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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천국’, ‘좀 더 큰 천국’, ‘가장 큰 천국’성령강림후 일곱째주일(7월28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7.26 18:46

1. 새로운 관계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의 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기회는 평등한가요? 과정은 공정합니까? 결과는 정의로운가요? 아직도 헬조선입니다. 최근에 나온 책, 『386 세대유감: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고의를 묻다』 (웅진지식하우스, 2019)는 바로 이러한 원인에 대한 분석입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바로 386세대의 잘못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이 책은 386세대가 걸어온 40년간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들의 공과 과를 따져 물었습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20대에 정의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향해 싸우다, 30대에 고임금과 부동산,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중산층에 진입하고, 40대에 경제위기의 파고에도 승승장구해 사회 중추 세력이 되었으며, 50대에 우리 모두의 머리 꼭대기에 선 그들, 386세대! 이들의 목표와 삶의 지향점이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였습니다.

그러나 20대에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그 후광으로 30대에 정계에 진출했으며, IMF의 파고 덕분에 윗세대가 사라진 직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40대에 고임금과 부동산으로 빠르게 중산층으로 진입하고, 자신들만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통해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386세대는 정말 자신들이 꿈꿨던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었나요?

그들이 만든 현재의 대한민국은 비정규직 양산, 취업난, 사교육 폭발, N포세대, 부동산 공화국이란 말로 들끓는 ‘헬조선’입니다. 입으로는 정의를 말하면서도 정치와 사교육, 부동산에선 철저히 자기 이익을 추구했던 386세대의 ‘미필적 고의’를 물으며,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당신들에게 걸었던 기회를 회수하겠다!” 말과 구호뿐인 정의와 평등, 공정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세상에 당신들의 야누스적(이중 인격적)인 품성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말과 실천(행동)이 다른 사람은 새로운 세상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여호와의 날’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가올 여호와의 날은 다른 말로 천국과 지옥의 선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빛이 아니라, 어둠의 날입니다. 그 날은 환난의 날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심판의 날, 지옥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받은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해 서머나 교회처럼, 지금의 환난과 궁핍, 그리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천국을 살아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물론,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위로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말로만이 아니라, 진정 가회가 평등한 세상, 공정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심판과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모든 민족을 양과 염소의 구분처럼 구분하여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구약성서 미가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많은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겠다는 말씀인데, 그 결국은 평화의 나라입니다. 마지막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비유되는 ‘옳은 행실을 행한’ 세마포를 입은 성도들의 잔치입니다. 결국 성령 받은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가 심판을 피하고, 평화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2. 양과 염소의 구분: 작은 천국

<양과 염소의 비유>

심판의 날은 양과 염소의 구분으로 비유됩니다. 너무 쉬운 비유이기에 말씀을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 곧 여호와의 날에 관해 하신 말씀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릅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4b-36).”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릅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마 25:41b-43)

그러자 의인들과 저주를 받은 자들이 각각 이렇게 외칩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마 25:37-39)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마 25:44)

그러자 임금이 의인들과 저주받은 자들에게 각각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b),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마 25:45b)

그렇습니다. 천국과 지옥 가는 길은 돈으로, 벼슬로, 명예로, 지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푼 사랑과 배려로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곧,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곧, 난민),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그리하셨습니다.

가령, 복음서를 보면 유대의 종교지도자와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할 때, ‘먹보와 술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공동체가 종교적인 금욕을 지키지 않고, 먹고 마시고 즐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민중들은 안식일조차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주리고 목말랐기에, 율법의 계명을 지키기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헐벗고, 병들었기에,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 시간이, 그렇게 살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옥에 갇히기도 하고, 떠돌이 난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종교 장사치들, 곧 율법을 지키며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이들보다,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밥상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고 보았습니다.

 

<고상균,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 (꿈꾼문고, 2019)>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 (꿈꾼문고, 2019)의 저자인 고상균 목사는 이것을 현대적으로 이렇게 비유합니다. “지금으로 보면 둘러앉아 맥주 한 잔 마시는 자리가 해방의 자리이죠. 술을 극도로 경계하는 종교는 대체로 상태가 좋지 않은 종교입니다. 아이에스(이슬람국가)를 보세요. 술에 대한 금기는 교회 보수성의 한 상징입니다. 술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 교회사도 제대로 보이고, 교회의 사회적 공공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이 책은 유럽 수도원 양조장에 뿌리를 둔 맥주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부패와 부조리, 그리고 교회 개혁과 수도원 운동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수도원 계통의 맥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맛과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수도사들의 열정과 땀방울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얻어낸 독과점과 경쟁 우위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고상균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더위와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쌓인 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맥주를 마시자! 그 향긋하고 쌉싸름하며 구수하기까지 한 음료는 우리들을 당장에 낙원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환상적인 액체가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떠올려보았으면 한다.”

무슨 말인가요? 맥주의 역사를 통해 고상균 목사는 인간을 보았습니다. 역사에서 지워지고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 그러나 마침내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내고 세상을 떠받치는 이름 모를 민중의 역사를 보았던 것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성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곧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차별받고 당연히 지워지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을 잊지 말자는, 잊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더디더라도, 어렵더라도 이런 세상을 같이 한번 바꿔보자는 제안입니다.

따라서 천국은 거룩하고, 영성 깊고, 품위 있고, 경건한 자들의 의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못 먹고 못 배우고, 못 살고, 나라 빼앗긴 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으며, 형제애로, 사랑으로 하나가 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전자는 지옥이고 후자가 천국이죠? 염소의 자리와 양의 자리입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과 의인의 길의 차이입니다. 본문 말씀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막 25:46)

3.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좀 더 큰 천국

복음서의 말씀이 이렇게 ‘작은 천국’을 보여준다면 구약의 말씀 미가서는 ‘좀 더 큰 천국’을 들려줍니다. 잘 아시다시피, 미가는 항상 아모스와 함께 불립니다. ‘아모스와 미가’, 물론 이사야와 호세아와 함께 불려, 주전 8세기 예언자 그룹을 이룹니다. 사실 주전 8세기는 통일 왕국인 다윗과 솔로몬 시대처럼 정치적,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던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 2세(주전 786-746년, 왕하 14:23-29 참조)가 통치를 했으며, 유다에는 웃시야(주전 783-742년, 왕하 14:21-22; 15:1-7; 대하 26:1-23 참조) 왕이 통치하였습니다. 대략 기간을 보니, 40여년 정도 됩니다.

남북의 이 두 왕이 다스린 40여년은 정치, 경제적 호황기였지만, 두 나라는 공통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이웃 나라들의 우상을 섬기고, 이웃 강대국들과 조약을 맺고, 그들을 의지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풍요 속에서 타락하고 있었던, 주전 8세기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아모스와 호세아를 보내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고, 남 유다에는 이사야와 미가를 선택하시어 예언자로 부르셨습니다.

특별히 미가는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다수의 가난한 백성들이 억눌리고 시달리는 현실에 분노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의지 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하며, 동족을 억압한 결과 북왕국 이스라엘은 721년에 앗수르에, 남 유다는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었던 것입니다.

미가서 말씀 전체를 보자면, 먼저 1장에서 남북 왕조의 멸망을 선포하고, 2장과 3장에서는 종교와 사회 지도자들의 타락상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4장부터 마지막 7장까지는 예루살렘의 회복과 최후 승리를 언급합니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본문 말씀을 볼까요?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미 4:1-2)

끝날(בְּאַחֲרִ֣ית הַיָּמִ֗ים, 베아하리트 하야밈)은 말 그대로 종말의 날입니다. 본문의 맥락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의 멸망의 날이며,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입니다. 그날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설 것이며, 많은 이방 민족이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도)을 배우기 위해, 열국이 여호와 앞에 몰려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십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미 4:3-4)

미가는 장차 임할 여호와의 날에 관해 예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심판하고 판결하실 터인데, 그 판결과 심판의 결국은, 전쟁의 도구인 칼과 창을, 농기구인 보습(땅을 갈아 흙덩이를 일으키는 데에 쓰는 삽 모양의 쇳조각)과 낫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들과 나라들이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게다가 각 사람은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평안히 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힘 있는 자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지배하며 약탈하지만, 여호와의 날, 곧 심판의 날에는 의롭고 공평하신 메시야가 통치함으로 참된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4. 파르데스와 파라데이소스: 가장 큰 천국

<13세기 히브리어 성경 삽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있는 ‘암브로시우스 도서관’(Biblioteca Ambrosiana)이 소장하고 있는 13세기 히브리어 성경의 삽화입니다. 이사야 65장 25절의 말씀을 삽화로 그린 것입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다시 말하면, ‘낙원(פרדס)’ 모습을 그려준 것입니다. 파르데스는 ‘과일나무가 무성한 정원’을 뜻합니다. 숲이나 과수원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가령, 아가서에서 “네 수로는 석류나무들의 ‘과수원(파르데스)’에 물을 주어 맛있는 과일을 내니(아 4:13)”와 같이, 천국은 과수원을 뜻합니다. 이 파르데스는 태초의 에덴동산과 다가올 종말의 때의 천국정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파르데스가 기원 전 3~1세기 때 그리스어 ‘파라데이소스(paradeisos)’로 번역이 되었고, 영어의 파라다이스(paradise)가 되었습니다. 물론, 히브리어 파르데스는 고대 페르시아어인 ‘파이리다에자’(pairidaèza)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파이리다에자는 ‘둘러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페르시아에는 ‘왕의 즐거움을 위한 광활한 동물원이나 식물원’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 문화로 전해져 인간의 종말에 약속된 구원의 장소인 천국으로 바뀐 것입니다. 곧, “사자와 양이 함께 어울리며 평화롭게 사는 곳”이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그림을 보니, 동물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그림입니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지 않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으니, 천국입니다. 요즘 언어로 표현하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일본의 아베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둘러 앉아, 평화롭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 ‘조금 더 큰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호모 사케르’로 유명한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이 삽화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암브로시우스 도서관에 소장된 필사본의 예술가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동물의 머리를 얹힘으로써 다음과 같이 주장하려 했다고 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주장은 이렇다. 최후의 날에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새로운 형태를 띨 것이며,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동물적 본성과 화해하리라.”

아감벤은 동물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세계의 종말, 역사의 종언 보다 더 중요시 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물론,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는 천국, 모든 것이 평화와 사랑, 그리고 정의의 천국! 그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여호와의 날, 곧 ‘가장 큰 천국’의 의미입니다.

5. 옳은 행실

‘작은 천국’, ‘좀 더 큰 천국’, ‘가장 큰 천국’으로 세 종류의 천국을 말씀드렸는데, 이 천국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옳은 행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세상의 종말에 임할 환난들을 다루다가, 19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재림과 그로 인한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 그리고 두 짐승이 유황 불 못에 던져지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특별히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비유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계 19:1-3)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을 하시는데, 음행(πορνείᾳ)으로 땅을 더럽게 한 이들을 내치실 것이라 합니다. 여기 ‘포르네이아’는 말 그대로 음란하고, 추악한 행위입니다. 성서에서는 우상숭배에 자주 사용되는 말입니다. 옳은 행실이 아니라, 음란한 행실을 한 이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계 19:4-5)

그리고 말씀의 핵심이 나옵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과 세마로 옷에 관한 말씀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δικαιώματα, righteous acts)이로다 하더라.”(계 19:6-8)

신랑 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새 신부된 성도들은 ‘옳은 행실’인 세마포 옷(βύσσινον, 가는 베로 만든 옷)을 입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배는 하나님께,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야말로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동번역으로 볼까요?

“또 그 천사는 나에게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말했습니다. 또 이어서 ‘이 말씀은 하느님의 참된 말씀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경배를 드리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이러지 마라. 나도 너나 너의 형제들과 같이 일하는 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 같이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자들이다. 예배는 하느님께 드려라.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야말로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계 19:9-10) 

다시 처음에 소개한 책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386세대들에게 하는 저자들의 조언입니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30여 년 전 386세대가 눈물 흘리며 바랐던 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바랐던 혁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면, 세대 독점의 해소는 비록 늦었지만 혁명의 완결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이제는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체가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는 혁명의 지원군으로서 말이다.”

386세대가 꼰대가 되어 젊은 세대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가지고 젊은 세대들을 지원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젊은 세대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예수께서 계시하신 천국의 복음을 증거 할 때, ‘작은 천국’으로부터 ‘좀 더 큰 천국’, 마지막으로 ‘가장 큰 천국’이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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