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6자회담 제2차 회의에서 북한과 미국은 극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공동합의문의 핵심내용을 살펴보면, 북한은 모든 핵의 폐기에 합의를 함과 동시에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통제하에 들어가는 대신, 미국은 먼저 북한의 안전과 관련된 사항을 인정해 주고, 동시에 북한에 대한 에너지제공 및 경제협력의 전면적인 재개를 용인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핵폐기 문제 및 에너지 문제와 동시에 결합되어 있는 문제였던 핵의 평화적 이용권 및 경수로 제공문제는, 핵의 평화적 이용권을 인정하고 경수로 제공문제는 적절한 때에 이를 논의한다는 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북한의 안전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가) 미국은 북한을 핵공격이든 재래식무기를 동원한 공격이든 일절 공격하지 않는다고 서술하였고, 나) 북미간 북일간 수교를 추진하기로 하였으며, 다) 한반도에서의 평화협정체제의 구축을 위한 포럼을 설립 운용한다고 하였으며, 라) 유엔헌장에 따라 상호 주권을 존중한다고 선언하였다.

북한의 안전에 관해서는 이외에 한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관한 부분이다. 이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핵무기나 핵물질을 반입하지 않으며 동시에 남한도 미국의 핵물질이나 핵무기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기한 부분이다.

공동합의문 안에는 에너지 및 무역 등 경제협력과 관련하여 에너지 지원을 약속하였고, 그러한 가운데 한국도 중대제안을 그 실행방법으로 재확인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북한에게 핵의 평화적 이용권만을, 그것도 이론적인 수준에서 인정하려 하였던 회담직전의 미국 및 종미적인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다시말해서, 미국은 북한에게 핵의 평화적 이용권 뿐만 아니라 경수로제공까지 약속한 것으로서 미국이 회담전의 태도로부터 크게 변화하였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언론은 워싱턴을 방문중인 반기문 장관이 적극적인 외교적인 노력을 통하여 미국의 유연한 대응을 이끌어 내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입장이 회담 여러차례 한다고 유연해졌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반장관 '스토리'가 미국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한 기획작품일 가능성을 의심해야 정상일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스토리'로 인하여 득을 보는 세력은 한국과 미국이다. 미국은 한국의 부탁 때문에 유연하게 대응했다는 명분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체면이 구겨지는 일을 면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정부는 6자회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구실을 얻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6자회담을 무난히 마무리 하지 않으면 안될 그런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4차 회담의 제1차 회의와 제2차 회의를 가르는 결정적인 구분요소는 바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있다. 신의 손,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을 강타하여 미국을 국가적 재난속에 빠뜨렸다.

이러한 국가적 재난 속에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길은 둘 중의 하나였다. 하나는 속죄양을 하나 만들어 미국의 위기를 대외적인 위기로써 봉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대내적인 필요로 인하여 대외적인 전선을 좁히는 것이다. 필자는 미국이 선택한 길은 바로 후자에 해당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왜 미국은 전자가 아닌 후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일까 ? 그것은 카트리나가 가한 두가지 측면 모두를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하나는 물질적인 차원이다. 즉 물질적으로 1천억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음에 따라 미국은 도저히 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도덕적인 차원이다. 카트리나가 들추어낸 미국의 치부로 인하여 대외적인 전쟁을 통하여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도덕적 에너지와 명분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카트리나의 도덕적 후폭풍이 미국의 에너지를 뽑아가 버렸다.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하에 전쟁을 일삼아 온 나라가 인종차별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자 대외적인 전쟁을 추진할 명분이 급속히 퇴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부시정권의 지지도가 3할대로 추락하게 됨에 따라 6자회담을 체면손상 없이 원만히 마무리 지음으로써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호재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것이 이번 회담을 윈-윈 형태로 완결짓고자 하였던 또 한가지 중요한 배경이라 본다.

그러나 결과는 미국의 전선으로부터의 퇴각일 뿐이며 한국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어설픈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반기문 그는 종미적인 외교관리에 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정동영이 자화자찬하고 있는 소위 중대제안은 이제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함에 따라 '창피한 제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수로 대신 남한전기를 공급하겠다며 나선 것인데,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이 중유 등 대북에너지 공급에 합의한 마당에 3년후에나 가시화될 수 있고, 경수로 비용 외에 엄청난 재원부담만 지게 될 중대제안이 김빠진 제안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북미간 대립갈등에서 민족공조는 관두고라도 중립조차 지키지 못하여 대북봉쇄전략의 선상에서 오직 미국만을 위해 제안한 숭미파들의 자칭 '중대제안'이 미국의 필요로 인한 입장변화로 인하여 마치 '닭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격'이 된 셈이다. 시기는 유동적이지만 경수로 공급이 약속된 만큼 이제 대북송전방식은 수정되어야 하며, 당장에 무연탄 지원이나 발전설비교체 지원 등의 형태로 전환되어야 한다. 커녕 중대제안이 6자회담 합의를 가져왔다는 식의 자화자찬은 세인의 비웃음감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을 변화시킨 것은 중대제안도 반기문의 몇차례 '티테이블 미팅'도 아니며, 바로 신풍 카트리나 였던 것이다.

이번 공동합의문은 여러가지 긍정적인 합의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 북미간 수교회담, 북일간 수교회담이 냉전체제의 해체 및 평화정착을 구체화할 것이라 기대하게 해 주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 갈길은 멀다. 경수로 제공도 '적절한 시기'라 한정함으로써 그 시기를 둘러싸고 북미간 갈등이 첨예화될 수 있으며, 북일간 수교는 미사일 문제로, 북미간 수교협상은 생화학무기와 미사일문제를 빌미삼아 또 다시 장기화된 갈등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 섣부른 예단을 하기엔 이르며,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재단되는 지에 대해서는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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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경  coree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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