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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길과 저주의 길(신11:26-32; 고전13:1-13; 마5:1-12)주현절 첫째 주일
최병학 | 승인 2019.01.08 17:37

1. 아싸들의 이야기

‘아싸’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웃사이더(Outside), 외톨이, 주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약어입니다. 반대로 ‘인싸’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사이더(Inside), 잘나가는, 혹은 주류에 속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TV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면,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안, 곧 인싸에서 남편은 왕으로, 자기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즘 세상은 아싸와 인싸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는 정규직, 비정규직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 지금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옛날도 그랬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국가 간에도 있습니다.

올해 2019년이 3·1운동 100주년인데, 일본의 예를 살펴볼까요? 1907년 일본 도쿄에 <도쿄 권업 박람회>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자국인들만을 위한 박람회였습니다. 정부가 주관합니다. 그런데 이 박람회에서 조선사람 남녀 두 명을 전시했습니다. 일본 「아시히 신문」의 논평을 보면, “박람회장에 조선 동물 두 마리가 있는데 아주 우습다.” 조선인 남녀 두 명에게 한국의 전통 복식을 입히고 의자에 앉아 있게 했는데, 미래에 일본의 식민지가 될 조선의 물품을 전시하면서 동시에 동물처럼 조선인도 전시했던 것입니다. 일본인 안내자의 상세한 설명을 보면, “입장료는 어른 10전, 어린이‧군인은 5전”이었다고 합니다.

<1907년 일본 도쿄 권업 박람회>

한 조선인 유학생이 박람회장에서 그것을 보고 항의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도쿄 박람회가 열리던 중 6월 21일 「대한매일신보」는 이렇게 논평합니다. “오호 통재라. 우리 동포여, 예전에 우리가 아프리카 토인종을 불쌍히 여겼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찌 그들이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게 될 줄 알았으리오.”

<박람회에 전시된 조선인 남녀>

그러나 일본은 1903년에도 ‘오사카 내국권업박람회’를 열었는데, 그때도 학술 인류관에 타이완 고산족, 아이누인, 류큐인, 조선인을 전시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간 전시회는 제국주의 시대의 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은 일본이 주변국을 점령해 나갔고, 이후 전리품으로 사람들을 잡아다가 전시를 한 것입니다. ‘인싸’가 되었다고 생각한 일본이 ‘아싸’인 조선인 등을 사람취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사카 박람회에 전시된 사람들>

그럼, 이것은 일본만의 독특한 사건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건의 이면에는 어두운 역사가 숨어있습니다. 바로 영국 <수정궁 만국 산업박람회>(1851)가 그 시작입니다. 그곳에 참석했다가 유럽인들에게 전시품 취급을 당했던 일본인들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은 이후, 제국주의로 발전하고 힘을 갖게 되자, 주변국들에게 똑같이 복수를 한 것입니다. 우월한 힘과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철저히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존재임을 확신시키고자 합니다. 명품가방, 명품 차, 명품 옷, 명문 대학, 혹은 취향에서 그러합니다. <스카이 캐슬> 드라마 속 대한민국 상위 0.1%가 그렇고, 종교적으로는 사제직이라는 특권이 그렇습니다.

<드라마 SKY캐슬>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들어 이것을 설명합니다. 부르디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비투스는 특정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이나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 체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계급 구성원들의 문화적 상징이나 행동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곧, 아비투스는 ‘인간 행위를 상징하는 무의식적 성향’을 뜻합니다. 이러한 아비투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육입니다. 따라서 아비투스는 ‘복잡한 교육체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무의식적 사회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교육을 통해 상속됩니다. 드라마에서 엄마들이 자녀의 교육에 그렇게 치열한 이유입니다.

<부르디외>(사진 왼쪽)와 그의 책 <구별짓기>(사진 오른쪽)

개인, 혹은 혈족의 아비투스가 국가로 나타난 것이 바로 박람회입니다. 18세기 말 이후 프랑스에서 기술 진보를 장려하기 위해 국내 산업전시회를 개최했는데 이를 본뜨고 판을 키워서 1851년 영국에서 <수정궁 만국 산업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이것이 박람회의 시작입니다. 이 박람회에는 여러 나라의 기술과 상품을 소개하였습니다.

19세기 말 유럽인들의 자긍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더 이상 과학의 진보는 없다.”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자긍심에 넘치던 인싸들, 곧 유럽인들이 ‘만국 박람회’를 열어 국력을 과시하고 동시에 돈벌이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파리의 명물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인싸인 강대국들은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박람회를 주최했으며 아싸인 약소국들은 그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만국박람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제국의 아비투스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차이를 혐오하고, 무시하고, 배타적으로 밀어내는 사회입니다. ‘아싸’가 아니라, 이제 모두들 ‘인싸’가 되려고 몸부림칩니다. 신년주일인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아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신약)과 그들 앞에 놓여진 두 가지 길(구약), 그리고 아싸들이 지녀야될 품성(서신서)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현절 첫째주일인 오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며 진정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아싸들의 축복: 복이 있는 자들은?

마태복음 5-7장은 예수님의 산상설교입니다. 이 산상 설교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근처의 어느 산 언덕에서 행하신 설교입니다. 본문 말씀은 8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무리(오클로스, 민중 곧 아싸)’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나아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치십니다(마 5:1-2). 이때의 무리들은 배고픈 무리요, 소외된 무리요, 굶주린 무리들이었습니다. 애통하는 자들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온유하며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마침내 마음이 청결하여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3-10)

여덟 가지 복이 있는 자의 핵심은 11-12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곧, 8복에 해당되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욕을 먹고, 박해당하고 악한 말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애굽에 의해 종살이하던 민족, 로마 치하에서 고통당하던 민족, 일제의 박람회에 전시된 조선 사람, 힘의 논리에 의해 소외된 사람, 곧 이 시대 아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싸들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든 아싸들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아싸들 앞에 놓여진 길은 두 갈레 길입니다. 구약의 말씀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3. 아싸들에게 놓여진 두 가지 길: 복의 길과 저주의 길

<모세의 신명기 설교>

히브리 민중들, 곧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대 근동 세계의 아싸들입니다. 이들 앞에는 복의 길과 그렇지 않은 저주의 길이 놓여있습니다. 모세는 오늘 본문 말씀 신명기에서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신명기 말씀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가 광야에서 살아남은 세대들에게 보내는 고별의 메시지입니다. 아싸인 조상들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소유할 ‘신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세 차례 선포한 것입니다. 구약성서 레위기에서 소개한 율법이 제사장을 위한 것이라면, 신명기의 율법은 일반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복의 길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과 저주, 순종과 불순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애굽 탈출과정과 40년 광야생활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상기시키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준행하도록 권고합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6-28)

그리고 가서 차지할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고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신 11:29-30).

그리심 산은 항상 햇볕이 드는 산으로 숲이 울창하여 경관이 좋은 산이지만, 에발 산은 늘 그늘이 져 수목이 없고 바위투성이인 황폐한 곳입니다. 같은 지역이지만 대조적인 환경으로 축복과 저주의 모습을 각각 상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그림신산과 에발산>

어떤 길을 갈 것인가? 눈앞에 보이는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모습을 보고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 지파는 그리심 산에 서게 되고, 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 지파는 에발 산에 서게 됩니다(신 27:12-13 참조). 모세에 의해 저주의 말씀이 선포되면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하고 응답하며, 축복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리심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하도록 했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율법이지만, 한 번은 저주에 대한 경고로, 또 한 번은 축복의 약속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멘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복과 저주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길을 두셨습니다. 아싸들에게 놓여진 두 가지 길은 복과 저주의 길입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복 받을 이스라엘 백성, 곧 아싸들에게 하나님은 복만을 펼쳐놓으신 것이 아니라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 모두를 펼쳐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고를지는 온전히 우리들 아싸들의 몫입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신 11:31-32).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아멘으로 행함으로 2019년 한해 복된 삶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규례와 법도는 무엇인가요?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아싸들이 지녀야 될 품성으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 아싸들이 지녀야될 품성: 사랑

바울의 서신서인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예수의 사람들은 인내와 지혜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의 절대가치와 절대필요성을 업급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의 절대우위성과 영원성을 설명하는 바울의 이 사랑장은 ‘영원한 사랑의 복음’이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고상한 ‘형이상학적 사랑’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상황이 그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다른 교회들보다 문제가 많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고린도 교회를 ‘고린내’나는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고린도는 기원전 400년경에 이미 인구가 9만 명에 달했던 도시입니다. 항구 도시라 여러 민족들이 모여든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러 민족들이 각종 우상들을 섬겼고, 상업적 항구도시라는 특성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매우 문란했습니다. 아크로코린토스(akro korinthos) 산 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는데, 신전에는 천여 명의 여사제들이 제의적인 매춘을 행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고린도식으로 산다.”라는 말은 “도덕적 행실이 나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죄와 향락의 도시, 고린도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프로디테 신전>(사진 왼쪽)과 <고린도>(사진 오른쪽)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를 방문하여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며 고린도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데 주력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자가 되었지만(고전 4:15, 행 18:1-18 참조) 그들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변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됨과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윤리,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격을 갖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1년 반 정도 가르친 다음, 다른 도시로 떠났을 때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여러 파로 나뉘어 교리논쟁으로 다툼을 일삼았고, 도덕적으로도 무너졌으며, 어떤 사람은 초자연적인 것에 집착하기도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을 한번 나열해 볼까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다투는 이들(고전 1:11-12)’, ‘음행하는 자(5:1)’, ‘세상법정에 고소하는 이들(6:1-7)’, ‘결혼과 이혼, 독신의 문제(7:1-40)’,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관한 문제(8:1-13)’,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는 사람들(9:1-18)’, ‘여자가 머리를 기르는 문제(11:2)’, ‘제사 문제(10:3-21)’, ‘성만찬의 문제(11:17-34)’, ‘부활이 없다 하는 자들(15:1-26)’ 등.

이러한 문제점들을 생각해보면 오늘 한국 교회의 모든 문제점들을 고린도 교회가 갖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점이 나와 상관없다고 하는 이들에게 바울은 사랑장을 통하여 참된 사랑을 이야기함으로 아싸들이, 아니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될 품성에 관해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씀이 없습니다. 한글자 한글자 음미하며 읽으면 참으로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1-10)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물론, 오늘 우리들에게도 바울은 말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지 말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라. 수십년 신앙생활을 해도 인격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사랑을 통한 신앙의 성숙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1-13)

5. 진짜 인싸는?

진짜 부자에 관해 의미 있게 소개한 내용이 있어 인용해봅니다. 이것은 진짜 인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친구가 성공했을 때 내가 더 기쁘고 나보다 멋진 친구의 용모에 샘이 안 난다.
(2) 가난한 이웃을 위해 지갑을 열 때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3) 내 자녀들이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라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4) 음식을 먹기 전에 그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5)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새의 노랫소리가 귀에 크게 들리며 주변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6) 내게 부족한 것보다 이미 있는 것들이 감사하다.
(7) 남을 비판하는 것보다 칭찬의 말을 더 많이 한다.
(8)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산다.
(9)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을 생각한다.
(10) 죽음에 대해 자신이 있다. (장윤재, ‘진짜부자’, 『국민일보』 2019.1.4.)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기해년 한해도 힘든 한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싸는 영원히 인싸가 아닙니다. 아싸들이 “앗싸!”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 앞에 여덟 가지 복을 준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주의 길도 놓아두셨습니다. 사랑을 통해 저주의 길이 아닌, 주님 주신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최병학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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