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이여!(사 30:8-18; 계 3:1-6; 마 23:13-28)사순절 넷째 주일(3월31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3.28 18:59

1. 표리부동

한 선비가 서성(書聖)으로 존경받는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321~379)가 쓴 글씨를 저잣거리에서 싼값으로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글씨는 가짜였습니다. 선비는 글씨를 판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속아서 글씨를 구입했는데, 사기꾼이 그럴싸한 말솜씨로 선비를 속였기 때문입니다. 선비는 그 글씨를 가지고 어느 학자를 만나서 중국의 황희지가 쓴 글씨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학자는 그 글씨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선비에게 가짜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선비는 깜짝 놀라서 저잣거리에서 사기꾼을 찾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글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또 겉만 보고 사람을 믿은 선비는 결국 사기를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표리부동(表裏不同)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로 마음이 음흉하여 겉으로 보이는 언행과 속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표리부동은 부정부패를 일삼는 사회지도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표리부동>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도 있습니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뜻이죠?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도 같은 의미입니다.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말입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바로 이러한 표리부동한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교회, 한 민족의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고난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순절기에 우리의 마음과 행실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길을 따르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마태복음 23장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의 말씀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셨는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위선자들, 곧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을 정면으로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본받지 말라 훈계하시며, 이러한 외식하는 자들의 죄악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외식하는 죄악을 일곱가지로 이야기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은 6가지만 소개합니다. 나머지 한 가지는 ‘예수님의 죽임’에 관련되기에, 본문에는 빠져있습니다.) 비단 이 책망은 유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그 말씀을 들어볼까요? (책망의 말씀 앞에 번호를 넣겠습니다.)

▲ 외식하는 바리새인들를 꾸짖는 예수 ⓒGetty Image
“①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②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 ③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마 23:13-16)

15절 말씀이 가슴 아픕니다.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전도해서, 교인 한 사람을 얻으면 그 사람을 사랑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지 않고, 자신들 보다 더 못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멀쩡한 세상 사람을 불러 전도해서 교인으로 만들고 난후, 악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오늘 한국 개신교가, 교회가 그렇지 않습니까? 멍쩡한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 교회이며, 개신교는 사회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먼저 믿는 자들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천국 문 앞에 서서 그 문을 닫고 자기도,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책망을 들어볼까요?

“④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⑤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⑥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3-28)

표리부동의 예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말씀은 지키면서, 정의와 긍휼(자비)과 믿음(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는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속은 탐욕과 방탕,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를 요한 사도는 오늘 말씀에서 잘 보여줍니다. 바로 사데 교회입니다.

3.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사데교회!

‘남은 자’ 또는 ‘남은 물건’이라는 의미를 지닌 사데 지역은, 소아시아 지방(지금의 터키) 두아디라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앞으로는 팍톨루스(Pactolus) 강이 흐르고, 뒤로는 투몰루스(Tumolus) 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데의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기능하고, ‘황금의 도시’라는 별명처럼 화려하고 부유했던 도시였습니다. ‘마이다스의 황금 손’ 전설의 근원지가 바로 사데입니다.

▲ “소아시아 7교회”(사진 위)와 “아르테미스 신전 옆의 사데교회(왼쪽)”(사진 아래) ⓒGetty Image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스승 실레노스를 환대한 마이다스 왕의 소원대로 왕이 손으로 무엇이든지 만지든지 황금으로 바뀌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이다스 왕이 실수로 딸을 만졌고, 황금으로 변한 딸을 보고, 왕은 디오니소스에게 소원을 철회해줄 것을 원했습니다. 따라서 디오니소스는 팍탈루스 강에 가서 손을 씻도록 말해주었고, 마이다스 왕은 그 강에서 손을 씻음으로 정상적인 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팍탈루스 강에는 사금이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한때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고, 페르시아 제국의 소아시아 지역 수도가 바로 사데 지역입니다.

▲ 마이다스 왕이 자신의 딸의 몸에 손을 대자 황금으로 변했다. ⓒWikipedia

그 당시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도시들이 겉과 속이 달랐던 것처럼, 사데 교회 역시 겉모습은 화려했으나, 내면의 신앙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사실 교통의 요충지이며, 금광으로 유명했기에 소아시아 다른 교회들보다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따라서 아쉬울 것이 없는 사데교회는 예수를 믿고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은 그저 머릿속 지식으로만 남고, 삶의 모습은 형편없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옷과 명품가방, 자동차와 값비싼 음식, 버닝썬과 같은 세상의 유흥거리가 이들의 가슴을 들뜨게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질책합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 3:1-2)

개인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말씀에 깨어있지 않으면 살아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그럼 민족은 어떨까요? 구약의 본문 말씀은 민족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압박과 허망을 믿는 유다 백성들!

이사야 본문 말씀은, 남 유다에 앗수르가 침공했을 때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민족의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의 왕과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이집트)과 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여 애굽과 동맹을 맺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말씀 이사야 30장 1-3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식들아, 너희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아니하고 일을 꾸미며 내 뜻을 알아보지도 아니하고 동맹을 맺어 죄 위에 죄를 더하는구나. 나에게 묻지도 아니하고 이집트로 내려가 파라오에게 기대어 몸을 숨기고 이집트의 그늘에 숨으려는 자들아, 파라오에게 보호받으려던 것이 도리어 부끄러움이 되고 이집트의 그늘에 숨으려던 것이 무안하게 되리라.’”

사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격렬한 분노에 따라 멸망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는 유다는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애굽을 의지한 것입니다. 오늘 한반도의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강대국의 힘(압박)을 믿지만, 그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 도다.”(사 30:8-12)

그 결과 어떻게 되나요?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사 30:12-14)

그럼에도 깨닫지 못하고, 유다 백성들은 도망가면 살 것이라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책망을 볼까요? 공동번역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말을 타고 도망가겠습니다.’ 도망가려거든 어서 가려무나. ‘우리는 날랜 말을 타고 도망가렵니다.’ 그래봐야, 너희를 뒤쫓는 자들이 더 날래리라. 한 사람의 고함에 천 명이 넋을 잃고 다섯 사람의 고함에 너희는 모두 도망치리라. 결국 너희는 산꼭대기에 남은 외로운 깃대, 언덕 위에 홀로 남은 신호대 처럼 되리라.”(사 30:16-17)

‘한 사람의 고함 소리’와 ‘다섯 사람의 고함 소리’는 오합지졸을 말합니다. 한줌밖에 되지 않는 적들을 피해 유다 백성들이 수치스럽게 도망친다는 말씀입니다. 참 서글픈 민족입니다. 선민이라고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이 유다 백성이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미국, 일본의 해양세력이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라는 대륙 세력의 힘의 논리와 압박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허망한 것을 믿지 말고, 오직 말씀에 바로 서서 진실과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5.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그러나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사데 교회와 유다 백성들의 표리부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내하고 기다리십니다. 다시 신약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마 23:18)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크십니다. 마태는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눈 먼 인도자들이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마 23:16).”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이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황금이냐? 아니면 그 황금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전이냐? 또 너희는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그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두고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하니, 이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아니면 그 제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제단이냐? 사실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한 맹세이고,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한 맹세이며, 또 하늘을 두고 한 맹세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두고 한 맹세이다.”(마 23:17-22)

겉치레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또 변함없는 행위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이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사 30:15a) 그렇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 다녔던 다윗은 시편 62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62:1-2)

사랑하는 여러분!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지 않아야 합니다. 사데 교회와 같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유다 백성과 같이 허망한 것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조용히 잠잠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 가운데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4-5)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쾌락과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이기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희게 된 흰 옷을 입고,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었음을 믿고,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시인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요한은 이렇게 외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3:6) 아멘!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