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예수, 노동자와 지주 사이의 줄타기Q복음서의 노동자 (2)
김재현 교수(계명대) | 승인 2019.05.10 19:27

지난 글에서 Q10:2, 7절에 대한 주석을 소개했었다. 이번 글에서는 독일의 신약성서학자 아나타시우스 폴락(Athanasius Polag)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Q10:2에 대한 폴락(A. Polag)의 설명은 이 구절을 선교의 관점이 아닌 노동의 관점에서 보는 시야를 열어 놓는다.

Q10:2과 Q10:7b에 나타난 팔레스타인의 일상

폴락은 Q10:2에 “팔레스타인의 일상생활의 행태로부터 유래한 상”(Bild aus dem palästinischen Alltagsleben handeln)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그는 “큰 규모의 추수에는 많은 수의 일용직 임금노동자들이 필요했다”(Eine große Ernte verlangt eine große Zahl von Lohnarbeitern)고 말한다.(1) 폴락은 당시 팔레스타인의 일상생활 행태와 당시 일용직 노동자들의 생활을 이 구절의 배경으로 제시했지만 더 자세한 분석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Q10:2과 Q10:7의 말씀에 등장하는 인물은 추수의 주인과 노동자이다. 먼저 1세기 팔레스타인의 정황에서 이들의 사회사적 면모를 추적할 필요가 있다. 1세기 팔레스타인의 사회적 정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자료는 예수의 비유이다.

“추수의 주인”은 대토지를 보유한 ‘지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공관복음서에서 ‘주인’이 언급된 비유는 막12:1-12; 마21:33-46; 눅20:9-19 등이다. 비유에서 ‘주인’은 “자신은 외국에 살면서 그의 토지들을 임대해 주었거나 한 관리인에게 맡긴 부유한 대토지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2)

이들은 장기간 농지에서 떠나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재정관리인을 두어야 했다. Q10:2과 Q10:7b에 등장하는 노동자는 추수의 상황을 고려할 때 추수꾼(θεριστης. 테리스테스)일 가능성이 높다. 마13:30에 추수꾼이 언급되는데 이 추수꾼은 일용직 노동자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3)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μισθιοι(미스토이)라고 불렀다. 독일 신약성서학자 에케하르트 슈테게만과 볼프강 슈테게만은 일용직 노동자를 지중해 지역의 사회계층 중 하위계층에 포함시킨다. 이들은 하위계층을 상대적으로 빈곤한 자와 절대적으로 빈곤한 자로 구분하는데, 일용직 노동자들은 절대적으로 빈곤한 자들(πτωχοι, 프토코이)의 부류에 속한다.

▲ 어느 시대나 농업에 종사하는 농부들의 삶은 고달팠다. 결코 낭만적일 수 없다. ⓒGetty Image

절대적으로 빈곤한 자들 가운데는 “시골의 소농, 소작인, 날품팔이, 떠돌이 수공업자들”이 포함되었으며, 이들은 “임대 건물에 들어가서 살 형편도 못되어 다리 밑이나 발코니 밑, 혹은 주택 구획의 창고 등에서 겨우 살아가야 했다.”(4) 베일리는 이들이 농노(δούλοι, 둘로이)나 종(παιδες[파이데스], 농노보다 더 낮다)보다 더 낮은 계층에 속한다고 보았다.(5) 뵈젠(W. Bösen)은 μισθιοι의 삶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μισθιοι는 날품팔이(필자: 일용직 노동자)를 의미하는데, 그는 δουλοι와는 달리 자유롭긴 하지만 그러나 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동력 이상의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이 노동력을 하루, 하룻밤, 단지 시간당으로 빌려준다. 한 데나리온의 일일품삯으로, 부분적으로는 급식으로도 그는 그에게 제공되는 모든 일들을 떠맡는다.

신명기 24장 15절은 고용주에게 그가 지불해야 할 품삯을 “같은 날 태양이 지기 전에” 지불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난해서 그것을 받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고용주를 찾을 희망에서 일일품꾼은 이미 이른 새벽 해뜨기 전에 고대의 물품들과 사람들의 거래 장소인 시장으로 간다.

수확기에 일이 몰려들면 고용전망은 좋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는 너무나 자주 저녁에는 비유에서처럼 다음과 같이 체념하는 대답을 듣게 된다.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않았다.”(6)

포도원의 일용직 노동자들의 비유(마20:1-16)는 그들의 삶을 잘 묘사해 준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잘 얻지 못했다. “이 비유는 실업의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다.” 추수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높은 것은 대토지 소유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Schottroff, 1984, 130). 일용직 노동자들은 발달한 농경 사회에서는 소모적인 존재였다.

그들에게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쾌하고, 잔인했다. 그리고 그들은 단명했다(Herzog, 189). 비유를 보면, 주인은 이른 아침에 일용직 노동자들과 한 데나리온의 임금을 계약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법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예레미아스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한 데나리온 이외에 식사가 제공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쇼트로프는 주인인 일용직 노동자에게 채소 식단을 차려 주는 것은 의무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추수 기간에만 음식을 제공받았다(Schottroff, 134). 추수가 이루어지는 계절에는 대략 아침 6시에 해가 떠서 저녁 6시에 해가 진다. 예수 당시 유대 임금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대략 10시간 가량으로 생각되었고, 그들은 매우 무더운 한 낮의 무더위를 견뎌야 했다.(7)

Q10:2과 Q10:7b에서 예수는 무엇을 말하는가?

Q10:2과 Q10:7b의 두 전승은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예수의 말씀을 담고 있다. Q10:2에서 예수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노동자가 부족한 노동 현장의 상황을 말한다. 추수의 주인은 작은 수의 노동자들에게 많은 노동을 맡겨 적은 돈으로 가능한 한 많은 노동력을 짜내어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에 예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대변하며 적당한 노동력의 배분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예수가 무턱대고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 것은 아니다. 예수는 “그의 추수를 위해”라는 구절을 덧붙인다.

이 말은 노동 조건을 개선시키고 더 많은 노동자를 투입하는 것이 주인에게도 이익이라는 말이다. “그의 추수를 위해”라는 말씀은 예수가 단순히 이상적으로 노동자를 대변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예수는 현실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Q10:7b은 그야말로 노동자의 권리 선언문이다. Q10:7b는 품삯(μισθος)을 언급하고 있다. 품삯에 대한 언급은 전승된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노동자가 일용직 노동자(μισθιοι)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한다.

미국 신약성서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J. D. Crossan)은 Q10:7b의 원래 본문은 품삯이 아니라 음식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8) 그는 품삯(Q10:7b?/딤전5:18)에 비해 공동식사(도마복음14:2; Q10:7;막6:10)와 음식(고전9:4; 마10:10b; 디다케13:1; 구세주와의 대화53b)이 등장하는 본문이 더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음식이 옳다고 판단한다.(9) 하지만, 빈번한 등장은 결코 진정성의 기준이 될 수 없다.

Q의 원문이 품삯으로 재구성되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10) 크로산은 선교적 맥락에서 Q10:7b를 파악하려 했기 때문에 오류에 빠지게 된 것이다. Q10:7b 전승은 크로산의 견해와 달리 일용직 노동자의 삶의 자리에서 발생한 것이다.

Q10:2과 Q10:7b를 선교에 초점을 둔 편집의 맥락에서 벗겨내면 노동자, 특히 일용직 노동자에 대한 예수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예수는 그들의 과중한 노동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불합리한 노동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추수의 주인에게 더 많은 노동력을 보내어 달라고 요구하는 말씀을 전해 주었다.

또한 예수 말씀은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혹사당한 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노동자를 대변하는 주장을 전해준다. 이 두 말씀에서 노동자의 조건과 권익을 옹호하고 그들의 편을 들었던 예수의 입장을 읽을 수 있다.

미주

(미주 1) Athanasius Polag, Die Christologie der Logienquelle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77), 71.
(미주 2) W. Bösen, 『예수시대의 갈릴래아: 예수의 생활공간과 활동영역으로서의 갈릴래아에 대한 시대사적․신학적 연구』(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8), 319.
(미주 3) Ibid., 335.
(미주 4) 이상, Ekkehard. W. Stegemann and Wolfgang Stegemann,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손성현, 김판임 공역 (서울: 동연, 2009), 161-162.
(미주 5) K. E. Bailey,『시인과 농부』, 오광만 역 (서울: 여수룬, 1998), 350-351. 베일리는 여기에서 외스터리(Oesterley)의 글을 인용한다. “품꾼은 외인이었다. … 그는 단지 필요할 때 채용된 일용직 노동자에 불과하였다. … 그러므로 그의 위치는 그들과 달리 자유롭기는 하였으나 불안하였다. …”
(미주 6) W. Bösen, 『예수시대의 갈릴래아』, 330-331.
(미주 7) Simon J. Kistemaker, 『예수님의 비유』, 김근수, 최갑종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108.
(미주 8) J. D. Crossan, 『역사적 예수』, 김준우 역 (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12), 543.
(미주 9) Ibid., 546.
(미주 10) Hoffmann, Studien, 248; Schulz, Q, 406, 417; D. C. Allison, The Jesus Traditon in Q (Harrisburg, 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105; H. T. Fleddermann, Q: A Reconstruction and Commentary (Leuven, Paris, Dudley, MA: Peeters, 2005), 412.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보상과 음식”보다 “품삯”을 선택하는 이유는 “보상과 음식”이 마태의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김재현 교수(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재현 교수(계명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55(충정로 2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 생명의집 204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