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성서
“잡초 같은 씨알이길”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07.22 18:04
“18 너희는 이제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무슨 뜻을 지녔는지를 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를 두고 하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가에 뿌린 씨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 또 돌짝밭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하고,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22 또 가시덤불 속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그런데 좋은 땅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 사람이야말로 열매를 맺되,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결실을 낸다.”(마태13:18~23/새번역)

주님께서 많은 이들을 가르치시고 기적도 보여주셨지만 깨닫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사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까지 몇이나 깨달았습니까. 부지런히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하고 씨를 뿌리시는데 결실이 드문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비유가 선포됩니다. 또한 마태공동체에서 기록되고 선포될 때도 비슷한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끊임없이 행함의 열매를 강조합니다. 강조하는 것은 종종 부족한 것입니다. 공동체 안과 밖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데 열매가 드물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맥락 안에서 볼 때 이 비유는 열매 없는 믿음들을 향한 의미 있는 대답이 됩니다.

▲ 김봉준, “쟁기질” ⓒhttp://www.art500.or.kr/da/detailArts.do?CONTENT_ID=20150319082717836239&INDIV_MANAGE_ID=P0000064#artsinfo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대답과 위로가 되는 삶의 자리는 어디이겠습니까? 수많은 설교를 하는데, 혹은 들어왔는데 그에 합당한 열매가 너무나 가물어 보일 때, 물음이 솟아오릅니다. “주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설교를 전했는데, 사람들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설교에, 예배에 의미가 있기는 있는 것입니까? 단지 설교가 부족한 탓일 뿐입니까? 수많은 설교에 감동하여 아멘과 눈물로 답했건만 삶은 제자리, 아니 뒷걸음입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런 물음이 무겁게 다가온다면, 이 비유는 대답이 됩니다. 주님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베풀었지. 병을 고치고 귀신을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지. 그리스도라 불리는 내가 해도 길가 같은 이, 돌짝밭 같은 이, 가시덤불 같은 이가 있었다. 알고 있었지. 그래도 하나님 모든 존재에게 비와 햇살과 바람을 주시니, 그 길을 따라갈 수밖에. 농부야, 밭 갈고 거름 준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리지만, 사랑은 차별이 없는 길이니. 주님의 사랑을 따라 차별 없이 씨 뿌리는 행복을 누릴 수밖에 없더구나. 결실은 기르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이의 품에 맡길 수밖에 없더구나.”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깨닫습니다. 길가 같이 단단한 마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돌짝밭 같은 마음, 뿌리가 깊지 못해 환난과 박해에 넘어진 탓입니다. 가시덤불 같은 마음, 욕망과 두려움에 눈 어두워 메마른 탓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각자의 한계를 정죄하기 어렵습니다. 이해되고 안쓰럽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돌아볼 때, 제 마음도 길가 같을 때, 돌짝밭 같을 때, 가시덤불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어떤 밭에게든 말씀의 씨알을, 사랑의 씨알을 끊임없이 뿌려주십니다. 그 은총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좋은 땅을 사모하게 하십니다. 스스로 먼저 좋은 땅이 되어야겠습니다. 주님처럼 어떤 밭에게든 생명의 씨알을 전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씨알을 전해주려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씨알은 자신이 맺은 열매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하던지 혹은 듣던지, 그 말씀을 자기 마음 밭에 먼저 심고 키워야만 합니다. 자기 마음에서 거둬들인 열매가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씨알, 그 알짬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밭에게라도 다 전해주고 싶다면, 씨알이 중요합니다. 길이든, 밭이든, 덤불 속이든 씨를 전해주고 싶은 사랑은 잡초 같은 씨알을 거두려 합니다. 어디서든 뿌리내려 자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을 좋은 땅으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좋은 땅에서 좋은 씨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좋은 땅은 마태복음 내내 그려주는 ‘행하는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믿음이 반석이요, 좋은 땅입니다. 행함으로 자신과 이웃의 삶에 씨알을 뿌리는 손길이 바로 옥토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이해학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