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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그 사건이 시작된다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4.14 19:1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 기록에 따르면,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 아래 있다.(갈라디아서 3,13)

바울은 이 문맥에서 '저주'라는 말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사건을 해명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히브리어 본문을 일반화해서 옮긴 70인역의 본문을 인용합니다. 이는 본래 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의 길이 앞에 있으니 복과 생명의 길을 선택해서 살라는 '권고'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에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그들의 '아멘'은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의'의 관계를 그의 말을 지킴으로써 계속 유지하겠다는 '믿음의 서약'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살지 못했고, 그 점에서 '저주 아래'  있다는 선언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선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또 그로 대표되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렀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문은 이스라엘이 그에게 돌아오면 그들에게 열릴 것입니다.(신 30,1-10)

▲ 십자가의 저주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 ⓒGetty Image

성서에서 '의인'이란 그러한 약속을 믿으며 그 믿음으로 삶을 이끌어감으로써 그 믿음을 입증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그 방향이 정해진 삶은 미래지향적이며 기다림을 품은 삶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곧 '의'가 낳는 그 기다림 '끝'에 그 기다림을 넘어서는 그리스도 사건이 있습니다.

(율)법 앞에서 경험되는 인간의 한계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법의 요구가 완성될 수 있다는 희망이 그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죽음으로 돌파된 그 한계는 더이상 한계일 수 없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삶! 이것이 그리스도가 섬기는/시중드는  자(디아코노스)로서 섬김(디아코니아)을 통해 이룬 속량의 목표입니다. 이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 사건에서 흘러나오는 희망이 우리를 흠뻑 적시는 오늘이기를. 우리 곁에서 '시중드시는 분' 주님과 함께 우리의 한계를 넘어가는 은총의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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