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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자신들만의 잣대(호세아 12:1-14)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11.29 17:18

자신의 잘못을 자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어떤 행동이 잘못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지각능력이 없이는 회개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른 자각은 바른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잣대가 틀렸는데 정확하게 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상인의 저울 눈금은 손익관계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 잣대에 따르면 손해가 악이고 이익이 선입니다(7절). 이런 잣대로는 하나님의 의를 분별할 수 없고, 자기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옳은지 여부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든 이스라엘의 죄(14절)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죄에 대한 그들의 잣대가 이미 틀려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무리 선지자들을 통해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자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8절).

반복적으로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특징은 자기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점입니다. 정신적인 질병 때문이 아니라면, 애초에 잣대가 틀렸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상인들의 기준은 이익인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의 기준은 무엇일까 ⓒGetty Image

그리고 자기 잣대가 틀렸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게 되더라도 의식적으로 부인해버리거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쪽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 틀린 잣대를 계속 사용하게 됩니다.

사람이 이렇게 잘못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그 잘못된 행동을 통해 지켜야 할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간에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상식이 다를 때,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려면 약자의 상식을 보편화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약자는 단지 약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상식을 남에게 주장할 수 없으므로 먼저 기회를 줘서 힘의 균형을 맞춰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기득권을 지키고 싶습니다.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생소한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불편할 일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고통스럽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먼저 여성 중심으로 사고하자고 말하고,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을 거론하는 까닭은 반복적으로 저질러지는 잘못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좀 투박한 예를 들자면,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기 때문에 성범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는 헤픈 여자라고 생각하는 상식의 오류(여성을 비하하는 생각과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사고)가 성범죄를 부추긴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죄를 자각하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 성령의 은사를 간구합시다. 인간의 탐욕이 나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나에게 어떤 믿음이 필요한지 깊이 묵상해 봅시다(6절).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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