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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일상을 위한 축제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 | 승인 2019.01.30 19:17
보라 평화를 알리는 전령의 발이 산을 (넘는다). 유다야 네 축제의 날들을 지키고 네 서원을 갚으라. 무법자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다니지 않으리니 그가 완전히 제거되겠기 때문이다.(나훔 1,15)

해방은 종종 적의 몰락과 맞물려 있습니다. (요나의 심판 선포에 따른) 니느웨의 회개가 그에 걸맞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탓에 결국 여기서 멸망을 선고받습니다. 거짓과 폭력과 약탈 그리고 살상을 멈추지 못한 탓입니다.

요나의 심판 선언이 니느웨의 회개만이 아니라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회복도 겨냥한 것이었다면,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을 이스라엘의 해방 계기로 직접 선언합니다. 강대국의 ‘호의’에 의한 평화적 해방이란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강대국이 손쉬운 이익 획득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나서에서 보는 하나님의 실험도 그렇게 끝났음을 나훔은 보여줍니다.

ⓒGetty Image

여전히 압제 아래 신음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평화의 소식을 알릴 전령을 보내십니다. 그의 발이 산을 넘고 있으니 강대국의 몰락과 평화의 때가 이르기까지 멀지 않았습니다. 억압 아래 끊어졌던 일상이 다시 계속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일상입니다. 왜 축제일들로 일상을 대표하고 무슨 서원을 갚으라는 것일까요? 평화의 때는 단지 억압과 수탈로부터의 해방이 아닙니다. 해방은 시작일 따름입니다. 그 시작은 하나님이 마련해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일상을 통해 계속되어아 합니다.

축제는 이를 위한 것입니다. 축제는 과거의 해방을 단지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에 담긴 미래를 풀어가기 위해 잠시 멈추고 재충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축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축제입니다. 하나님 없이 삶으로써 왜곡되었던 삶의 질서를 하나님 앞에서 바로 펴는 기회입니다. 서원과 맹세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짓밟히던 시절에 탄식하고 반성하며 버리겠다고 맹세했던 것들, 하겠다고 각오했던 것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 지속성의 조건입니다. 강대국의 몰락에 많은 지면이 할애되고 있지만 실제 중심은 평화의 조건과 평화의 삶에 있습니다. 강대국의 존재자체도 이 평화의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 초대장을 받아들이고 평화의 삶을 꾸려가는 오늘이기를. 평화의 조건을 만들어가며 기쁨을 나누며 희망을 얻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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