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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을 섬길 수 있는 곳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3.31 17:27
사람이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 바로 거기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하시리라.(요한복음 12,26)

섬긴다(디아코네오)는 것은 시중들다는 그 말의 본래 뜻이 시사하는 대로 지근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따르라는 말도 공간적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예수를 섬기려 하는 사람은 그와 한 공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현재 어떻게 가능할런지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가 현재 어디 계신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오시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에게 그와 같이 있을 기회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가 약속한 보혜사 성령은 그가 우리와 함께 하는 한 가지 방식일 수는 있어도 그는 우리가 섬길 수 있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 구절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요? 그는 자신이 이 땅에 어떻게 있는지를 알려준 적이 있는지요?

▲ 작자미상, “Cristo divide le pecore dai capretti”(6th century), Mosaic. ⓒSource/Photographer: Sant'Apollinare Nuovo, Ravenna, Wiki Commons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마지막 심판 비유에서입니다. 여기서 그는 약자들에게 한 것이 곧 자기에게 한 것이며, 이것을 심판기준으로 삼으십니다. 약자를 '섬기는' 것이 예수를 섬기는 길이고 약자와 함께 있는 것이 그가 계신 곳에 있는 방법입니다.

일찌기 잠언에서 하나님은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을 그를 지으신 창조주를 멸시하는 것이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자기와 결합시켜 말씀하십니다. 약자에게서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약자에게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약자는 하나님과 우리, 예수와 우리를 현재적으로 연결짓는 다리와 같습니다. 더나아가 약자는 하나님의 존중과 벌이 결정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가 계신 곳은 하늘도 바다 건너도 아닙니다. 약자들의 소리 속에, 그들의 고통 속에 예수는 계십니다. 거기서 자기를 섬기는 자들을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지나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 속에 계시는 주님입니다. 따라서 그가 계신 곳을 찾아 헤매거나 그를 섬길 방법을 고안해낼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계신 곳에서 주님을 뵙고 주님을 섬기는 충만한 오늘이기를. 약자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사랑과 함께 커져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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