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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쿠아맨>과 플라톤, 요한복음최병학 목사의 인문학으로 읽는 영화
최병학 | 승인 2019.01.13 18:15

1. 영화 <아쿠아맨>

DC코믹스가 마블코믹스에 대항하며 제임스 완 감독을 섭외해 내놓은 야심작 <아쿠아맨(AQUAMAN)>(2018)은 평범한 등대지기의 아들이었던 아서 커리(제이슨 모모아 분)가 메라(앰버 허드 분)의 지지에 힘입어 진정한 아틀란티스의 후계자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아서는 아틀란티스 여왕의 피를 이어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본인의 기원과 능력을 깨달은 땅의 아들이자 바다의 왕인 아서는 아틀란티스의 넘버 2인 벌코(윌렘 데포 분)에게서 훈련을 받고 후계자 교육을 받습니다.

▲ 영화 <아쿠아맨> 포스터

영화의 한 장면, 육지의 쓰레기와 육지 사람들의 공격으로 바다(아틀란티스 제국)는 고통을 받습니다. 그 결과 아쿠아맨과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자, 아틀란티스의 옴 마리우스 왕(패트릭 윌슨 분)은 아틀란티스 7개 바다 왕국을 통합하고, 육지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 첫 시작으로 바다 속의 모든 쓰레기를 육지로 밀어 버립니다. 육지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제 아쿠아맨은 육지와 바다의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영화는 심해의 수호자인 슈퍼히어로인 아쿠아맨이 지상 세계와 수중 세계를 오가며 화해를 위한 대장정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특히 지금껏 본 적 없는 바다 왕국과 다양한 심해 크리처(창조된 것) 등을 통해 영상 미학을 창조합니다. 아바타 이후 환상적인 비주얼 등 상상을 뛰어넘는 재미로 새로운 히어로 탄생을 알렸습니다.

2.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에 관해 플라톤은 『티마이오스』 (서광사, 200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해협’ 반대편에 매우 큰 섬이 있었는데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크고 다른 섬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또 거기서부터 반대쪽에 있는 대륙으로 갈 수 있었다. 그곳은 산맥과 온갖 동물들이 번성하는 푸른 벌판이 있었고, 또 아름답고 신기한 과일들이 많이 나는 비옥한 땅이었다. 땅 속에는 온갖 귀금속이 묻혀 있으며 특히 사람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겼던 금, 은을 비롯한 보석들이 많았다. 섬 한가운데에 있는 수도에는 흑, 백, 적색의 돌로 지은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으며, 이 도시는 완전한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도시들은 항만과 운하로 연결되어 있다. … 그 나라 국민들의 타락으로 아틀란티스는 신의 무서운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섬 전체에 끔찍한 재앙이 몰아 닥쳤다. 그로 인해 아틀란티스는 화산 폭발과 해일에 덮인 채 하루아침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인 『티마이오스』는 약 1만1천5백 년 전에 물 밑으로 잠겨 버렸다는 아틀란티스 신화가 담겨 있는 ‘들어가는 대화’와 우주의 탄생에서 인간 및 다른 생물들의 탄생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론’, ‘본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론 1부는 ‘지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 2부 ‘필연의 산물들’ 3부 ‘지성과 필연의 결합’으로 나눠집니다.

▲ 아틀란티스 상상도

옥스퍼드의 버네트 교수는 『티마이오스』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과학적 가치’들과 ‘정신적 가치’들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겠는지를 보여 주려 하고 있다면, 플라톤 철학은 당신이 이용할 수 있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철학이다.”

왜냐하면 『티마이오스』는 형이상학적이면서도, 기술적 창출 과정을 모델로 삼은 플라톤의 우주론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의 삶의 방식과 제도 그리고 기술 등 모든 것이 우주적 질서에 동화되어 편입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책에는 플라톤 자신의 철학뿐만 아니라, 당시의 천문학, 수학, 생리학, 의학, 광학, 화성학 등을 포함하는 모든 학문적 성과가 다 동원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 그리스의 철학과 더불어 여러 학문들의 수준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티마이오스님께서는 우리 중에서 천문학에 제일 밝으시고 우주(to pan)의 본성(physis)에 관하여 아는 것을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로 삼아 오셨기 때문에, 자신께서 먼저 우주(세계: kosmos)의 생성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셔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로 끝내시는 것이 좋을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우주적 본성을 밝히는 작업을 통해서 본인이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론의 필연적인 논거를 제시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본성론은 오늘날의 정치철학의 주제가 됩니다.

3. 아이티온과 파테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우주의 생성과 구성을 이원론적으로 설명하며 ‘아이티온(αἴτιον)’과 ‘파테톤(παθητόν)’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능동과 수동’ 혹은 ‘원인과 결과’로 번역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움직임을 주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이티온이며 ‘움직임을 받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 피조된 것’이 파테톤입니다.

영어에 능동태와 수동태가 있듯이, 세상의 모든 일에도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따른 결과가 있습니다. 육지 사람들의 탐욕과 환경 파괴가 아틀란티스 사람들의 육지 공격의 원인입니다. 그리고 아틀라나 여왕(니콜 키드먼 분)과 등대지기의 만남이 아쿠아맨을 낳고, 이를 통해 화해가 일어난 것도 원인과 결과로 설명이 됩니다.

플라톤은 모든 생성되는 것은 어떤 원인에 의해 필연적으로 생성되며, 모든 원인 가운데 최고의 원인은 그것을 만드는 자라고 봅니다. 따라서 데미우르고스(dēmiourgos), 곧 장인craftsman)을 통해 세상의 창조를 설명합니다. 태초에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라는 조건 아래 데미우르고스는 우주 창조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를 위해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본보기(paradeigma), 곧 이데아로 삼고, 자신의 작품에 그 본보기의 ‘형상’(idea)과 ‘능력’(dynamis)을 갖추도록 창조 작업을 완성합니다. 따라서 현실 세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본보기(paradeigma), 곧 이데아를 본떴기 때문에 그림자이며, 그림자이기 때문에 실체가 아니고, 따라서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신의 본성’과 소멸되는 유한한 ‘인간적 속성’이 혼합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인간적인 속성이 신의 속성을 압도해버려 파멸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적인 본성을 유지해 유토피아와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느냐? 플라톤은 그 방법이 바로 가장 현명한 철인왕이 모든 것을 통치하는 정치제제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것을 누군가가 [일체] 창조물(생성)과 우주(kosmos)의 무엇보다도 가장 주된 원리(archē)로서 지혜로운 사람들한테 받아들인다면, 그 받아들임은 지당할 것입니다. 이는 신이 모든 것이 훌륭하기를 바랐지, 그 어떤 것도 가능한 한에 있어서, 볼품없기를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인데, 이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조화롭지 못하며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가시적인 모든 것을 그가 받아서는, 그것을 무질서 상태(ataxia)에서 질서 있는 상태(taxis)로 이끌었습니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로고스가 있습니다. 플라톤의 말입니다.

“우주는 바로 이렇게 해서 생겨났기에, 그것은 합리적인 설명(logos)과 지혜(phronēsis)에 의해 포착되며 ‘똑같은 상태로 있는 것’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점들이 이러할진대, 이 우주가 어떤 모상(模相, eikōn)일 것임이 또한 전적으로 필연적입니다.”

4. 요한복음의 로고스

요한복음도 태초의 로고스를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logos)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 1:1-4)

어떻게 보면 플라톤의 말은 요한복음의 선취입니다. 들어볼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게 되는 언급들 가운데 이미 앞에서 한 것들은 적은 부분을 제외하곤 ‘지성(nous)’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을 보여준 것들입니다/ 그러나 ‘필연(anankē)의 산물들도 우리의 이야기에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 우주(kosmos)의 탄생이 실은 필연과 지성의 결합으로 해서 혼성된 결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성은 필연으로 하여금 생성되는 것들의 대부분을 최선의 것(to beltiston)을 향해 이끌고 가도록 설득함으로써 필연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이런 식으로 그리고 이에 따라서 필연이 슬기로운 설득에 승복함으로써 태초에 이 우주(to pan)가 이렇게 구성되었습니다.”

이아티온과 파테톤을 통한 우주 창조의 진리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of Alexandria, c. 25 BCE~c. 50 CE)는 ‘세상의 창조에 관하여(De opificio mundi)’에서 이러한 플라톤의 아이티온과 파테톤을 차용합니다. 당시 필로가 살았던 시대는 디아스포라 현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및 유대교는 그들 고유의 신앙과 헬라 문화와 타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필로는 예수님과 동시대 인물로 이교 철학의 정수가 히브리 성경과 일치함을 증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히브리 선지자들이 헬라 철학자들보다 먼저 살았기 때문에 후자가 전자의 지혜를 빌어 왔다고 주장합니다. 필로는 이렇게 말합니다(유스토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28).

“히브리 선지자들과 헬라 철학 양자 간에는 수많은 일치점들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철학자들의 교훈은 성경의 그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양자의 차이란 성경이 상징적으로 말한다는 데 있다. 이는 곧 성경이 풍유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에 의해 이해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해석을 통해 성경의 하나님은 곧 철학자들의 신과 동일하다.”

자, 정리를 해 볼까요? 플라톤의 아이티온이 바로 필로에게서는 ‘창조주 하나님’이 됩니다. 모세에게 나타난 ‘스스로 존재하는 자(출 3:14)’인 야훼가 필로에게는 ‘움직임을 주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확장, 이해된 것입니다. 다른 세상은 육지와 바다가 아쿠아맨을 통해 만나서 화해하고 하나가 되듯, 사상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헬라 철학과 만난 기독교가 이제 아시아에서는 불교 철학과 만나야 됩니다. 그리고 과학과도 만나야 됩니다. 독실한 믿음의 사람이 당신은 두렵죠? 그러나 그 두려움을 벗어버릴 때, 진정 다른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최병학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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