너무 너무 찬 나머지 죽음을 맞았다. 현대인들의 삶의 종말이 이와 뭐가 다른가? 까미노는 바로 이러한 신기루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전이자 모험이다.

조헌정 목사(향린교회 은퇴목사, 예수살기 상임대표)  choshal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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