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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창 11:1-9; 고후 4:1-6; 막 13:14~27)창조절 둘째 주일(9월8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9.06 15:44

1.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이름을 드높이자!

지난주 말씀은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온 타락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 곧 인간들의 모임인 공동체의 타락입니다. 구약의 바벨탑 사건이 대표적이죠?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인 인류가 평지에 정착합니다. 강이 흐르는 평지는 문명의 발상지가 됩니다. 인간들은 성읍(도시)을 건설하고 탑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을 드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이러한 오만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게 됩니다.

▲ 바벨탑 ⓒGetty Image

구약 본문 말씀은 이러한 인간들의 오만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서지 못할 곳에 선 대가입니다. 따라서 심판은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나 우상을 세울 때 임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 깨달을 때, 부끄러움을 벗어버리고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이러한 오만과 교만은 성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 주변 나라들을 볼까요? 헐크와 손오공의 전쟁인, 현재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과 관세전쟁이 그렇습니다.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두 나라가 지금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신(新)냉전이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손오공과 헐크는 화해하지 않고, 앞으로 ‘첨단기술과 기술 기준’, ‘인프라’, ‘금융’으로 그 전쟁의 영역을 확장할 것입니다.

먼저, 논란이 되는 ‘첨단기술과 기술기준’을 살펴볼까요? 미국은 중국의 국가주도 기술발전 계획인 ‘중국제조 2025’를 폐기하라고 압박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알려진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그리고 미국의 ‘산업 인터넷’, 일본의 ‘로봇 신전략’ 등. 새로운 첨단기술에 관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이 자국의 산업 강점에 4차 산업혁명의 선두기술을 접목해, 제조업의 혁신을 도모하는 정책처럼, 중국식 기술발전 계획이 ‘중국제조 2025’입니다. 2015년 5월 8일 중국 국무원이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발표한 산업고도화 전략입니다.

<중국제조 2025>

과거 중국의 경제 성장이 양적인 면에 치중했다면, 이제 중국제조 2025는 질적인 면에서 제조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산업고도화 전략입니다. 30년간에 걸쳐 추구하고자 하는 3단계 목표와 9대 과제가 있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3단계 목표 중 1단계(2015~2025)는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한국 등과 같은 글로벌 제조 강국 대열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2단계(2026~2035)는 글로벌 제조 강국 대열의 중간 수준에 안착하는 것입니다. 3단계(2036~2045)는 주요 산업에서 선진적인 경쟁력을 갖춰, 세계 시장을 혁신적으로 선도하는 위치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9대 과제는 ①제조업 혁신력 제고 ②제조업 기초역량 강화 ③제조업 국제화 수준 제고 ④IT기술과 제조업 융합 ⑤서비스형 제조업 및 생산형 서비스업 육성 ⑥친환경 제조업 육성 ⑦품질 향상 및 브랜드 제고 ⑧구조조정 확대 ⑨IT, 로봇, 항공우주, 바이오, 전력, 교통 등 10대 전략 산업 육성 등입니다.

두 번째로는 인프라 분야입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대일로는 ‘육·해상 신(新)실크로드 경제권’을 형성하고자하는 중국의 국가전략입니다. 향후 35년 동안 중국의 대외노선에 대한 ‘구상’이자 ‘비전’입니다. 여기서 ‘일대’(一帶)는 여러 지역들이 통합된 ‘하나의 지대’(one belt)를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뜻합니다.

‘일로’(一路)는 ‘하나의 길’(one road)을 뜻하죠?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유럽-아프리카’로 이어지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를 말합니다. 이러한 일대일로는 미국 ‘마샬플랜(Marshall plan)’의 중국버전이라는 평가도 받지만, 중국정부는 마샬플랜 처럼 공세적 정책이 아니라, 미국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과, 아시아 회귀 전략에 대한 중국의 방어적 전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샬플랜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여러 나라에 대한 미국의 원조계획을 뜻합니다. 서구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나아가 공산주의의 확대를 저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아시아에 미치는 미국의 힘을 저지하려는 것입니다.

<일대일로 국가별 국내총생산 현황>

세 번째로는 금융입니다. 일대일로 사업과 더불어 출범시킨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의 달러 패권에 맞서는 중국의 금융 분야 도전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헐크와 손오공은 지구촌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는 그 옛날 이스라엘과 같이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늘 세 본문 말씀은 바로 이러한 강대국의 논리, 힘의 논리, 바벨탑의 논리, 도성의 논리, 제국의 논리에 대한 반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읍과 탑의 논리는 지난주 말씀인 창조 이후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이어, 또 다른 타락의 시작입니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인간들의 외면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2. 흩어짐을 면하자

먼저, 공동체의 하나님 외면의 역사인 구약의 말씀, 바벨탑 사건을 살펴 볼까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1-4)

성읍은 도시를 말합니다. 성으로 쌓인 도시는 강력한 안보의 표징이 됩니다. 또한 탑은 높게 세움으로 명성을 얻으려는 의지의 표징입니다. 따라서 노아 이후 인류는 힘의 집약과 명성의 획득을 위해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대한 존재이고자 하는 욕망이 잘 드러난 것이 건축입니다. 그러나 선악과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악을 분별하는 분은! 높임을 받으실 분은! 그리고 위대한 창조주는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인간이 그 자리를 탐하는 순간 심판이 임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창 11:5-6)

따라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7-9)

성읍과 탑의 논리, 힘의 논리, 제국의 논리, 곧 교만한 우상이 서지 못할 곳에 선 대가입니다. 그런데 심판받아 흩어진 이들이, 다시금 도시를 세우고, 제국을 세워 힘의 논리로 교만의 첨탑을 세우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그러합니다. 물론 일본은 말말 것도 없습니다.

3. 서지 못할 곳에 선 것

복음서는 바로 이러한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공동번역은 ‘있어서는 안될 곳에 선 것’이라 말합니다.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독자는 알아들어라.)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막 13:14).” 구약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바벨탑이 세워지는 것을 보거든’이며, 오늘 이 시대의 상황으로 풀어 보자면, ‘강대국들이 교만하여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는 심판의 때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심판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막 13:15-19)

그리고 이러한 심판의 때에는 전쟁, 기근, 지진, 해, 달, 별들의 이상 징조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막 13:23-25)

사실 마가복음 13장 본문 말씀은 이러한 세상의 종말과 그때 있을 예수님의 재림징조에 관한 말씀입니다. 종말의 때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나, 주께서 그 날을 감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놓았다고 합니다.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막 13:20-22)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고후 4:1)

예수님의 제자로 성령 받은 교회 공동체의 귀한 직분을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을 고린도 교회에 추천하며, 제자의 자세를 소개합니다. 우리의 사명, 혹은 사역의 내용도 그와 같습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드러내지 못할 창피스러운 일’, 공동번역)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고후 4:2)

사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오해가 풀리자,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며 억울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고린도후서를 쓴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직분을 받은 자들의 사역에 관해 소개하지만, 이러한 바울의 사역, 혹은 우리의 사역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바울은 ‘망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고후 4:3)

그리고 이것은 ‘이 세상의 신들(The god of this age, ‘이 세상의 악신’, 공동번역)’이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이 세상의 악신들이 복음의 광채를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기십니다.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심으로, 오만의 첨탑을 무너뜨리고 힘의 논리를 종의 논리, 곧 사랑의 논리로 변화시키며 우리 마음에 새 소망의 빛을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5-6)

5.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졌습니다. 이것을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막 13:26-27)

<구름타고 권능과 영광으로 오시는 인자>

바벨탑 사건의 교만으로 하나님께서 흩으신 자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다시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두운데 빛이 비추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인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되어, 힘의 논리가 아닌 사랑의 논리로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앞서 미중분쟁을 말씀드렸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미국의 견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 문명의 절대적 권위는 지속적인 대화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모든 문명에 완전함이 있고 서로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문명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공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자신의 문명의 완전함을 믿고, 힘의 논리로 상대방을 좌우하려고 합니다. 교회와 교권도 그렇지 않은가요? 물론 언론도 펜의 힘으로 여론을 조작하고자 가짜 뉴스를 양산하며 광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가족 신상 털기는 장관 후보자의 자격 문제를 따지는 청문회가 아니라, 그의 딸을 마녀 사냥하는 우리 사회 언론과 정치와 검찰의 광기를 잘 보여줍니다. 교육 문제에 민감한 학부모들의 정서를 악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 전반에 오만의 바벨탑의 논리가, 또한 더러운 악신들이 우리 삶을 좌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서지 못할 곳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상의 논리를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에스겔이 본 환상처럼, 포로살이에서 해방된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된 민족 공동체가 되어, 외세를 배격하고, 새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도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남과 북이 함께 영세중립국을 표방하여 동북아는 물론이고, 아시아와 세계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가는 환상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길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이 어둔 세상에 빛을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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