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신에 대한 인간 이성의 콤플렉스허무주의 시대 신(神)의 자리-베른하르트 벨테의 종교경험에 대하여(4)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19.04.07 17:40

베른하르트 벨테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신 또는 신적인 것에 대한 경험을 확신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탐구했다. 그것은 근대의 “세속화”에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그로 인해 오늘날 서양의 “우리들”은 신의 “있음”에 대해 명백하게 말하지 못한다.

즉 있다고도, 그렇다고 없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종교적 경험”은 우리들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종교적 경험이 아무 것도 없음으로 변할 때

그런데 벨테는, “종교적 경험”의 멀어짐 내지 부재가 경험될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어떻게든 “종교적 경험”과 관련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본다. 벨테는 “종교적 경험”이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경험한 증인들로서 브레히트(Bertolt Brecht)와 리지외의 테레사 수녀를 든다.

이 두 사람에게서 특징적인 점은 “떨어져 나감 그 자체”가 경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 “떨어져 나감”이 “아무것도 없음”으로서 경험되고 있다. 벨테는 이러한 “종교적 경험”의 떨어져 나감을 본래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종교적 경험”을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1)

인간 이성의 “전능 콤플렉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종교적 경험이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빠져나가는가? 벨테는 그 이유를 “근대의 자율적 이성의 지배”, 베버(Max Weber)의 말로써 말하자면, “목적 합리적 이성의 지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벨테에 따르자면, 근대 이성은 “과학과 기술”의 형태로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있다.

▲ 미국 화폐 1달러 뒷면에는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우리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신이 사라진지는 오래 되었다. ⓒGetty Image

벨테 자신은 “과학과 기술 자체”가 종교적 문제에서는 완전히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과학과 기술” 속에서 작용하는 “근대적 이성”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그는 하이데거가 기술의 본질로 밝혀낸 “몰아세움(닦달) 개념” 또한 이러한 이성의 숨겨진 본질을 드러내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벨테에 따르자면, 하버마스는 과학과 기술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목적 합리성”이 산업화와 더불어 우리들의 오늘날의 삶, 즉 “생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계산적 또는 합리적 이성”의 지배력이 확산됨으로써 모든 것, 즉 전체 세계는 “조절 가능하고 지배 가능한 것”으로서 고찰되어 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은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2)

벨테는 만일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과학과 기술 자체”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사용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그 이데올로기는 신에 대한 인간의 콤플렉스로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즉 인간이 신처럼 전능해지고 싶어하기 때문에 빚어진 가상의 산물로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능 콤플렉스”가, “근본적으로 과학적, 기술적 그리고 합리적으로 규제하고 성취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주어질 수 없다고 믿게 만든다는데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가상이 과학적·기술적이지 않은 경험의 지평을 차단해 버림으로써 “종교적 경험”의 영역까지 닫아버린다는데 있다.(3)

늪 위에 세워진 거대한 인간 이성의 탑

오늘날 “우리들”은 기술화에 대한 불안감과 기술화된 세계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끼며 살아간다. 벨테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의미 문제”로서 규정하고 있다. “의미 문제”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와 같은 형식으로 물어짐으로써 결국 “전체에 대한 문제”인 셈이다.

“의미 문제”가 문제되고 있다는 것은 경험의 영역을 선택적으로만 인정하는 “근대적 이성”을 넘어선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넘어섬”은, 근대적 이성의 눈으로 보자면, “무(아무것도 없음의 영역)”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과도 같다. “목적 합리적, 과학적, 기술적 문명”의 한가운데서 실행되는 이러한 “뛰어내림”은 “어떤 것에도 매달릴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현대 문명 자체가 사실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포퍼(Karl R. Popper)는 현대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과학이 늪 위에 세워진 기둥 위에 건설되어 있다고 본다. 벨테는 이러한 문명 비판 내지 현대 비판에 바탕해 오늘날의 근본적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오직 밤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4)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오늘날 우리들 자신의 “있음”의 첫번째 토대 내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종교적 경험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주

(미주 1) 참조. Bernhard Welte, Das Licht des Nichts (아무것도 없음의 빛), Düsseldorf 1980, 22 이하.
(미주 2) 참조. 같은 책, 26 이하.
(미주 3) 참조. 같은 책, 26.
(미주 4) 참조. 같은 책, 36.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55(충정로 2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 생명의집 204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