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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와 ‘안경’성경과 성령 (2)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19.11.16 17:53

칼빈은 6장에서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다만 성경에서 얻을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눈부신 극장 안에 있으면서도” 어리석음 때문에 눈이 멀어 거기서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창조 세계를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지으신 창조주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인식은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연의 결과로 해석하고, 섭리의 결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시 그 배후에 어떤 신이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할지라도 그 신을 자기들의 상상에 따라 만들어냅니다. 칼빈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에 관한 모든 오류의 근원입니다(I.v.11).

그래서 칼빈은 한 마디로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인식은 없다”(1)고 단정합니다. 칼빈은 스토아 학파, 애굽의 신비주의 신학, 에피큐로스 학파 등 옛 철학 학파들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인식을 토대로 “거대하고 풍부한 샘에서 물이 분출되어 나오는 것처럼”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막대한 신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쏟아냈지만, 저마다 서로 대립한 채 공허한 자신들의 신개념을 제시하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칼빈은 사도 바울이 아덴 사람들이 했던 말(행17:23)을 인용하여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인간이 본성으로만 가르침을 받는다면, 확실하고 건전하며 명료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다만 혼란한 원리에 매여, 마침내는 알지 못하는 신을 예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I.v.12). 그 결과 칼빈은 “이제 남은 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자기 자신을 증거하시는 일뿐이다”(I.v.13)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아주 단호한 어조로 14절을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구조에서 조물주의 영광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등불이 우리를 비춰주고 있지만 그것은 헛될 뿐이다. 비록 그 광선이 우리의 온 둘레를 비춰준다 하더라도, 결코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지는 못 한다. 분명히 다소의 섬광을 발하기는 하나, 그것은 충분한 빛을 방사하기도 전에 질식하여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사도는, 세계를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 바로 그 구절에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11:3)라는 말씀을 첨가하였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곧 보이지 않는 신성이 이와 같은 거울 안에서 나타나게 되지만, 하나님의 내적 계시에 의하여 믿음으로 조명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세계의 창조에서 명백히 보여졌다고 말한 곳에서도(롬1:19) 바울은 그러한 현현을 인간의 통찰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간으로서는 변명할 수 없을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었다(I.v.14).

그러니까 여기서 인용되는 히브리서 11장 3절은 마치 쐐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현상들이지만,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은 “오직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내적 계시”로 밝혀질 때, 비로소 명확히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성경

마침내 이제 칼빈은 6장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반드시 필수적인 안내와 교사인 성경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칼빈은 여기서 우선 ‘울타리’와 ‘안경’이라는 두 가지 은유로 성경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을 때, 그들이 주변 민족들의 종교와 도덕에 오염되지 않도록 율법의 울타리로 둘러싸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자신에 대한 순수한 지식 안에 붙잡아두시려고” 성경을 주셨습니다. 또 다른 은유를 사용하면, 성경은 안경과 같은 것입니다. 안경을 쓰면 흐릿했던 것이 똑똑히 보이듯이 “성경은 … 하나님에 대한 혼란한 지식을 우리 마음에서 바로잡고 … 참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교훈하시기 위하여 무언의 교사들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장 거룩한 입을 여시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이다”(I.vi.1). 인용문에 나오는 “무언의 교사들”, 곧 말없는 교사들은 주변의 창조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일반적인 교사들, 말없는 교사들 외에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보다 정확하고 보다 더 확실한 표준으로 자신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족장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알려주신 것에 어떤 방식으로 도달했든, 그것이 환상에 의해서든 계시에 의해서든 인간의 사역이나 일을 통해서든,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계시가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율법이 기록되었고, 그 후에 예언서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칼빈은 율법의 주된 목적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주된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내가 여기서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는 신앙과 회개의 특수한 교리 외에도, 성경은 하나님이 거짓된 많은 신들과 혼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명백한 특징과 증거들로써, 우주의 창조자요 통치자이신 유일하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 이 가장 영광스러운 극장의 관객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눈을 돌려 하나님의 사역을 신중히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그러나 보다 더 월등한 유익을 얻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참된 종교의 빛을 받기 위하여는, 마땅히 하늘의 교리에서 그 시초를 찾아야 하며, 그리고 성경의 제자가 되지 않고는 아무도 참되고 건전한 교리를 극히 일부분이라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I.vi.2).

순종을 통해

칼빈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합니다. “완전하고 모든 면에서 원만한 신앙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일체의 올바른 지식은 다 순종에서 나온다”(I.vi.2). 이 문장을 칼 바르트가 그대로 인용하여 “모든 올바른 신인식은 (성경에 대한) 순종에서 일어난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신학을 규제할 뿐만 아니라 신학의 초석을 놓으며, 신학을 구축하는 바 이 말씀은 무에서 유를, 죽음에서 생명을 일으키는 말씀인 것이다. 이 말씀은 신학에 의해서 비로소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신학의 자리는 정확히 이 말씀 밑에 있으며, 이 말씀에 대면하여 있다. 신학의 자리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여기에 위치해야 한다.”(2)

왜냐하면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그가 하신 일들을 통하여 진실하게 또는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별한 학교”(I.vi.4)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이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면, 아무리 신속하게 달린다 하더라도, 그 진로에서 탈선했기 때문에 목적지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딤전6:16) 그 하나님의 광채는, 말씀의 실로 인도받지 못하면, 우리에 게는 이해할 수 없는 미궁과 같은 것이라고 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길 밖에서 전속력을 다해서 달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절며 이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 더 낫다(I.vi.3).

 

미주

(미주 1) 12절 불어판 제목. 우리말 번역은 “하나님의 현현은 인간의 미신과 철학자들의 오류에 의해서 질식되었다.”
(미주 2) 칼 바르트, 이형기 옮김, 『복음주의 신학입문』(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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