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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전사 김일성_혁명영화 『민족의 태양』(3)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38)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19.06.05 19:17

Q: 주체사상의 신화에는 무엇이 있나요?(7)_혁명영화 『민족의 태양』(3)

A: 지난 연재들에서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의 창작배경인 ‘민족’ 강조와 ‘조선민족제일주의’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연재에서는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은 총 5부로 만들어졌지만 제5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편과 후편으로 이루어져 실제로는 일반적인 북한영화 9편 정도의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혁명영화 『조선의 별』 10부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김일성 장군님은 민족의 태양이었다.’인데,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은 이 내레이션에서 나온 ‘민족의 태양’이라는 구절을 제목으로 차용할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시기를 이어서 다루고 있습니다.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 1부 「준엄한 시련」은 1934년 봄으로부터 1년간이 시대적 배경입니다. 김일성이 일제의 대대적 토벌과 와해 공작으로 말미암아 위기에 처했던 조선혁명을 ‘구원’하는 ‘혁명력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조선혁명의 책원지인 동만유격근거지를 와해 압살하려는 일본제국주의의 모략에 기만당한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수많은 애국적 인민들과 혁명군중을 ‘민생단’으로 몰아 검거 투옥하고 무참히 학살하는 ‘망동’을 부리는 것을 배경입니다.

‘수령’ 김일성이 혁명적 원칙성을 견지하면서 일제의 군사적 공세와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좌경적 책동을 단호히 분쇄하고 조선혁명을 ‘구원’하는 과정을 형상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조선인민혁명군 원정부대를 인솔하고 북만 원정을 단행하여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을 벌여 혁명의 씨앗을 뿌립니다. 또한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북만의 눈보라 속에 혹한을 만났으나 무사히 동만유격근거지로 귀환하여 ‘반민생단 투쟁’을 극좌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범죄적 책동을 준열히 폭로 규탄하는 조선혁명의 ‘구원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 2부 「대하와 거품」은 1935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합니다.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의 발전적 요구에 맞게 유격구를 해산한 다음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이끌고 2차 북만 원정을 단행하여 전반적 조선혁명을 이끈 ‘혁명력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1935년을 맞아 조선인민혁명군의 급격한 장성에 당황한 일제는 혁명의 보루인 유격근거지를 초토화하려고 관동군과 조선주둔군의 대병력을 총동원하여 토벌에 나섰습니다.

▲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 2부 「대하와 거품」의 한 장면 ⓒGetty Image

한편 종파사대주의자들은 김일성이 제시한 조선혁명의 ‘주체적 로선’에 도전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과 종파적 목적을 달성해보려고 극좌적 ‘반민생단 투쟁’을 비롯한 온갖 책동을 다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파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자, ‘혁명의 수뇌부’를 해치려는 ‘무서운 음모’까지 꾸미게 됩니다. 바로 이 때 김일성은 ‘요영구 회의’ 방침에 따라 유격구를 주동적으로 해산한 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인솔하여 제2차 북만 원정을 단행하며 적극적인 공세로 넘어가 ‘조선혁명의 주체적 로선’을 관철하여 나갑니다.

김일성은 해산되는 유격구를 떠나 적구로 넘어갈 노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식량 공작대’를 파견하여 양식과 여비를 마련해 나누어줍니다. 김일성은 위만군 연대장 부부를 교양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적극 돕도록 하며 자살한 ‘종파분자’의 처에게 혁명의 뜻을 깨우쳐주며 혁명대오로 이끌기도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수령’ 김일성이 ‘비범한 사상적 예지’를 가지고 ‘주체적 로선’에 따라 ‘조선혁명의 진로’를 개척해 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노인과 아이들을 돌보는 ‘수령’의 ‘공산주의적 덕성’을 예찬하고 있습니다.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 3부 「광복의 봄」은 1936년 2월의 ‘남호두 회의’로부터 1936년 5월의 ‘동강 회의’에 이르는 기간을 시대적 배경입니다. 김일성이 ‘전민족의 단합’을 이룩하는 문제를 혁명 승리의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조국광복회’ 창건을 위한 투쟁을 통해 ‘민족대단합’을 이룩하는 ‘혁명력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국제무대에서 파시즘이 등장하고 그와 야합한 일제가 대륙침략에 공공연히 나섰던 당시의 정세에서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벌려야 할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우리나라의 첫 상설적 반일민족통일전선’인 ‘조국광복회’를 창건할 ‘주체적 혁명로선’을 제시합니다. 김일성은 “우리나라에 합법적 정당, 사회단체들이 없더라도 여러 가지 반일 지하조직들과 광범한 애국력량이 있으며 조선인민혁명군 당 위원회가 있는 조건에서 통일전선을 이룩하는 것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요구”라고 하면서, 반일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합니다.

김일성은 ‘남호두 회의’에서 제시한 방침에 기초하여 국경지대에서 조국광복회를 창건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다그치던 지하공작 책임자들과 핵심들을 사령부로 부릅니다. 한편, 많은 공작원들을 원산, 서울, 단천, 흥남 등지로 떠나보냅니다. 그리고 ‘조국광복회 창건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그들을 지도합니다.

‘수령’ 김일성은 ‘반일민족통일전선’인 ‘조국광복회’ 창건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지도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단지 ‘공산주의자들의 지도자’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전민족의 단합’을 이루어내는 ‘민족의 지도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 4부 「백두밀영」은 ‘력사적인 동강 회의’가 있은 직후의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합니다. 김일성이 ‘백두산 비밀근거지’를 창설하고 항일무장투쟁을 국내로 확대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새로운 유격 근거지 창설 문제를 ‘전반적 조선혁명을 밀고 나가는 데서 중요한 전략적인 문제’로 보고 이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합니다.

새로운 밀영 후보지를 선정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파견원들을 국내로 보냅니다. 그러나 일제의 준동으로 이 임무는 수행되지 못합니다. 김일성은 백두산 밀영을 창설하기 위한 투쟁을 백두산 서북부와 서남부의 일제를 제압하기 위한 관건적인 문제로 보고 이 사업을 진두에서 지휘합니다.

그 결과 백두산에 조선혁명을 이끌어 갈 ‘백두산 밀영’이 창설됩니다. ‘수령’ 김일성은 일제를 타도하고 조선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백두산 밀영’을 창설한 장본인으로 그려집니다.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 5부 「붉은기 아래」는 김일성이 ‘조국광복회’를 창건하고 ‘백두산 밀영’을 창설한 이후의 시기를 시대적 배경입니다. 김일성이 ‘정치공작원’을 파견하여 국내 도처에 ‘당조직’을 꾸린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1930년 카륜에서 첫 당조직을 세운 후 온성 지구당 조직을 결성하기 위해 남양산탄에 도착해서 ‘온성 지구당 소조’를 결성하고, 차광수, 김혁, 한영애 등이 만든 ‘붉은 기’를 그들에게 수여합니다.

‘조선혁명만세!’라고 수놓인 불은 기를 받은 국내 첫 당조직 성원들은 이 깃발 아래 희생적으로 싸움을 전개합니다. ‘수령’ 김일성은 일제를 몰아내고 조선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전위대인 ‘당조직’이 국내 도처에서 결성되도록 ‘지도’합니다. 몸소 ‘온성 지구당 소조’를 ‘결성’한 ‘조선혁명의 지도자’로 그려집니다.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은 ‘조선민족의 구원자’로 ‘수령’을 묘사하고, 조선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수령의 거룩한 발자취’를 ‘위대한 수령의 혁명 력사’로 예찬하기에, 주체사상의 ‘신화적 차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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