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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알(בַּעֲלִי) 나의 이쉬(אִישׁ)(호세아 2:14–3:5)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11.05 18:21
▲ 가나안 지역의 신으로 인정되었던 바알 ⓒWikipedia

호세아 2장 14절 이하와 3장 전체는 이스라엘의 죄가 매우 큼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끌어안으시고 회복하시리라는 메시지입니다. 물론, 죗값은 다 치러야 합니다. ‘거친 들’(2:14)에서 타이르신다는 말씀은 곧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연단 받게 된다는 뜻이고, 왕과 예배를 잃게 될 것이라는 말씀(3:4)은 이스라엘이 당하게 될 모진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회복의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이루어야 할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 습관’의 변화인데,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16절)라고 기록된 부분이 가리키는 내용입니다.

‘바알’이라는 단어는 특정한 신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주인이라는 뜻과 남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야훼 하나님을 ‘나의 바알(בַּעֲלִי, 남편)’이라고 부르지 않고 ‘나의 이쉬(אִישׁ)’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라는 말은(16절), 우상숭배를 완전히 끊기 위해서 언어 습관까지 바꿔야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자주 사용하던 말을 다른 말로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언어 습관을 바르게 고치려면 기분이 좀 나쁘더라도 서로 지적해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서로 그렇게 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지적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내가 옳다’는 생각만 하면서 ‘지적질’을 남발하게 되면 당장 ‘꼰대’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변화가 표면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어 습관의 변화가 꼭 필요합니다. 언어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생각과 감정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 예전에 무심코 사용하던 장애인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담긴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도록 권장하는 일이나 성차별적인 발언과 몸짓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경고하는 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함부로 비하하거나 배타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일 등은 막상 지적받는 처지가 되면 기분이 나쁠지 몰라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되겠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익숙한 것이 옳은 것, 혹은 좋은 것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자주 막말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한 말이 막말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못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바알이라는 말이 이스라엘에게 ‘주님’에 해당하는 익숙한 말이더라도, 그 말이 다른 신의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아예 그 말 자체를 야훼 하나님께 붙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그에 합당한 언어도 갖추어야 함을 알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습관을 바꾸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관계가 바뀌면서 말이 바뀌는 측면도 있지만, 말이 바뀌어야 관계가 변화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하여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잘못된 언어들이 없는지 돌아보고, 바로잡는 노력을 성실하게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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