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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씨줄과 날줄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6.02 16:36
(야훼가 분노하시는 날이 오기 전에) 세상의 모든 피압박자들아 야훼를 찾아라 야훼의 정의를 행하는 자들아 공의를 찾고 겸손을 구하라. 야훼가 분노하시는 날 너희는 혹시 숨겨질 것이다.(스바냐 2,3)

세상은 늘 야훼의 인내와 자비를 시험하는 것 같습니다. 야훼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시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나라를 그다지 달가와하지 않는 듯합니다. 불의와 양극화를 기초로 삼는 세상 나라가 더 매력적이어서 그럴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매력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분노를 참으며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하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시대시대마다 경고합니다.

그 경고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의 경고가 그때그때마다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이 없으면 자발적으로 '선'을 찾지 않는 것이 사람의 어찌할 수 없는 경향일까요?

▲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Getty Image

세상의 매력이 권력과 부와 이름인가요?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서라도 얻으려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그 권력과 부와 이름이 그의 주권 아래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것을 견딜 수 없고 그러한 상태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기대를 갖지 않으신 듯 그들에게 억압당하고 희생당하는 이들에게 눈길을 돌리시고 야훼를 찾으라 하십니다. 야훼께서 그들의 피할 곳이 되시고 그들의 위로가 되시리라는 희망의 권고입니다.

피압박자들이기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그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소수일지 모르지만, 법을 지킴으로 그의 정의를 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에게 공의를 찾고 겸손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왠 일일까요? 하나님의 '정의'는 법적 행위 이상의 것입니다. 법적 정의가 날줄이라면, 측은지심의 공의가 씨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이 합쳐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집니다. 정의는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것인데 사람 사는 '세상'이 잊혀지면 목적 잃은 정의는 싸늘한 무기와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만 내세우는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하기에 정의를 행할 때 하나님은 그리 하는 사람에게 심판날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새세상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속에 따뜻한 측은지심을 품고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오늘이기를. 하나님의 경고에 귀기울이고 공의를 찾고 겸손을 구하고 평화를 이루어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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