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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모 교수, 일본 정치의 우경화를 꿰뚫다일본중앙학원 대학교 이헌모 교수를 만나다 (1)
이정훈 | 승인 2019.09.11 11:06

이헌모 교수. 1990년 일본 정치가 급변하던 시기, 일본 유학을 감행, 모든 학위 과정을 끝내고 일본에서 거주한지 30년째 되는 학자. 예전 말처럼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공부하고 강단에서 가르쳐 온 학자.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이자 작년 봄에는 학부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득표율로 말이다. 외국인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또한 작년 10월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효형출판, 2018)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 생활 30년을 돌아보고 일본의 정치 현실을 조금 더 쉽게 한국 시민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저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생활과 강단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이다.

이런 이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현 한일 상황과 맞물려, 그리고 책이 담고 있는 내용으로 인해 한국에서의 일정은 숨돌릴 틈도 없어 보였다. 다행히 일본으로의 출국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이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아베의 우경화, 더 극단이다

이 자리에서 이 교수는 아베 내각의 우경화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길고 긴 일본 정치사와 맞물려 탄생된 우경화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치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 이헌모 일본중앙학원 대학교 교수는 일본 우경화의 원인을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로 보았다. ⓒ이정훈

또한 아베로 대표되는 현 일본 정치의 우경화는 자민당 내 진보 세력, 일본에서의 용어로는 합리적 보수 세력이 1990년대 자민당을 대거 탈당하면서 생겨난 공백이 분기점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80-90년대 자민당 내의 부패 정치를 혁신하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다 안 되니까 자민당을 탈당, 연립정권을 형성, 잠시간 자민당을 패배시켰지만,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소장파들의 탈당으로 인해 비주류 우익 성향의 보수세력이 자민당 내에서 실권을 쥐며 우경화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아베 정권의 우경화는 더 극단적이라고 이 교수는 진단했다. 자민당 내에서 합리적인 세력으로 이해될만한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 주위를 둘러싼 내각 각료들의 좁디 좁은 시야에 대해서도 주의를 당부했다.

여기에 이 교수는 이러한 우경화 자체가 일본 시민들도 마찬가지라고 한탄했다. 일본 시민들의 생각이나 문화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우경화는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혐한 문화가 나타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 반성하지 못한 역사

이러한 우경화의 근본 원인에 대해 이 교수는 한국에서와 같이 전후 역사처리 문제를 첫 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날을 기점으로 일본이 항복한 것을 두고 패전이라고 하지 않고 종전이라 부르는 현상을 대표적인 모습으로 밝혔다. 전쟁에 대한 원인이나 반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전쟁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정치에 대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해 우경화는 당분간 지속되리라고 보았다. 특히 아베 정권이 추구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개헌이 힘들 것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냈다. 일본 의회에서 발의되고 국민투표까지 이어진다면 개헌이 가능하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첫 번째 인터뷰를 게재한다. 다음은 이헌모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먼저 작년에 출판하신 책을 통해 일본 정치권 우경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셨습니다. 일본의 우경화는 속된 말로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를 다루어겠다는 결심을 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습니까?

작년 10월에 책이 출판 되었습니다만, 그 이전부터 특히 아베로 대표되는 일본 정치권과 사회가 우경화되고 있다는 소개가 되더라구요. 물론 제가 거기에 대해서 부정하는 건 아닌데요, 과연 무엇을 보고 우경화라고 하는 것인가, 우경화의 실체에 대해서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께서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봤을 때는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일본 정치를 논할 때 보통 한국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일본은 경제는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다’라는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잖아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서 예를 드는게 자민당의 일당 독재 정치라던가, 또한 세습에 의한 의원들, 그런 부정적인 사례거든요.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자민당이 거의 60년 동안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면 자민당이 정권을 이어갈 수 있는 어떤 매카니즘이나 시스템을 갖고 있는가라던가, 그런 것들을 알기 쉽게 그 소개를 해드리려는 그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 이헌모 교수는 일본의 우경화 보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가 더 극단이라고 비판했다. ⓒ이정훈

▲ 그렇다면 자민당이 그렇게 만만한 세력이 아니다, 속된 말로 만만했다면 60년동안 정권을 못잡는다, 정권을 유지할 만큼의 어떤 내적인 힘이 있다는 말씀이죠? 저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아베 전과 후로 어떻게 다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현 자민당은 1955년에 결성된 정당입니다. 하지만 먼저 알아야 할 점은 자민당에 앞서 일본의 좌파 세력이 통합하면서 보수 세력들이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자유당과 민주당이라는 보수정당이 연합을 하면서 자유민주당, 자민당이 된 것이죠. 55년 체제가 보수와, 일본에서는 혁신 세력이라고 하는데, 좌우의 대립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후의 자민당 내 보수 중에서도 흔히 얘기하는 보수 본류,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습니다. 그 초창기에 정권을 잡았던 보수 본류, 요시다 시게류 등의 수상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유지했던 정책이 무엇이냐 하면 우선은 경제 성장을 할 때다, 그리고 안보에 관해서는 일미 동맹이 있으니까 미국에 맡기고, 경제 성장에 주력하자는 노선을 택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정책이 주요 했습니다.

또한 60년대 70년대 한국전쟁이라든가 베트남전쟁이라든가 하는 소위 전쟁 특수가 컸지만, 그런 면에서 일본 참 운이 좋은 나라라고 많이 해요, 일본 국민으로서는 경제가 고도 성장을 하게 되니 자민당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그렇게 해서 자민당의 독주체제가 마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자민당도 55년 이후부터 계속해서 정권을 잡다보니까 자민당 내에서 고인물들이 썩기 시작합니다. 금권, 부패, 파별 정치 등의 문제로 80년대 말에서 90년대까지 사회적 비판이 일어납니다. 그 당시 거물 정치가들을 둘러싼 대형 스캔들이 터집니다.

그러면서 자민당 내에 합리적 보수에 속했던 40대 정치인들이 개혁을 일으켰는데 자민당 내에서 안 먹힙니다. 워낙 파벌들이나 원로정치가 권력을 잡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그 사람들이 탈당을 합니다. 탈당 해서 1993년에 반자민세력으로 연합 처음으로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야당이 연립하게 됩니다. 이때 처음으로 자민당이 야당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2년 좀 지나서 다시 정권을 잡게 됩니다.

자민당이 정권에 복귀한 후 어떤 현상이 발생했는가 하면,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자민당의 보수 본류라는 건 경제 성장이 우선이었고 안보에 관해서는 미국에게 맡긴다는 기조였는데, 이제 소장파들이 탈당을 하고 야당으로 돌아서고 나니 자민당 내에서는 비주류 세력이 힘을 얻게 된 거에요.

일본의 보수, 자민당 내 비주류 세력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기시 노브스케’라는 아베의 외할아버지인데요, 이 사람은 A급 전범으로 체포됐다가 운좋게 풀려나서 나중에 수상까지 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애초부터 “일본의 지금 신헌법은 점령군에 의해서 강요된 헌법이기 때문에 일본 스스로 자주 헌법을 만들어야 자주 독립 국가가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극우주의자에요. 거기에 영향을 받은 세력들이 80년대까지는 영향력이 없었는데 자민당의 소장파들이 탈당하고 공백이 생긴 사이에 자민당 내 주류와 비주류가 풍토가 바뀝니다.

또 하나, 1991년에 걸프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이제 일본은 전투병을 파병하지 못했어요. 그대신 130억 달러 정도의 전쟁 비용만 지불합니다. 나중에 어떤 여론이 생기냐 하면 일본은 서방 동맹국가들이 피를 흘려서 자유를 지키는데 일본도 같이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데 동조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흐름을 이용해 자민당 비주류였던 세력들이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합니다.

즉 전후 자민당이 성립됐을 당시부터 그런 세력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적었을 뿐이라는 뜻이죠. 그러다 형세가 역전이 되다보니, 아베 총리도 그렇고 5년 동안 장기 집권 했던 고이즈미도 비주류 출신입니다.

아베 전후의 우경화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베 정부의 우경화라는게 더 극우적인 성격을 띄었다고 보면 되는 걸까요?

그렇죠. 7월달에 수출규제조치가 사실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닌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우익은, 일본 회의와 같은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고 있는 그런 우익단체가 있고, 또 인터넷에서 나타나 여론몰이를 하는 넷우익 세력이 있습니다. 3, 4년 정도 전부터 넷우익들이 주장하는게 무엇이었냐 하면 한국이 일본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의 이야기였어요. 뭐 하려고만 하면 전후 보상부터 시작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질책을 하니까, 넷우익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로 보였던 것이죠.

그래서 이 넷우익들이 이참에 깔끔하게 맛을 보여줘야 된다면서 주장하는게 한국의 산업은 일본에 예속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부품이라던가 이런 것들을 공급을 중단하면 생산을 못하게 되고, 그러면 실업률이 20~30% 올라가면서 국가 부도 상태가 될 거다 그런 주장을 합니다. 아베  내각 측근들이 이런 정도의 인물들이 가득합니다.

▲ 그런 우익에서는 이미 3, 4년전부터 그런 얘기가 있었다는말씀이네요?

네, 그런 이야기도 있었고, 또 다른 예를 들면 우익 인사가 쓴 책을 보면 한반도 통일은 일본에 굉장히 대참사다, 이런 논조를 담은 책들이 나와요. 그런 우익들은 완전히 노골적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안 좋은거에요. 그러니까 남북이 통일되면 일본은 대참사라는 식의 표현을 할 정도로 노골적인 의견을 드러냅니다. 제가 일본으로 유학간 것이 90년이었니까 햇수로 딱 30년인데, 그때와 비교하면 모든 여론이라던가 사회가 우경화된 건 사실입니다.

▲ 작년 10월 출판한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를 통해 이헌모 교수는 일본의 우경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이정훈

▲ 그런 급격한 우경화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궁극적으로는 역시 일본도 전후, 제가 보기에는, 동경재판으로 A급 전범 14명 정도만 교수형에 처하고 끝나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전쟁 끝났다는 식이에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잖아요.

스스로 전쟁에 참여했던 자신들의 반성이라던가 이런 것이 없었거든요. 기본적으로는 전쟁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안 했어요.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40~50년 지나고 보니까 전쟁 자체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지는 거에요. 그러니 배상문제라든가 징용문제라든가 하는 문제가 나오면 70년도 더 된 일을 또 끄집어내나 이런 식이에요. 일본 사회가 이렇게 된 근본적인 문제는 스스로 전후 자기들의 전후 처리를 못했다는 거죠. 그게 가장 큽니다.

▲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문학작품들을 보면 2차 대전 때 일어났던 비극적인 상황들을 다룬 장면에서, 우리도 피해자다, 하는 논조가 깔려 있고 반성은 별로 없더군요.

네, 잘보셨습니다. 8월6일, 8월9일 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이 투하된 날이잖아요. 일본에서는 패전이라고 안 씁니다. 종전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것이지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일본의 지도층 뿐만 아니라 일본 시민들도 그런 의식이 강하다는 말씀이시죠.

네, 비단 애니메이션만의 문제가 아니라 8월6일과 8월9일 되면은 텔레비전에서 각종 특집 방송을 합니다. 원폭이 투하된거, 참상,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된 비참한 모습들, 이런 영상들만 보여줍니다. 제 집사람도 한국사람이고, 같이 시청하다보면, 아니 얘네들은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얘길 안 하지, 그런 말을 해요. 미국에게 원폭을 맞기까지의 과정이라든가 이런 이야기들이 있으면 어느정도 균형이 맞춰졌다고 보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전혀 나오지 않아요.

최근에는 미디어도 굉장히 우경화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나오기 전에도, 최고 저열한 게, 텔레비전 방송에서 문재인은 친북이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거 때문에 일본 지인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문재인이 지지도가 떨어지니까 그걸 만회하려고 지소미아를 파기한다, 반일 여론을 올리려고 그런다, 이런 식으로 계속 보도를 합니다. 얼마나 유치한 발상입니까.

▲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분들이, 선방했다, 하는 말도 있지만, 아베 정부 몰락의 신호탄이 아니냐, 하는 말들도 있습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두 사실은 7월 21일날 있었던 참의원 선거가 굉장히 중요한 선거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베라는 사람의 최종 정치적 목표는 개헌입니다. 그런데 개헌 절차가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일본 의회는 중의원과 참의원, 이렇게 양의원이 있습니다. 양원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압승해서 3분의 2를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못채웠어요.

또한 야당에 있는 세력들 중에서도 자민당에 비슷한 개헌 세력이 많아요. 문제는 뭐냐하면 이게 중의원을 통과했는데 참의원에서 부결되면 안 되잖아요. 설령 의회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국민의 과반수가 아니라 유효 투표수의 과반수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일본 국민들이 개헌에 대해서 6:4 비율로 반대를 한다고 보도하는데, 그건 잘못 보신 거에요. 여론 조사는 그렇게 나오지만 일본은 투표율이 낮지 않습니까? 한 50%밖에 안 됩니다.

제가 보기에 국민투표까지 가면 개헌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치에 대해 전혀 무관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6:4라는 비율만 보고 반대가 많아서 아베가 개헌을 못한다, 너무 이건 피상적인 면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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