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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적 권리가 아니다하나님 자녀의 특권(렘 31:7-9; 엡 1:3-10; 요 1:10-18)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 승인 2020.01.07 17:41

오늘은 성탄 후 두 번째 주일이자, 경자(庚子)년 새해 첫째 주일입니다. ‘경’자는 하얀 색이므로 밝고 큰 것을 상징하고, ‘자’자는 ‘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도 있어서, ‘회복’의 뜻을 가졌다고 합니다. ‘흰 쥐의 해’, 근면과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한 ‘흰 쥐의 해’가 우리나라는 물론 온 세계가 깊은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어둠에서 밝고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새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다사다난했던 격동의 한 해를 감사로 기억하고, 새로운 희망과 결의로 새 해를 맞이하신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은혜와 진리로 여러분과 동행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여러분에게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엡 1,3).

< 1 >

사도 바울은 에베소 공동체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엡 1,4).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때부터, 혹은 잉태된 때부터도 아니고, ‘우주의 창조 전에’, 다시 말해 ‘시간 이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속량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사랑해 주셨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이 몸을 받아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어,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목숨이야 그렇겠지만,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은 우주의 창조 이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이 선택하고 사랑하신 우리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또 다른 사람에 의해서 파괴되게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생명을 ‘우주의 기초를 놓으시기 전부터’ 택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은 물론, 온 우주, 자연과 다른 사람의 생명도 가볍게 여기거나 파괴할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의 자녀됨은 독점적 권리가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있다. &#169;Getty Image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택하신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엡 1,4). ‘흠이 없는’이라는 표현은 희생제사의 언어에서 유래했고, 희생동물의 흠 없음과 관련된 것이지만(민 6,14; 19,2), 사람의 도덕적, 종교적 태도에도 전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가운데 아무도 스스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엡 1,5)라는 단서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가 흠이 많은 인간이지만, 우리를 선택하셔서 자녀로 삼으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흠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동적이고 용서하시는 사랑에 달려 있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도덕성이나 인격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죄와 허물과 흠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보답이 아닙니다. 은혜는 언제나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구속, 곧 죄 용서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러므로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는 것을 그의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거저 주어졌으니,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너무 자주 잊고 살지만, 나의 소유는 물론, 나의 생명도 나의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뜻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기 위한 것’입니다(엡 1,10).

이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분열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될 때, 피조물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이지요.

< 2 >

분열된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은 모든 피조 세계의 화해와 통일에 있습니다. 골로새서에서 ‘하나님은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고,’(골 1,20),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십니다.’(엡 1,10).

온 우주의, 만물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고 부르심을 입은 것은 그리스도인의 과제이자 동시에 특권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특권’으로 번역했으나, 본래의 헬라어 뜻은 ‘힘’(exusian/ Macht/ Power)입니다.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번역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온 우주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힘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입니다.’(요 1, 13).

‘특권’(特權)은 ‘특정인 또는 특정의 신분이나 계급에 속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우월한 지위나 권리’를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이 특권의식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은 배타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리스도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요 1,11)고 증언한 것이지요. 중국의 중원(中原)사상, 문명과 야만이라는 제국주의적 도식, 히틀러 나치의 ‘아리안주의’, 오리엔탈리즘, 민족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인종주의, 맹목적 애국주의, 엘리트주의도 혈통과 육정으로 뒷받침되는 일종의 배타적 선민의식의 표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난 존재’가 아닙니다. 혈연이나 혈통, 가족이나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육정, 다시 말해 인간적인 욕망의 충족, 세속적인 목적이 그리스도인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난 그리스도인입니다.

< 3 >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다종교 사회 안에 있는 소수 종교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런 특권의식은 주로 미국 기독교 선교에 의한 개화와 애국계몽운동, 해방 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한 특혜, 한국전쟁과 반공주의, 근대화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 개신교는 단지 하나의 종교단체가 아니라, 강력한 정치세력입니다. 권력비판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권력친화적인 의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국민혁명을 이끄는 대표자’라고 하면서, 작년 10월 22일 청와대 앞 저녁 집회에서 ‘대한민국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면서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발언한 전광훈 한기총대표회장은 참으로 대한민국에서만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권력자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힘은 특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온 우주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의 이름을 믿는 믿음에서 옵니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고’(엡 2,16), ‘그 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키신 분’(골 1,20)을 믿는 믿음만이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온 우주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 어찌 배타적 특권일 수 있겠습니까! 화해는 희생 없이 가능하지 않고, 일치는 권리의 주장이 아니라 권리의 포기에서 가능합니다. 배타적 특권이 주장되는 곳에는 권력의 일방적인 자기관철이 있을 뿐, 대화와 화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굴종과 예속으로서의 통일이 있을 뿐, 공의로운 통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온 우주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예정되고 선택받은 것이야말로 특권 중의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화해와 일치를 위한 소명도 특권이지만,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동행하신다는 것이 특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특권은 다른 사람을 배제하거나 차별하기 위한 독점적 권리가 아니라, 거룩한 소명으로서의 특권입니다.

올 해, 2020년의 경자(庚子) 년이 우리에게 어떤 해가 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경자 년, 말 뜻대로 풍요의 해가 될지, 아니면 파국의 한 해가 될지, 온 세계가 깊은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어둠에서 밝고 큰 세상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더 큰 어둠으로 떨어질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역사의 기억 저장소에서,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 ‘한국전쟁 70주년’, ‘4.19혁명 6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등이 소환되어 재조명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과 진실, 해석과 입장 차이의 역사 다툼이 재기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궁극의 목적은 다시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역사, 또 한 번의 ‘형제 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올 해가 더 심한 갈등과 분열의 해가 될지, 진정한 화해와 통일의 해가 될지 비록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실 것을 믿고(엡 1,10), 힘차게 새 해를 시작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주의 기초가 놓이기도 전에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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