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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족보의 씬스틸러”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1.23 01:47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 그러므로 그 모든 대 수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으로부터 바빌론에 끌려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빌론으로 끌려간 때로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이다.(마태복음 1:1~17)

국사 시험 때문에 외운 왕의 족보 외에 족보를 살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 첫 페이지를 펼치면 족보로 시작합니다. 낯선 이름 가득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보여줍니다. 한편의 영화가 끝나고 누가 함께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엔딩 크레딧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잉태되었는지 보여줍니다.

찬찬히 읽어봅니다. 몇 명을 빼고는 누구인지 모르는, 발음조차 쉽지 않은 이국적 이름을 스쳐갑니다. 보통 족보는 그 중에 유명한 사람을 주목합니다. 누구의 몇 대손이라 자부할 수 있을 그런 누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읽을수록 모르는 사람의 존재에 마음이 끌립니다. 그 이름을 읽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그 타자들이 마음에 남습니다.

▲ 귀도 레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낯선 이름들, 익명과 다름없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구원역사의 태반이고 탯줄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업적을 남기고 이름을 날린 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몇 번째에 등장한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한 명 한 명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무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됩니다. 무명함을 통해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는 미래로부터 온 살인기계가 평범해 보이는 한 사람을 죽이려는 내용입니다. 미래의 향방을 바꿔놓을 사람이 태어나지 못하게, 그 어머니를 죽이려 합니다. 평범한 한 사람의 숨결에 인류의 미래가 달린 상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도 평범한 삶들이 구원사의 특별한 의미로 드러납니다. 익명의 무의미에서 벗어납니다.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그리고 마리야, 이들은 그 중에서도 씬스틸러입니다. 당시 유대인은 여자는 사람 수를 셀 때 넣지도 않았고 족보에도 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등장합니다. 다말은 성 노동자인 것처럼 속였고, 라합은 여리고성의 성 노동자, 다윗이 간음과 살인으로 빼앗은 우리야의 아내, 다말은 아람사람, 라합은 가나안사람, 룻은 모압사람으로 이방민족입니다. 내세웠을 만한 여인은 보이지 않고, 감췄을 만한 이들이 등장합니다. 마태복음은 왜 이들을 족보에 넣었을까?

다양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 중 어느 것이 정답이냐와 상관 없이 시선이 바뀝니다. 낯선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이방인, 성노동자, 여성 피해자를 하나님의 시선을 다시 보게 합니다. 낯선 타자 중 누구라도 하나님 구원의 역사에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 누구라도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이 왜 이런 족보로 시작하는지, 그 중에 왜 저 여인들을 넣었는지, 그 대답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새롭게 보는 눈뜸이! 주님의 눈으로 보는 눈뜸이! 일상에서 스쳐가는 낯선 타인들이 새롭게 보이고, 없인 여기던 이들이 새롭게 보이는 눈뜸이. 주님께서 이름 없는 약자, 없인 여기던 타자와 함께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무의미한 고통이라면, 주님께서 무의미해보이던 삶을 뒤집어엎으십니다. 의미를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구원은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자유롭게 합니다. 구원의 자유는 무의미해 보이던 고통으로도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가 아니겠습니까.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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