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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더라도, 아니 약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이야기들에서 평화의 길을 끌어내기
황용연 | 승인 2006.10.23 00:00

재일조선인 3세인 신숙옥씨는 최근 한국에 번역 출간된 그의 저서 <<자이니치, 당신은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하여>>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난 7월에 있었던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이후의 일본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 사회) 다수파의 내부에 소용돌이치는 차별과 공포, 이를 등에 업고 표면화되는 그들의 증오심은 이번에도 틀림없이 자이니치라는 배출구를 향해 쏟아질 것이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물리적으로는 자국과 러시아 앞바다에 떨어졌을 뿐이지만, 그 피해는 여지없이 자이니치를 엄습하려는 상황이다. 증오의 배출구가 될 것을 강요당하며,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

그런데, 저자의 비판은 일본 사회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자이니치에게 있어 더욱 가혹한 사실은 미사일을 쏜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일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자이니치의 존재 따위는 애초에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자국의 포로가 있는 줄 알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지난 10월 3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10월 9일, 핵실험의 성공을 선언했을 때, 이 저자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니들 싸움'에 죽고 다치는 '우리들'

북한의 핵실험 성공 발표 후에 인터넷을 하다가, 서너 군데에서 비슷한 의견이 나오는 것을 눈여겨보았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1대1로 만나서 ‘맞짱뜨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둘이 벌이는 ‘니들 싸움’에 왜 ‘우리’까지 끼워 넣어서 곤란하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겠다.

물론 사태를 너무 단순히 파악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좀 무책임하게 귀찮아하는 걸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정곡을 찌른 의견 아닌가. 모든 전쟁이란 사실은 언제나 ‘니들 싸움’이었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니들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 그것을 ‘우리들의 싸움’이라고 우기고 ‘우리들’을 그들의 권력으로 싸움에 강제로 동원을 해서, 사실상 죽고 다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우리들’이 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이 지점에다가 서두에 인용한, 북한의 군사적 행동과 그를 핑계 삼은 일본 사회의 광기 두 가지 모두로 인해 고통 받는 재일조선인의 문제를 같이 놓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서, 당장 현실적으로 북한 핵무기의 유일한 유효공격대상이 되어 버린 남한 사람들의 문제를 같이 놓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남한 사람들은 동시에, 북한을 왕따 시킴으로서 이렇게 긴장을 고조시키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반도 전쟁의 불을 댕길 가능성이 더 높은 미국의 호전성에 겁먹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적대정책에 대한 자위권”이니 “세계를 위협에 몰아넣는 불장난”이니 이런 소리로 자기를 정당화하려는 북한이건 미국이건 어느 쪽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문제 아닐는지.

기독교는 '공포의 평화'에 동의할 수 없어

크든 작든 무기를 가지고 이룰 수 있는 평화라면 그것은 이미 서로 찌르면 둘 다 죽는다의 논리로만 가능한 ‘공포의 평화’이며, 그것은 이미 60년간 우리가 지긋지긋하게 겪어 온 그 평화일 것이다. 특히나 핵무기란 그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그 파괴력 때문에 언제나 ‘내 땅’이 아닌 ‘다른 땅’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런 ‘공포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무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 ‘공포의 평화’는, ‘공포의 평화’의 양쪽 상대방인 이른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에서 빠지면 그 평화마저 깨진다는 것을 명분으로 한반도 남쪽 북쪽 모두 다를 공포사회로 만든 그런 평화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회운동, 특히 기독교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곳에도 실렸던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의도는 두 번째로 핵보유국으로 등장해 그 지위와 역할을 갖자는 것이다. 핵보유국으로 지구 상에 8번째 나라로 등장하는 것은 북한의 '강성대국'건설노선에 합치되는 것으로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북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미사일을 마음껏 쏘아대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결국 북한은 소련이 몰락한 이후 사회주의와 진보적인 세계 운동을 주도하는 중심적인 국가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과거 소련의 지위를 물려받아 반제자주세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것이 북한의 또 하나의 의도이다(김성윤/<제제가 아닌 대화로, 전쟁이 아닌 평화로>)”식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했던 것과 같은, 무기와 군대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를 만들어 갈 길을 찾기 위한 시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 길은 우리가 쉽게 ‘우리 편’이라고 동일시하기 쉬울, ‘대한민국’(+‘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도 한 편에 든다.

엘리야의 7천명, 우리에게도 있다

이런 생각은 ‘양비론’이란 냉소의 대상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냉소까진 아니더라도 당장의 긴장 관계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 힘이 없는 약한 주장이라는 비웃음 혹은 안타까움을 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약하다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약하다면,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복음이라는 게, 강하거나 약하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그러하므로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이 지점에서 엘리야에게 하셨던 하느님의 말씀을 돌이켜 본다. 하느님은 엘리야에게 “7천명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7천명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제국주의라는 바알과, 군사주의라는 바알, 부정적인 민족주의라는 바알에 무릎꿇지 않은 7천명이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있다“고, 듣고 싶은 심정이다.

황용연 /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대학부장

황용연  hyysc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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